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땅박스럽다

운당 2007. 10. 14. 11:29

<짧은 이야기>

땅박스럽다

김 목

 

“어야, 놈현스럽다가 뭐시당가? 그 ‘놈현스럽다’라는 말에 대해 청와대가 발끈했다는디 말여.”

“글씨라우. 그게 뭔 말일께라우. 커피턴가 코피턴가 그 거시기다가 한번 물어보시씨요.”

“아, 근디 그 커피턴가 코피턴가, 그 머시기가 시방 여그 있어야 물던지 씹던지 하제?”

“아따 여그 있는 지가 바로 그 코피터 아니오. 말하자믄 움직이는 배까사전이라 그 말이요.”

“어메, 그러제 잉. 어야, 어야, 근께 그 놈현스럽다가 먼 말이당가?”

“근께 그거시 먼 말이냐먼 말이요 잉.”

그렇게 해서 정리한 것이 바로 다음의 내용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사전에 없는 최근에 두루 쓰인 신조어를 모아 책을 발간하였는데 일부 언론이 ‘놈현스럽다’(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가 있다) ‘국회스럽다’(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열하게 다투거나 날치기 등 비신사적인 행동을 일삼는 면이 있다) 등을 뽑아 소개했다. 그 중 ‘놈현스럽다’가 현직인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한다고 청와대가 문제를 삼았다.

“바로 그거시구먼 그려. 아무리 거시기한다고 현직 대통령을 그러코롬 비하허믄 쓰것는가 잉?”

퇴근하고 서대회 무침을 잘해주는 고흥서대집에 들렸더니, 약속 시간 보다 먼저 나온 만수씨는 벌써 소줏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안주가 나오기 전에 한 병을 후딱 비어버렸다.

“어따, 안주도 못 생긴 것이 더 마싯당께. 땅바기가 말 한번 잘했제이?”

“땅바기가 또 무신 말을 해따요?”

“아따! 거 말하기 남사스런 말이시. 그랑께 거 머시냐? ‘마사아지 거얼’이라고 자네 알란가 모르것네만 말이시. 근께 거그 가선 못 생긴 낯짝을 골라야 한다는 머 그런 말이시. 그래야 싸비스가 조타 그 말이시. 그 명언을 땅바기가 했단 말이시.”

“오메 요새도 그런 말 하고 살아 나믄 놈이 있는 갑소 잉. 그런 말 했다간 입주댕이를 찌져도 백번은 찌지고, 자봉틀로 바가도 일만번은 드르륵 바가버려쓸 거신디 말이요. 잉? 폴쌔케 디져서 망월동 가서 귀신들 술심부름 하고 이쓸거신디요 잉?”

마사지걸을 고를 땐 못생긴 얼굴을 골라라. 명언이다. 금언이다. 전 국민의 절반인 남성들을 위해 가르침을 준 그 훌륭한 말이 어째서 신조어 사전에 올라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왜, 무엇 때문이냐?

그건 분명 직무유기다, 앞으로 대통령 될 분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그 일에 있어서 한 점 의혹이라도 있어선 안 된다. 국정감사도 좋고 특별검사도 좋다. 특히 언론은 변양균, 신정아 사건 보도보다 더 많이, 더 오래, 그 문제에 대해 보도하고, 까발리고, 의혹을 부풀려서 규명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암튼 역시 못생긴 서대가 맛있어 술안주로는 그만이니, 금세 또 소주 두 병을 비웠다. 취기가 서서히 알달달하게 뒷 머리를 흔들고 지나간다.

“잔깐! 조용히잔 하소 잉. 뉴스잔 듣세.”

그 때 갑자기 만수씨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탁 쳤다. 마침 티비에서 9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아따 뉴스는 무신 얼어디질 뉴스다요?”

“아따 땅바기가 또 머시라 안한가? 쪼카 들어보세 잉.”

“근께 땅투기혀서 돈 버는 법 가르쳐주는 뉴스라요? 아니먼 위장 전입혀서 자식새끼 갈치는 비�을 갈케주요? 그거또 아니먼 산이고 강이고 들이고 온통 파헤쳐 운하 맹글어 배타고 구갱다니게 해준다고 허요?”

“아따 그거시 아니라 이땅의 괴육을 위혀서 한 말씀 하는 갑네. 오메 저러코로만 되믄 얼마나 조컷는가 잉? 사괴육비를 주려준다고 허네 잉. 자율핵교를 세우고 기숙핵교도 세운다고 허네 잉. 한국사도 영어로 갈치고 말이시. 영어괴육을 획기적으로다가 헌다고 허네 잉? 오메 오메 그러고본께 그려서 미국 가서 ‘조지고 부셔’ 대통령을 만날라고 했는 갑시.”

“우째스라우? 왜 거진말까지 쳐감시롱 ‘조지고 부셔’ 대통령을 만날라고 환장했다요?”

“아따! 자네가 멀 몰라도 한참을 모르네 잉! 영어괴육을 획기적으로 할려먼 거 머시냐? 미국 51번째 주로다가 되야삐리먼 영어괴육 끝 아닌가?”

“근께 시방 우리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된다 그말이요?”

“아따, 거트로야 그리 될라등가? 속으로 그러케 될 거시다 그말이제.”

“어메 우쨋튼 조킨 조컷소. 땅바기가 별걸 다 해줄거신께 우리 대한민국 만세요. 자 한잔 더 모꾸멍에다 부숩시다. 부서.”

“어이, 그라세. 여자 고르는 법까지 갈케주는 땅바기, 우리 자석들 잘 갈케주고, 잘 살게 해준다는 땅바기, 운하를 맹그러 구갱도 잘 시케 준다는 땅바기를 위하여 건배이!”

그렇게 또 한 병이 후딱 비었을 때다. 만수씨의 전화기가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하고 간드러지게 노래를 불렀다.

“한창 술맛 나는디 먼 전화가 온다냐?”

만수씨가 수화기를 귀에 대고 반가운 얼굴이 된다. 그러더니 안색이 변한다. 그 사람 좋아 보이는 너부죽한 얼굴이 이즈러진 조각달 모양이 되더니, 급기야는 두 눈에서 달구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급기야 꺼이꺼이 수릴 내어 우는 게 아닌가?

“아따, 만수 성! 거 먼 일이다요? 전화기 들고 먼 청승이다요?”

“아야, 아야, 옥분아! 쪼깨만 기두려라. 내 곧 갈거신께. 잉!”

마침내 손전화기를 탁 접으며 만수씨가 눈물을 훔친다.

“아따 만수 성! 먼 일이냥께라우? 뭐땜시 그러코롬 갑작스럽게 청승맞게 운다요?”

“어메, 정말 환장하것다이. 근께 말이시. 그 옥분이 안 있능가? 나보고 오빠 오빠 하는 아가씨말여.”

“아, 아, 근께 그 식당허는 옥분이라우? 근디 그 여자가 먼 아가씨다요? 서방이야 재작년에 교통사고로다가 죽었다지만, 자석들도 안 있다고 혔소?”

“암튼 그 옥분이가 말여. 아가씨냐, 아니냐는 중요치 안코 말이시. 근께 사기를 당혔다네. 근께 교통사고로다가 죽은 서방의 보상금을 사기 당혔다네. 그동안 애인이 잇썬나 보네. 그 애인이란 작자가 그 보상금을 머꼬 튀었다네. 그 놈이 이자 땅바기가 대통령이 될거시니 무조껀 돈은 땅에다 바가둬야 한다고 꼬셨는갑네. 그것도 운하를 맨들텐게 강쪽에다 바가둬야 헌다고 해서 돈을 마꼈는디, 먹꼬 튀었는갑시. 아이고 속 터지네 속 터져.”

“아따 성이 무신 만두요, 김밥이요? 속이 터진다요? 지금 시상에 사기치는 놈이 한 두놈이요? 아따 그 김갱준인가 뭐신가 하는 놈이 땅바기 돈도 쳐머꼬 미국으로다가 훌라당 날랐다 안 헙디여? 날다 긴다 허는, 인자 지가 대통령 다된 것처럼 행세하는 땅바기도 사기를 당하는 시상인디 말이요?”

“아따 그 놈들이야 나랏돈 퍼머꼬, 궁민덜 세금 퍼머꼬, 공적자금 가꼬 그렁께 먼 걱정이건는가만 우리 옥분이야 지 서방 목숨값 아닌가? 내 이 사기꾼 놈을 기연치 자버야건네. 자버서 그 사기꾼놈 면빡을 확 까버려야 건네.”

만수씨에게 온 전화 때문에 금세 소주 두병이 또 바닥을 비웠다.

“어따! 놈현스럽다 보다 땅박스럽다(땅에다 박아야 산다라고 사기치는 말. 땅에다 박었다가는 반드시 망한다는 말)라는 말을 사전에 올려야것네. 싸가지 업는 자슥들, 아무리 그런다고 대통령을 가꼬 놀아.”

술이 취하니 만수씨와 움직이는 백과사전, 다시 말해서 인간 컴퓨터가 횡설수설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된 경제협력과 관련해 남북 정상이 시장원리를 몰라 말만 왔다 갔다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후보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통 큰 투자를 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는지 모르고 있고, 이는 노 대통령도 마찬가지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 후보는 이어 북한에 대한 투자 방식으로 몇 십 만 명씩 들어가는 공단 조성이 아니라 기업 스스로가 수지가 맞는 곳에 들어가게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9시 뉴스들이 온통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정말이지, 한때 땡전(땡하는 9시 소리에 이어 전두환 얼굴이 나온다는 말) 뉴스에 질려 9시만 되면 티비를 꺼버렸는데…….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구토가 나오는데.

“갱제를 잘 아는 맹바기 만세다! 우리도 맹바기처럼 땅에 박아서 부자 되자!”

“어야, 이차 가드라고. 옥분이 식당에 가서 맥주로다가 이찰허세.”

일어서니 세상이 빙빙 돈다. 땅바닥이 돈다. 하늘이 돈다. 우주가 온통 돈다. 만수씨와 움직이는 백과사전, 다시 또 말해서 인간 컴퓨터는 휘청휘청 술집을 나선다. 불쌍한 옥분이 식당으로 이차를 간다.

'짧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뜨뜨탄 물  (0) 2007.10.25
꿈속의 꿈이로구나  (0) 2007.10.23
이 써글 놈의 인간아!  (0) 2007.10.21
길 건너 국밥집 기둘려 기둘려  (0) 2007.10.20
50만원  (0) 2007.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