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등산 답사기>
어등 입춘대길
-입춘에 한 마리 청잉어와 놀았다.
어등산이라는 이름은 산등이 물고기의 등처럼 생겼다하여 그리 붙여졌다고 한다. 338m의 어등산 꼭대기인 석봉에 올라 보면 임곡에서 들어오는 황룡강이 어등산을 길게 한 바퀴 휘돌아 흐르는 걸 알 수 있다.
어등산은 용아 선생이 살았던 송정리 소촌동에서 시작하여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게 이어졌으니, 푸른 빛 청잉어 한 마리가 누우런 황룡이 사는 강물에 몸을 담근 채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한 마리 청잉어로 힘차게 물살을 가르는 어등산!
어등산은 황룡강이 적셔주는 삼도와 본량의 넓은 들판이 군량미가 되어 왜인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던 한말 의병들의 전적지이기도 하다.
용아 박용철 선생과 임방울 선생의 고향이다.
어등산은 또 노령지맥의 끝이라고 한다. 푸른빛 청잉어가 입을 크게 벌리고 황룡의 물을 마시는 송산교가 그곳이다.
아름다운 절경을 밑천삼아 유원지로 모습을 갖춘 송산교 쪽은 오래전부터 빛고을 사람들의 눈맛은 물론이려니와, 용봉탕과 매운탕으로 입맛까지 즐겁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동으로는 남도의 주산인 무등이다. 서로는 영광의 불갑산이 커다란 연꽃 한송이를 피워놨으니 연실봉이다. 남서쪽으로는 또 다른 한 마리 용이 영산강물을 마시러 날아가더니 여의주를 내뱉어 금성산을 만들었고, 잘 보면 영암 월출도 고개를 내밀어 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장성의 병풍산, 담양의 추월산이 지척이다. 쌍둥이처럼 용진산이 황룡강을 사이로 바로 이웃이니, 어등을 오르지 않고서 남도의 남서쪽 풍광을 어찌 말하랴?
어등은 산의 특성상 여러 곳에서 오를 수 있다.
송정리쪽에서는 하남쪽의 광주여대, 영광통 쪽에서는 보문여고와 호남대가 주차하기에 좋다. 호대를 조금 지나가면 어등의 뱃속을 지나 온 무안고속도로 터널이 황룡강에 놓아진 다리로 발을 내딛는다. 조금 더 가면 서봉마을이 있는데, 바로 그 마을에서 어등산으로 들어서면 경치가 제일 좋다.
그곳이 바로 마당바위 등산로라 하는 곳인데, 어등산에서는 유일하게 사철 물길이 끊이지 않는 계곡을 따라 오를 수 있다. 더 가서 송산교에서 서해정 쪽으로 들어가도 등산로가 있는데, 초장부터 어등산에서 제일 긴 가파른 계단을 만나게 된다.
마당바위 등산로는 서봉마을 가게를 막 지나서 우측길이다. 개울에 놓인 다리를 건너 산허리를 따라 조금 오르면 승용차 대 여섯 대가 겨우 서 있을 작은 주차장이 있다.
<마당바위 등산로의 등산 안내도. 이따금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얌체 쓰족, 차의 회전을 막아버리는 차맘대로족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주차장 지나 계곡과 함께 석봉으로 가는 길. 이정표가 잘 되어있다.>
계곡물이 한 겨울 갈수기에도 졸졸 맑게 흐른다.
<호젓한 산 길. 물소리, 새 소리가 정겹다.>
조금 가면 마당바위 쉼터가 있다. 체육시설과 정자가 있는데, 정작 마당바위는 조금 더 올라가야 한다.
<으럇차차! 산에 왔으니, 체력도 점검해보고>
<한 여름 잠이 솔솔 오는 정자. 머시냐? 가끔 신선 말고 화투 치는 화선을 볼 수도 있다.>
계곡을 따라 돌의자가 놓여 있어 여름이면 땀을 식혀주는데, 작은 폭포를 이루는 곳에 산도화가 피면 말 그대로 한 폭의 절경이다.
<산도화가 피는 봄에 이곳에서 소주 한 잔이면 딱이다.>
<서너 가족 능히 앉아 쉴 수 있는 마당바위>
마당 바위 지나 돌틈 사이로 흐르는 시내 옆 돌의자에 잠시 앉아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어등산에서 누리는 작은 낭만이다. 그리고 조금 더 걸으면 시누대길이다.
겨울에는 그 시누대 서걱이는 소리가 또 그만이다.
<시누대 숲길>
이제 막바지 고기 등을 오르면 어등의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는 어등의 정상인 석봉이고, 왼쪽은 송산유원지로 가는 길이다. 석봉쪽으로 가면 또 넓적한 바위가 의자처럼 있으니, 그 곳에서 잠시 쉬어도 좋다.
<의자처럼 생긴 바위>
한때 포사격장으로 어등산의 출입이 통제될 때가 있었다. 그 시절, 여기서부터는 출입금지였다. 이제 포사격장이 폐쇄되고 출입은 허용됐지만, 어등산 관광지개발로 어등의 운명이 앞으로 또 어찌 변하게될지? 모른다.
<포사격장이 있을 때 여기서부터는 출입금지였다>
마침내 한 마리 청잉어 등지느러미의 가장 높은 곳, 석봉에 섰다.
이른 봄 안개가 자욱하다. 무등도 숨고, 월출도 숨고 금성도 어슴프레하다. 가까운 용진산도 흐릿하게 몸을 보여준다.
<석봉의 동쪽>
<석봉의 남쪽>
<석봉의 서쪽>
<석봉의 북쪽>
승용차를 가지고 가지 않았으면, 석봉에서 광주여대쪽으로 내려가도 좋고, 중간에 오른쪽 산줄기를 타고 보문여고 쪽으로 내려와도 좋다.
여유롭게 맘먹고 산을 일주하면 시간은 배가가 되지만, 어디서 오르건 석봉까지 1시간여, 하산은 40분쯤이면 된다.
<천수를 누린 소나무가 한가롭게 누워 봄을 맞이한다>
<멍석딸기 새싹이 잔인한 새 봄을 노래한다. 가면 온다!>
2007년 입춘송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다
입춘이니 크게 길하고
따스한 기운도니 경사롭다
고종황제 즉위 후 건양을 연호로 쓰고
다경을 기원하다 왜인에게 나라를 내주었다.
그 한 많은 백년의 봄이 어등에 왔다.
죽음 너머 새 생명이 있구나
천수를 누린 소나무 등걸 앞에서
여린 새싹과 눈 맞춤 한다.
봄은 어느새 스미듯 조용히 와있지만
황룡이 함께 놀자는데 어찌 그냥 마다하랴?
어등을 집 삼고 황룡을 마당 삼아
건양다경 빌던 한말 의병들의 넋이리라.
봄 안개 자욱한 황룡강에 발을 딛고
한 마리 푸른 빛 청잉어 천둥소리로 낚아
입수염 갈기 휘여 잡고 구름바다 나른다.
세상사 쓸쓸하더라지만
아! 생명의 봄이다
황룡과 청잉어가 풍우를 일으키니
입춘대길, 건양다경
봄이다.
내려오는 길에 용아 선생 소촌동 생가에 잠시 들려도 좋고, 봄이라면 송정공원에 가서 용아와 임방울 선생을 만나시라. 벚꽃이 또 일품이니 용아의 떠나가는 배면 어떻고, 임방울의 쑥대머리 귀신형용이면 또 어떠랴? 예부터 송정 막걸리 유명했으니, 한 잔 술에 풍류가 저절로다. (2007.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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