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 여행기

눈 산에 봄볕이 서리니

운당 2007. 10. 19. 08:57

<답사기>

눈 산에 봄볕이 서리니

-옥과의 설산(雪靈山), 성륜사(聖輪寺)와 옥과 미술관


하루 전인 2007년 1월 20일이 대한이었으니, 이제 입춘이 낼 모레다. 봄이 온다는 말이다.

그늘진 산기슭에 잔설이 희끗 남아있긴 했지만, 눈 산인 설산(雪山)에도 봄이 깃들고 있었다. 하지만 꽃 피는 춘삼월에도 대설주의보가 내리니, 어딘가 숨어있을 꽃샘추위(寒春)가 앞으로 어떤 심술을 부릴지 알 수 없긴 하다. 그래도 단언하건데 봄은 반드시 온다.


오늘은 평생을 교직에서 헌신(진짜 獻身했다고, 존경할 수 있는 분이시다)하시고 퇴임하신 뒤, 손주와 함께 안향낙도(安香樂道)를 즐기시는 선배님을 모시고, 옥과의 설령산 성륜사를 찾았다. 바로 곁에 옥과미술관이 있으니, 덤으로 묵향에 젖어볼 수도 있었다.

더욱이 다섯 살짜리 재롱둥이며 재간둥이인 조가온(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이름인데, 할아버지가 주셨다)이가 무료로 모델이 되어 주어서 찰칵 수준의 솜씨지만, 전문가처럼 행세하는 여유도 맛보았다.


<손주가 쑥쑥 자라는 만큼 안아주기도 힘이 더 든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손주가 얼른, 무럭무럭 잘 자라서 이 나라의 훌륭한 일꾼이 되길 바랄 뿐이다 - 靑出於藍>

 

성륜사는 전교조위원장이었던 정해숙 선생님이 이따금 머무르신다는 얘기를 들은 절집이다. 또 기억하며 마음 아리지만, 전교조 해직교사로 요절(夭折)한 엄익돈 동지의 49제를 지냈던 곳이기도 하다.

잠시, 그 날의 아픈 추억을 떠올리며 절 집 솟을 대문 앞에 우리 꼬마 모델을 세웠다.


<설산 등산 안내도-바로 이 안내판 곁으로 등산로가 있다. 설산봉우리까지 서서히 다녀와도 두어 시간이면 충분한 편안한 등산로이다>


<절집 솟을대문 앞에 선 5살 조가온 어린이-하늘 천(天), 위 상(上) 등 절집 간판 글자를 척척 읽었다. 한자를 150자나 아는 재간둥이고, 지장보살을 부르며 그 꼬막손을 모을 줄도 아는 재롱둥이다>

 

선배님께서 다녀 본 절집 중에서 특별한 느낌을 준다고 여기 저기 관심 있게 살펴보신다. 안내한 사람으로서는 참 듣기 좋은 말이다. 그래서 금강문을 지키는 사천왕도 웃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사천왕이 모셔져 있는 금강문이다. 심장이 약한 사람은 피해 가시기 바란다. 더하여 뒤가 구린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귀뿐만 아니라, 쓰레기 같은 인간들도 좀 잡아다 ‘혼잔 내 주시 시시오’ 하고 빌었다. 특히 배웠다고, 가졌다고 행세하며 우리 서민들 울리는 인간들 말이다. 그런데 어째 사천왕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설마하니 ‘너나 잘해’ 하는 비웃음은 아니겄제?>


<비웃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마! 예, 알았습니다요. 휴우! 안도의 숨을 쉬고 금강문을 지났다>

 

여기서는 범종각을 먼저 보았다. 오늘은 맘속으로 파고드는 범종 소리가 아니어도, 동안거를 맞아 재가불자들이 공부를 하는지, 들머리까지 불경 소리가 청청 들려왔다. 성륜사는 재가불자들이 공부를 하는 수행도량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지나치며 뵙는 스님, 보살님들의 모습에서도 청정함이 풍긴다.


<범종각-불교의 4가지 보물이 범종, 목어, 운판, 법고이다. 큰 절집에는 이 4가지가 다 있다>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곳을 지나 지장전으로 오른다.


<지장전-용머리 장식이 멋지다. 어떤 노 스님일까? 불경소리에서 기가 느껴졌다.>


<문살 모양이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섬세함이고 정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발 한발 극락으로 오르듯 편안한 징검돌을 밟아 대웅전으로 향 한다.


<극락이 그 어디련가? 고해(苦海)라지만 이 사바세계가 바로 극락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또 그곳이 바로 연옥이거나 지옥이리라>


<홀연히 보살님 한 분이 나타나셔서 오늘의 나의 모델에게 사탕 몇 알을 주신다. 나무관세음보살!>


<대웅전으로 오를 때 계단 가운데는 부처님의 길이다. 그래서 큰 스님만 다닐 수 있다. 하지만 5살짜리 아이가 뭘 알랴? 아니다. 아이가 바로 부처님이다>


<해맑은 미소. 바로 부처님의 웃음이다>

 

부처님의 도량을 어찌 감히 가늠하고 말로 할 수 있으랴? 만 그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의 연화대가 예술적으로도 보물이라고 한다. 오늘은 재가불자들의 예불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앞으로 성륜사에 들리시면 꼭 대웅전의 연화대를 보고 오시기 바란다.


<대웅전 신도출입문 위의 선녀벽화 - 마음을 더 청정하게 하는 그림이다>


<연화대 대신 대웅전의 문살의 아름다움을 보시기 바란다. 꿩 대신 닭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대웅전을 나와 바로 이웃하고 있는 옥과미술관으로 갔다. 마침 이름이 익고 큰 도움까지 받았던 분이 그룹전을 하고 있었다. 65세 이상은 무료인데 관람료가 어른 5 백원, 어린이 1 백원이었다. 들어가서 화백들의 열과 성이 깃든 그림을 감상하면서 관람료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맘에 드는 작품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옥과 미술관 전경>


<맘에 든 욕심나는 작품 중 한 점>


<우리의 주인공이 열 폭 산수를 등에 둘렀다>

 

미술관 주변에는 설치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는 겨울, 오는 봄 햇살이 어리는 작은 솔숲에 설치작품이 그대로 또 하나의 예술이다>


봄날 같은 가는 겨울에 모처럼 호사스런 오후를 보낼 수 있었다.

광주에서 창평을 거쳐 옥과읍으로 들어서면 버스 정류장 지나 다리를 건너기 전에 좌회전을 해야 한다. 한 4km쯤 더 가면 그 이름도 청정하게 다가오는 눈산(雪靈山) 성륜사와 덤으로 미술관까지 둘러볼 수 있으니, 꿩 먹고 알 먹고, 님 보고 뽕도 딴다는 속어가 바로 이를 이름에 분명하다. 광주에서 오후 2시쯤 출발해 서너 시간이면 너끈하니까 말이다.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세상-저 스님, 햇살 밟아 어디를 가시는 걸까?>


<눈산의 모습이다. 이름은 눈산이지만 따스한 봄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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