짧은 이야기

50만원

운당 2007. 10. 15. 21:17

<짧은 이야기>

50만원

김 목

 

“어야, 너 내일 놀토에 시간 잔 내서 내려 오거라. 갑작스레 미안하다만, 급히 의논할 일이 있어 그런다.”

휴무 토요일을 앞둔 금요일 오후였다. 사촌 형이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 말했다. 어지간하면 전화로 의논할 건데, 하루 앞두고 급히 만나자고 하는걸 보면 긴요한 일인가 보았다. 나는 ‘예, 알았습니다.’ 하고 두 말 없이 대답을 했다. 그러잖아도 고향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터이기도 했다.

“술도 마셔야하니 기냥 버스로 오거라”

형은 그리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직접 말로 하시겠다니 궁금증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토요일 아침이다. 가을 들녘이 참 좋았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도 싱그러웠다. 오랜만에 느긋하게 버스 차창으로 산도 보고 들도 보았다. 송사리랑 물장구 칠 냇물은 아니겠지만, 멀리서 보는 냇물 빛도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이었다.

“고맙다. 오느라고 고생했다.”

성질 급한 형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택시를 불러놨다며 구두를 신었다. 아니나 다를까, 형이 말을 마치자 ‘빵빵!’ 택시의 경적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형수께 인사를 드리는 둥 마는 둥 형을 따라 나섰다. 잠시 뒤 택시는 영산강변에 있는 음식점에 도착했다.

“이 음식점 언제 지었대요? 앞이 툭 트여 전망도 좋네요.”

산모롱이를 돌아와 구부러져 흐르는 영산강과 강변의 갈대밭, 너른 들녘과 오르락내리락 달려가는 머언 산들이 한 폭의 그림이었다.

“밤실댁 알지? 그 밤실댁이 홀로 된 뒤로, 두어 달 전에 개업을 했다. 하여간에 맹빠기 말로는 못 생긴 여자가 서비스가 좋다고 했지만, 여그 심부름 하는 아가씨는 얼굴도 이쁘고 서비스도 그만이다. 맹빠기 그 놈 헛소릴 해도 섯바닥에 침이나 바르고 해야지.”

평소에 거침없는 말투로 유명한 형이다. 이제 이야길 나누는 동안 더한 독설도 들을 게 뻔한데 그냥 듣고만 있어야지, 무슨 뒷말을 달거나 가타부타 할 일이 아니다.

“오머, 오머! 박사님! 어서 오시와요.”

아무튼 얼굴도 이쁘고 서비스도 좋다는 아가씨가 나비처럼 날아와 꽃향기를 풍기며 형을 칙사 대접하듯 맞아들였다.

“아이고! 우리 고장의 자랑이신 작가님도 모시고 오셨구만이라우. 동상 오랜만이네. 반갑네. 어서 오시게.”

누님, 누님하고 불렀던 밤실댁도 환한 옷차림만큼 얼굴도 더 훤해졌다. 살갑게 맞아주는 밤실 누님의 말이 싫지가 않았다.

그렇게 우린 위풍당당 그 집에서 제일 전망 좋은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 집 용봉탕과 가물치 회맛이 그만이다. 다 자연산이다. 자, 어서 가물치회부터 가져오게. 우선 술부터 한잔 하자.”

아가씨가 옷을 벗겨 걸어 놓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주문을 한다.

“아이고, 하여간 오라버니 성질 급한 것 하나는 알아 모셔야 한다니까요. 그러잖아도 전화 받고 다 준비해놨지요. 야, 홍양아! 얼른 가져오너라. 그리고 술은 복분자로 할 거지라우.”

“말하먼 잔소리제. 그 삼년 묵은 놈으로다가 가져와.”

이미 상에는 기본적인 안주가 마련되어 있었다. 가물치회가 오기도 전에 술잔에 술부터 가득 채워졌다.

“자, 이게 너 뭔지 아냐?”

술이 두어 잔 돌고 난 다음 형이 비단 보자기로 싸가지고 온 것을 가까이 끌어 당겼다.

그러잖아도 처음부터 몹시 궁금했던 물건이다.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형이 껄껄껄 웃는다.

“그렁께 이것이 뭐시냐 하먼 박사학위증이다. 그것도 미국에서 건너온 신학박사 학위증이다.”

마침내 형이 비단 보자기를 풀었다. 그러자 금빛 꼬부랑 글씨로 뭐라고 써진 박사학위증이 나왔다.

“너도 박사 학위는 없으니께 박사학위증은 처음보재? 바로 요거시 그 박사학위증이란 거다. 알것냐?”

내가 박사 학위증을 천천히 들여다보자, 형이 그 학위증을 저만큼 휙 밀어버린다.

“홍양아! 그거 잘 싸둬라. 글고 그거 자세히 볼 것도 없다. 미국 ‘캘톤칼리지’ 박사학위증에 틀림없으니까 말이다.”

“캘톤칼리지라고요?”

“아따 그러먼 그런갑다 해라. 그러고 너 혹시 말이다. 이 일을 글로 쓰려면 캘톤칼리지라는 이름을 가명으로 바꿔라. 사실을 사실대로 말해도 명예훼손인가 뭔가 된다더라. 나야 괜찮지만 넌 공무원인께 조심해야 헌다. 미국놈덜 징허게 무서운 놈들인께 말이다. 알았제?”

“그런데 형님! 이 학위증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근께 내가 50만원에 샀다. 60만원짜릴 50만원에 샀다 그 말이다.”

형의 말을 정리하면 이렇다.

형 친구 중에 교회 목사를 하는 주경수란 친구가 있다. 고향 선배니까 나도 잘 아는 사람이다. 그 선배가 미국 캘톤대학 총장이 되었다고 한다.

“아니 언제 미국 가서 대학총장이 되었답니까?”

“아따 무신 미국은 미국? 기냥 여그 앉아서 하는 총장이란다. 근께 그것도 그 정도만 알고 있거라.”

아무튼 그 경수 선배가 지난해에 그 캘톤 대학 신학박사학위증 100개를 가져왔다 한다. 인기가 너무 좋아서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단다. 그렇게 큰 재미를 본지라, 또 금년에 100개를 가져왔단다. 그리고 그 박사학위증이 한 개에 60만원인데, 만약에 누가 10개를 팔아주면 1개는 공짜란다.

“근께 내가 그랬다. 10개 팔면 60만원 남으니께 내 것은 10만원 깎아주라고 했다. 그랬더니 한 개당 6만원씩 남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 싸가지 없는 놈아, 나한테도 돈 벌어 먹을래?’ 하고 반 강제로 50만원에 빼서부렀다. 이 거룩한 미국 캘톤칼리지 신학박사학위증을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형의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너, 썩동태 알지. 그 공화당하다가 민정당하다가, 인자 한나라당인가, 딴나라당인가 하는 놈 말이다.”

왜 내가 썩동태를 모를까? 본명은 석동대다. 하도 눈 밖에 난 짓거리를 하니까, 모두들 수군수군 석동대를 썩동태라고 부르는 고향 선배다. 공화당 때는 젊은 나이에 통일주체대의원도 했고, 민정당 때도 뭔가 했다. 지금도 한나라당에서 무슨 책임을 맡고 있고, 건설업을 잘 해먹고 있는 말 그대로 잘 나가는 이 지역 유지다.

“아, 그 썩동태라는 자식이 지난해에 이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수여식이 시청 회의실에서 비까번쩍(왜말이 섞여서 곧바로 취소하였음), 아니 호화찬란하게 열렸다. 시장도 참석하고 경찰서장도, 교육장도 참석했다. 주경수 그 놈이 총장이랍시고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예복을 입었더라. 지가 무슨 임금이라고, 머리에는 금술이 달린 네모진 관까지 쓰고는 박사학위증을 주더라. 썩동태도 박사만 입는다는 예복을 백만원이나 주고 맞춰 입었다더라. 하이고메, 꼴로는 못 보겄더라. 눈물까지 좔좔 흘리며 박사학위를 받게 된 것은 가문의 영광이요, 크신 하나님의 은총이라며, 박사가 된 걸 계기로 이 지역 발전을 위해 이 한 몸 초개와 같이 바치겠노라고 웅변을 다 하더라. 가관인 것이 한참 그리 말하다가 자기가 무엇 때문에 그 자리에 섰는지를 잊어 버렸던 갑더라. 하이고 지금 생각해도 배꼽이 빠진다. 빠져!”

형은 한참 웃더니 얘기하느라 입이 타는가보았다. 홍양에게 맥주잔에다 술을 가득 부으라하더니 단숨에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 이 썩동태에게 한 표를 주십시요. 이 썩동태야말로 여러분을 우해 일할 참 일꾼입니다. 여러분!”

순간 신학박사학위증 수여식장은 웃음의 도가니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정치판에 기생하여 빌붙고 사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누구인가? 나중에 썩동태는 사람들만 만나면 그날의 감격을 되새긴단다. 자신의 명연설에 감격하여 식장에 모인 관중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고 말이다. 그것도 시장, 서장, 교육장까지 다 모인 자리에서 말이다.

어느 국회의원을 보고 사람들이 ‘야, 이 싸가지 없는 사기꾼아!’ 하고 손가락질을 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그 국회의원이 ‘자 보세요.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국회의원이 누구냐고 하니까, 바로 저 분입니다! 하고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는 저 모습을 보십시오. 바로 감격 그 자체 아닙니까? 여러분!’ 했다고 한다.

그러니 썩동태가 그 짓거리를 따라했다고 해서 신기한 일이 아니다라는 게 형의 판단이었다.

“하여간 그래서 나도 그 박사학위수여식을 가져야겠다. 시장 군수, 교육장 데려다놓고 말이다. 근께 니가 잔 수고좀 해주라.”

“잘 알았습니다. 제가 할 일이 뭔가요?”

“응, 그날 사회를 좀 봐주라. 축시도 좀 읊어주고 말야.”

“근데 형님! 꼭 그렇게 하셔야 합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평소의 형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형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네 말 뜻 잘 안다만, 두말할 것 없다. 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주라.”

나는 속으로 형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형은 평생을 야당만 한 분이다.

동태가 여당만 할 때 형은 민주당, 신민당, 평민당을 하다가 김대중이 집권을 하자, 그 때서야 ‘인자 난 민주농민당일세’ 하고 야당을 그만 둔 분이다.

또 이런 일도 있어 고향 사람들 입에서 가끔 술안주가 되곤 한다.

형과 동창 중에 서울대학교 부설 연수원인가 양성소인가를 나온 ‘전세방’이란 고등학교 교장이 있다. 그 사람이 명함에 서울대학교 졸업이라고 박아 가지고 다니며 어디서든 서울대학교를 똑 부러지게 나왔다고 자랑을 하자, ‘야, 이 싸가지 없는 전셋방놈아! 서울대가 그리 좋으냐? 학생들 보고 바르게 살라고 가르치는 놈이, 그 입주댕이로 또 사기를 다 치냐?’ 하고 크게 싸웠다. 그 뒤로 지금까지도 두 사람은 의절하고 지낸다.

그런 형이다. 그리고 미국이 다 뭐냐? 해외라고는 겨우 제주도와 홍도 밖에 못 가본 사람이 미국 캘톤칼리지 신학박사학위를 탐내다니 말이다. 그것도 신정안가, 구정안가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한 판에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형이 말해준대로 미국 캘톤칼리지 신학박사학위 수여식에서 사회 볼 준비를 했다. 그동안 쓴 시는 저만큼 던져놓고 최대의 찬사와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축시도 썼다. 까짓 이왕할거 얼굴에 철판 깔고 후안무치하게 해보자는 배짱이었다.

마침내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미국 캘톤칼리지 신학박사학위 수여식 날이 되었다. 시청 회의실 앞에는 결혼식장처럼 화환이 즐비했다.

이윽고 주경수 총장이 그 임금 같은 관을 쓰고 높은 자리에 앉고, 사촌 형도 박사만 입는다는 예복을 입고 그 옆 자리에 앉았다. 참고로 형의 그 예복은 관내 대학교에서 빌려왔음을 밝힌다.

그렇게 해서 식은 엄숙, 화려, 당당하게 진행되었고, 나의 축시도 식장을 쩡쩡 울렸다. 그런 나를 보고 누군가가 웃기고 있다고 손가락질을 했겠지만, 나도 그 때만은 정치인이 되기로 했다.

“이제 마지막 순서로 오늘의 영광스런 미국 캘톤칼리지 신학박사학위를 받으신 박사님께서 하객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캘톤칼리지 신학박사이신 ㄱ씨를 소개합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형을 소개하고 난 뒤 ‘보십시오. 나의 멋들어진 시에 감격하여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는 저 관중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감동, 감격 그 자체 아니겠습니까?’ 하고 잠시 상념에 젖어 있을 때였다.

나는 두 귀를 의심했다.

“여러분! 저는 이번 60만원짜리 미국 캘톤칼리지 신학박사학위를 10만원 깎아서 50만원에 샀습니다. 바로 저기 계시는 캘톤칼리지 신학대학 총장이시고 목사이신 주경수씨한테 샀습니다. 금년 고추농사 지은 거 몽땅 털어서 샀습니다.”

내 귀에 거기까지만 형의 말이 들렸다. 그 다음 말은 그저 웅웅, 우웅 웅웅거림이었다.

언뜻 창밖을 보니 가을 햇살이 보였다. 차도 보이고 사람들도 보였다.

창문 밖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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