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 여행기

08 봄 불회사

운당 2008. 4. 27. 10:26

불회사


불회사는 전남 나주시 다도면 덕룡산 자락의 고찰이다.

1978년 불회사 큰 법당 불사 때 발견한 ‘호좌남평덕룡산불호사대법당중건상량문’의 기록에 의하면 불회사는 동진 태화 원년(서기 366년) 마라난타스님이 창건하고, 신라의 이인(異人) 희연조사(熙演祖師)가 당나라 현경 초에(서기 656년) 재창하였으며, 삼창(三創)은 원말 지원(至元)초(서기 1264년경) 원진국사(元溱國師)라고 한다. 그 뒤 조선 정조 22년(서기 1798년) 2월 큰 불이 나 완전히 소실된 것을 당시의 주지 지명(知明)스님이 기미년(서기 1799년) 5월 15일 상량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사료에 근거한 사찰의 내력이 있지만, 그냥 여기서는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길 소개하겠다.

이야기 하나, 어떤 효자가 아버지 삼년 시묘살이를 하는데 밤이면 호랑이가 나타나 그 효자를 뭇짐승들로부터 보호해주었다고 했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시묘살이를 마친 그 효자가 호랑이가 나타난 자리에 절을 세웠으니, 그 절이 바로 불효사(佛孝寺), 불호사(佛虎寺), 불호사(佛護寺)인데, 불회사(佛會寺)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 둘, 대웅전을 짓는데 도편수가 잠잘 때 베고 자는 목침만 수 만개를 만들더라고 했다. 어느 날 그 중 몇 개를 주지 스님이 슬쩍 감추었더니 그 도편수가 보따리를 싸더란다.

“대웅전 짓는 걸 그만 두어야겠소.”

“이유가 뭐요?”

“절 지을 쓸 나무토막 개수가 맞지를 않소이다. 아무래도 내 머리가 이상해진 듯 하니 그만 떠나야겠소.”

“하하하! 그 나무토막 여기 있소.”

주지 스님이 감추었던 나무토막을 내주었고, 도편수는 그 수만 개의 나무토막을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이리저리 꿰맞추어 대웅전을 지었다고 했다.

이야기 셋, 이번엔 대웅전 안쪽 벽에 탱화를 그리는데, 화공이 문을 닫아걸고 절대로 훔쳐보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얘기에 항시 따라붙듯, 여기서도 호기심을 못이긴 스님 한 분이 몰래 훔쳐봤는데, 이게 웬 조화인가? 커다란 새가 붓을 입에 물고 훨훨 날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스님이 훔쳐보는 걸 알게 된 화공은 다시 사람의 모습이 되어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대웅전 안쪽의 벽화 그림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는 거라고 했다.

이야기 넷, 불회사를 짓는데 해가 뉘엿뉘엿 덕룡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음 완성이 될 것이어서, 주지 스님이 넘어가는 해를 잡아두었다고 했다. 그 덕분에 마무리를 잘할 수가 있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야 어떻든, 필자가 그 불회사를 처음 찾은 것은 1976년 4월 초다. 겨우내 맨살이었던 활엽수들의 연노란 새 잎이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을 띄워가며 온 산을 굼실굼실 기어 다니고,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화장을 한 산벚꽃과, 좀 더 진한 입술연지를 칠한 바위틈의 진달래가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뿐인가? 수백 살 먹은 아름드리 비자나무와 전나무들이 사시사철 짙푸른 색으로 더위를 �고, 사찰 뒤 춘백은 붉은 꽃송이를 뚝뚝 떨구는데, 그 모습이 치맛자락 감아쥐고 걸어가는 아리따운 처자의 자태였으니….

2008년 4월 26일, 3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불회사를 다시 찾았다. 처음 불회사를 찾았던 때보다는 이십여 일 늦은 시기여서 산벚이며 진달래는 지고, 온 산을 굼실굼실 기어 다니는 나뭇잎 벌레들도 연노란빛 옷을 꽤 여러 겹 벗어버렸다. 그렇게 부드러움은 줄어들었지만, 짙어가는 초록빛은 생명의 기를 더욱 왕성하게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옛 정취가 많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잘 정돈되고 멋들어지게 새로 잘 지어진 요사체는 이제 과거의 쓸쓸함이나 고즈넉함을 벗어던지고 활력과 생동감을 주지만, 깊은 속맘까지 빼앗아 가던 옛 사찰의 신비감을 지워버렸다. 나그네를 포근하고 넉넉하게 안아주는 대신 여느 관광지처럼 잘 생긴 얼굴로 ‘어서 오시오’ 했다.


불회사와 비교하는 것은 아니다. 허나 세상살이가 다 그렇게 되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번지르르 좋으면 된다. 도둑질을 하든, 사기를 치든, 위장위조를 하든, 투기를 하든 아무튼 나만 잘 살면 되는 것이다. 그게 바로 대한민국 실용주의이고 그들만의 성공신화다.

그리고 잘 사는 게 뭐가 잘 못이냐며 오히려 얼굴을 붉히고 나무라면서,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을 불평불만자로 몰아간다. 결코 실용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재산형성의 방법이 나쁘고 그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자라는 이유로 손가락질 하지 말라고 동문서답을 하는 것이다. 도무지 비판의 뜻을 알고도 그러는지, 정말 무슨 말인지를 몰라서 그러는지 알 수 없는 이 미쳐버린 실용의 사회, 그렇다. 이미 이 세상이 미국산 쇠고기 먹기도 전에 집단 광우병에 걸려 뇌에 구멍이 숭숭 뚫려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다시 불회사로 돌아가자. 다도의 솔잎 막걸리, 그 맛이 일품이다.

그 2500원하는 막걸리 한 병 챙겨서 불회사가 있는 덕룡산을 올라보자.

술안주는 가져가지 않아도 지천으로 널려있는 게 산안주다. 산도라지, 더덕, 송화, 솔잎이며 땡감, 달래, 비자 등 아무튼 막걸리 한 잔 마시지 못할 소냐?

그 무엇이든 막걸리 안주가 되는 덕룡산이 두 다리를 편하게 뻗고 있는데, 왼쪽 다리 무르팍쯤에 불회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 덕룡산 오른 쪽 다리 발등으로 올라 산등성이를 따라 한 바퀴 빙글 돌면서 허벅지, 배, 무릎, 종아리로도 내려올 수 있고, 계속 걸으면 왼쪽 다리 발등으로 내려올 수 있다.

다소면과 도천면이 합쳐져서 다도면이 되었다 한다. 그리고 초의선사가 차를 재배한 곳이기도 해서 차다(茶)자, 다도면이기도 하다는 다도면 덕룡산에서 바라보는 다소강의 물길을 막아서 만든 나주호 또한 그 모습이 절경이다. 좀 더 발품을 팔면, 중들이 장을 봤다는 중장터를 지나 화순 운주사도 엎드리면 코 닿게 지척이다.

백제의 군사가 주둔했다는 평지, 그들을 위해 형성된 마을 도동, 그 백제 군사가 나당연합군에게 몰살을 당하고 그 피로 붉게 물들었다는 붉은 머릿재 등도 바로 불회사 인근의 찾아볼만한 역사의 흔적이다.

불회사! 사계절 아무 때도 좋지만 가장 좋은 때는 봄이 아닌가 싶다. 일부러라도 틈을 내서 봄이 가기 전 불회사에 들려보시길 바란다.

 <이 상원당장군이 미친소 들여오라고 한 놈 싸다귀와 마빡을 갈겨버린다고 했는디>

 <영감! 그 미친놈 내게 맡기슈, 뱃속에 도로 집어넣어 버릴텡게>

 <허어, 절에 와서 험한 말 하는 거 아니오. 나무관세음보살!>

 <알았슈. 나중에 지옥으로나 잘 데려가시우>

 <덕룡산 불회사 입구 사천왕상이 걸려 있는 곳입니다.>

 <잠시 나무 한 그루 보고 갑시다>

 <바로 이 나무! 험한꼴, 왜놈한테 나라 잃은 거까지 다 본 나무입니다. 이제 왜왕한테 고개숙이는 거까지 보고, 광우병 걸린 미친소까지 더 보겠습니다. 오래 살아서 좋겠습니다. 아차차, 이제 죽은 나무라고 했지.>

 <사천왕님! 벼락은 언제나 때린다요?>

 <철쭉꽃도 예쁘지만 자란이 함초롬히 피어있습디다.>

 <대웅전 앞의 모란도 날 좀 보소 하고요>

 <참, 대웅전 오를 때는 옆 계단을 이용한댔지. 길이라고 다 길이 아녀. 고개 숙여 섬겨야할 백성에게는 눈 부라리고, 싸가지 없는 놈한티는 굽실굽실 하는 것도 할 짓이 아녀.>

 <고개는 이럴 때 숙이는 거여. 알았어?>

 <비록 할아버지 호주머니에서 나왔지만, 돈도 쓸줄 알아야하는 거여. 땅투기, 탈세, 이중장부조작으로 번 돈, 죽을 때 들고 갈려고? 쯧쯔쯔, 어리석은 중생이여! 부처님이 그리 말씀 하시잖아? 애비 애미가 한 일이라고? 잘 안 들린다고? 남편이, 마누라가 한 짓이라, 잘 모른다고?>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근께말여, 사람이 입이 좀 무거워야 돼. 촐싹이지 말어. 국민들이 보고 있잖아? 왜왕한테 굽신이 뭐여? 그러면 굽신이 등신되는 거여. 국민들 자존심도 생각해야지. 안 그래?>

 <글고 웃는 것도 이렇게 웃는 거여. 미친 소처럼 실실 웃지말고 말여.>

 <위정자들이 골프나 테니스만 치지말고 이런데 와서 마음 공부도 좀 해야해. 알았어?>

 <여기서도 배흘림 기둥을 볼 수 가 있어. 하긴 골프채나, 테니스채가 돈흘림으로 보이겠지만. 그래, 얼리버드가 돈 많이 퍼먹는다고 했으니까. 많이 자시게. 배 터지게.>

 <저, 춘백은 천만원짜리 손가방이 없어도 기품이 있다네>

 <두 다리를 편히 쭉 뻗고 앉아있는 덕룡산, 그 무릎을 베고 불회사가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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