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뜨탄 물
김 목
“어야, 어서 오게.”
체육관에 들어서니 신 선배님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싱글벙글이시다.
“먼 좋은 일 있으셔요?”
“가까운 좋은 일도 없는디, 먼 좋은 일이 있겄는가? 아냐, 오늘 본께 그 써글놈의 인간이 옳은 말 한 번 하대?”
“아따 그 써글놈의 인간이라고 맨날 쓰잘데기 없는 소리만 할랍디여?”
“근께 그 인간이 거시기가 되야서 괴육분가 무신 인쩍자원분가를 콱 새롭게 맹글어 버린다고 하대. 그 말은 시원하대.”
“그라먼 좋지라. 근디 내용이 문제지라. 겨우 맹글어 놓은 사립핵교법도 종교계 눈치, 또 지그들 구케의원들이 사립핵교 이사장하는 놈이 많은께로 반대만 디지게 혀서 헌 걸레쪽 맹글어 버린 놈들인디, 그 알량한 괴육부 권력까지 지그들이 가져다가 맘대로 지랄해버릴라고 그러는지 또 어떠케 알 것이요?”
“마져. 그 말이 마져. 근께 말이시. 이런 야그가 있어.”
국회의원이 탄 승용차가 논고랑에 빠졌단다. 마침 근처에 한 농부가 일을 하고 있었다.
“사람 살려. 국회의원 살려!”
국회의원이 죽는 시늉을 하며 살려달라고 악을 고래고래 질렀다. 농부가 물었다.
“근께 당신이 진짜, 참말로 국회의원이요?”
“아, 여기 으리번쩍한 승용차 보면 몰라? 그리고 또 이 자랑스런 금뱃지! 뭐하고 있어? 빨리 날 구해!”
곧 죽을 판인데도 그 높으신 국회의원은 농부에게 반말을 하며, 자신을 빨리 구조하라고 소릴 질렀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농부가 구조는커녕 그 국회의원이 탄 차를 흙으로 덮어 생매장을 해버렸다.
다음 날이다. 경찰이 그 농부에게 찾아와 물었다.
“어제 여기서 국회의원이 탄 차가 논고랑에 빠졌다는데 당신 봤소?”
“예, 봤지라.”
“어쨌소?”
“내가 잘 묻어줬지라.”
“뭐라고? 국회의원을 구조하지 않고 묻어버려요?”
“아, 글씨. 그놈덜 국회의원은 거짓말을 잘한다 하더랑께라. 나는 그 국회의원이 죽었는디도 살았다고 거짓말 하는 줄 알고 잘 묻어줬구만이라이.”
농부의 말에 경찰이 어떻게 했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 이건 순전히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비꼬는 개그일 뿐이니까 말이다.
나와 신 선배는 운동하다말고 배꼽을 잡고 웃었다. 맘이 시원해지니까 운동도 더 잘되었다.
“어야, 근디 내가 어제 사우나에 갔단 말이시. 그것도 호텔 사우나였단 말이시.”
“어따메. 좋은디 가셨소? 거그 가면 팔자 좋은 놈들 만치라이.”
“글제. 배때야지 따땃한 놈들이 만체. 근께 내가 친구를 만나 우연히 호텔 사우나에 갔는디 말이시. 욕탕 속에서 그 놈하고 딱 마주쳐뿌렀단 말이시”
거기서 젊은 날 취직 동기생을 만났다고 했다.
“근디 그 놈이 누군지 안가?”
“누군디라이? 말씀하시는 거 본께 꽤나 웃기는 인간인가 본디요.”
“그려, 그려. 척하면 삼천리제. 그 놈이 말이시. 얼마 전에 신문에, 방송에 대문짝만하게 낯짝 내밀고 난리 부르스를 친 놈이시.”
“뭔 일로 그러코롬 가문의 영광을 올렸다요. 구케의원이다요? 아니먼 아퍼 디진다고 엄살부려 군대도 안간 놈이 취직해서는 기냥 술도 잘 퍼마시고 해서 드디여 오날날 거시기가 다된 것처럼 지랄하는 사기꾼놈이다요?”
“아따, 근께 그거시 말이시. 얼마 전 대낮에 술 퍼마시고, 쬐금 늦게 자기를 모시러 왔다고 지 관용차 운전기사 뺨따구를 직사허게 때렸다고 안 하던가? 그것도 모자라서 지 업무실 들어가서는 비선가, 여직원인가를 껴안고 엉덩이를 만진 놈이 있었닥 안 하던가?”
“아, 그 무슨 기업체 사장놈 말이요?”
“마져, 마져. 그 인간 말이시. 내가 사우나에서 그 놈을 만났단 말이시. 그 놈이 내 취직동기거든.”
“아따, 하여간 요새 웃기는 인간들이 만쿠만요. 어디 괴육장인가 뭔가 허는 놈도 대낮에 괴장들 허고 짝짜꿍혀서 술 디지게 퍼마시고는 운전기사 뺨따구 때리고, 지 업무실 근무하는 여직원의 엉덩이를 만지고 했다던디, 요새 그러케 허는 거시 유행병인갑소? 우린 언제 그러코롬 노픈 자리에 안자 아랫것들 빰따구도 때리고 여직원 엉덩이도 만져볼께라우?”
“어메, 어메, 자네 헛소리라도 그런 소릴 허덜덜 마소. 하긴 자네가 그냥 그 싸가지 업는 인간들 뵈기 싫은께 해보는 소리것제만. 아무튼 그 인간이 말이시 내게 출세하는 법과 돈 봉투 주는 법을 갈케 준 놈이시.”
“출세하는 법과 돈 봉투라우?”
“그러탕께. 아 그 놈이 말이시. 내게 이러대. 첫째 출세를 할려면 잘 비벼라.”
“뭘 비벼라우?”
“아따 손바닥이제 뭐여? 근께 노픈놈이 무슨 말을 하든지, 옳다 그르다 생각지 말고 무조건 예, 예, 하면서 두 손바닥을 비벼라 하대. 손바닥 손금이 닳아져 보이지 않아도 좋으니, 손가락 지문이 없어져도 좋으니 비비고 또 비벼라 하대.”
“뭐 까짓 거 출세를 한단디, 쪼까 비비고 또 비비지 못할 것도 없긴 읍겠지라우.”
“그리고 노픈놈에게 청탁을 험시롱 돈봉투를 줄 때는 봉투를 호찌기스로 박지 말라고 하대. 그냥 봉투가 열려 있는 채로 주라고 하대.”
“왜 그런다요?”
“아, 돈이 얼맨지 시어봐야 할 거 아닌가? 봉투를 호찌기스로 박아놓으면 돈을 시어볼 수가 업잔은가? 그 속에 돈이 얼매가 있는지 모른께 일을 봐주지 않는다는 말일세. 봉투를 가져오는 놈들이 수두룩헌디, 어떤 놈이 봉투에 더 많은 액수를 담었는지 알어야 청탁을 들어주든지 말든지 한다는 말일세. 글고 청탁 건에 따라 다 액수가 정해져 있다고 혔단 말이시. 이런 말이 있었네. 과천 계오백이라고. 무슨 말이냐면 과장 될려면 천만원, 계장 되려면 오백만원을 봉투에 담어야 헌다는 말일세.”
“오메 어쩌먼 그러케 여그나 저그나 다 또가튼 말이 있을께라우. 나도 핵교 선상인 친구에게 장천 감오백이라는 말을 들었지라이. 근께 괴장되려면 천만원, 괴감 되려면 오백만원! 그래서 왜말이지만 ‘모두가 다 도둑놈이여’라는 ‘민나 도루보데스’ 라는 유행어가 있었겠지라이. 암튼 그건 그러코요. 봉투를 받으면 얼른 변소깐에 가서 슬쩍 돈 액수를 확인허고는 맘에 들면 받고, 적으면 돌려준다 그 말이지라이. 그란디 봉투를 호찌기스로 박아놓으면 쪽제비도 낯짝이 있더라고 어떠케 뜨더보겄소이. 잉?”
“암, 그러제. 글고 말이세. 이자 봉투를 받으면 말이시. 그 노픈놈이 재빨리 봉투 속을 확인하고 돈 액수가 적으면, ‘어야 이번엔 힘들것네. 담에 보세.’하고 봉투를 가져가라고 헌다대. 그러면 곧바로 돈 액수를 올려 봉투를 다시 그 노픈놈에게 주어야 한다네. 그러먼 바로 백발백중으로 청탁 끝이라고 가르쳐 주대.”
“진짜 그러것소야이. 봉투 속의 돈 액수를 확인해야는디, 호찌기스로 박으면 안 되것소야이. 그래서 그러케 한 번 해봤습디여?”
“아따, 꼭 한 번 해봤네. 근디 기분 더럽데. 토가 다 나올려고 하데. 이게 먼 지꺼린가 자괴감이 들고 슬프대.”
“그 맘 이해가구만이라이. 나도 그런 비슷한 경험 있지라이.”
“암튼 그 놈은 말이시. 그런 재주로 승승장구 결국은 그 내노라하는 귀경기업체 사장이 안 되었는가?”
“그러케 했더라도 사장이 되어스면 잘해야지라이. 근디 그런 싸가지 없는 짓거리를 해서 신문, 방송을 어지럽힐께라이? 아무리 술이 아니라, 아랭이를 퍼 먹었서도 딸가튼 여직원 엉덩이를 만지고 시프께라이?”
“미친놈이제. 근디 말이시. 사우나에서 나보구 뭐라고 헌지 안가?”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쥐구멍 안찾꼬 뭐라고 입주댕이를 나불거립디여?”
“낯짝은 무신 낯짝? 나보구 그라데. 오메 이런 더런 놈의 세상이 없다고 하데. 세상에 운전기사 뺨따구 몇 대 때리고, 여직원 엉덩이를 슬쩍 만진 것 가지고 이렇게 지랄들을 할 수가 있는가? 하고 열을 올리데. 박정희 되통령 각하가 하신 말씀이 있다고 하데. 그 박통이 허리 아래 이야기는 허들 말라고 했다는 거여. 주색잡기는 대장부 가는 길에 병가의 상사라고 말여. 그러면서 내가 세상을 잘 못 만나 이런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고 하데. 이제 세상이 완전히 썩어분졌다고 하데.”
“오매, 오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똥 뀐 놈이 성질낸다고, 이 세상을 썩게 만든 놈이 누군디, 지가 세상이 썩었다고 한탄을 다 한다요? 정말 지옥에서처럼 그놈 섯바닥을 쪽찝게로 확 뽑아불던지, 자봉틀로 입주댕이를 드르륵 박아불던지 해야것구만이라오.”
“그래서 내가 말이시. 이랬네.”
“뭐라고 했습디여. 콱 귀싸대기를 올려버리지 그랬소.”
“아따 내 손이 더러진디 그러 것는가? 그래서 ‘너도 더러운 세상을 잘 못 만났지만, 나도 더러운 세상을 잘 못 만났다.’ 그러케 좋게 말했네.”
“오메, 오메. 시게잔 말하제 고로케 약하게 말했써라오? 오메 속 터져.”
내가 가슴을 탕탕 칠 때였다.
“아따 그려서 말이시. 내가 ‘에끼 이 더런 놈아! 아나, 내 ××물에서 실컷 놀아라. 퍼마셔도 좋다.’허면서 그 놈 앞에다 뜨뜨탄 물을 쫙 선물로다가 갈겨주고 나왔네.”
“뜨뜨탄 물이라우?”
“그러타니께.”
“쫙 갈기니까 시원합디여?”
“아따, 뜨뜨탄 물이었당께.”
“우하하! 우하하!”
신 선배님과 나는 운동하다 말고 또 허리를 잡고 웃었다. 어찌나 웃었던지 오줌이 다 찔끔 나올려고 했다.
'짧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신교 (0) | 2007.10.29 |
---|---|
옷 빨리 못 입것는가? (0) | 2007.10.29 |
꿈속의 꿈이로구나 (0) | 2007.10.23 |
이 써글 놈의 인간아! (0) | 2007.10.21 |
길 건너 국밥집 기둘려 기둘려 (0) | 2007.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