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 여행기

이집트, 그리스, 터키 여행기 23

운당 2008. 5. 2. 13:25
21. 파묵깔레와 헤라 폴리스-1월 23일 오후


마침내 하얗게 보이는 바위 언덕으로 보이던 파묵칼레에 도착하였다. 먼저 헤라폴리스 성이었다는 당시 로마 성의 남쪽 문으로 들어섰다.

로마의 성은 대부분 높은 곳에 건축되었다고 했다. 전쟁 시 방어에 용이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지대가 높으면 물 확보가 관건이었을 거다. 그 물을 확보하기 위해 수도시설이 잘 되어있었다 하는데, 그 당시의 물길과 토관이 남아있었다.

이 헤라폴리스 성은 지진으로 무너졌다고 하는데, 로마의 성은 필수적으로 목욕탕과 원형극장, 음악당을 갖추었다고 하며 이곳 목욕탕은 아시아 유일의 남녀혼탕이었다고 했다. 특히 성문 옆에 목욕탕을 두어 여행객들을 배려했다고 했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그 폐허의 몸을 간신히 추스르고 있는 헤라폴리스의 잔해 사이를 걸어 하얀목욕탕 파묵칼레에 도착하였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온천물로 들어갔다. 물은 미지근했고 바닥은 조금 미끄러웠다. 물이 떨어지는 부분이 낭떠러지여서 여자 경찰들이 이따금 호루라기를 불어 호기심 많은 관광객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그 파묵칼레 노천욕탕에서 잠시 족욕을 즐긴 뒤, 도보로 헤라폴리스의 북쪽문을 향해 걸었다. 길을 따라 돌로 된 무덤들이 떼를 지어 있었다. 작은 것은 서민, 장식이 있고 큰 것은 귀족이나 돈 많은 자들, 성기 모형의 상징물이 세워져 있는 아주 큰 것은 왕의 무덤이라고 했다. 그들 돌무덤을 덮은 관뚜껑이 배 모양인 것은 물로 변한 육신이 부활 할 때 탈 수 있도록 그렇게 배의 형상으로 만든 것이라 했다.

로마의 귀족이나, 돈 많은 사람, 평민 할 것 없이 모두가 이곳 헤라폴리스에 묻히는 것을 큰 소망으로 삼았다고 했다. 일테면 이곳에 묻히는 것은 부활의 영수증을 받는 것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20분 넘게 걸으면서 그 무덤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래 부활은 했수?”

“부활이라요? 오해였구만이라.”

그럼 그렇지. 오해했겠지. 부활은 무슨 놈의 얼어 죽을 부활? 그 경젠가 뭔가? 아무튼 뭘 살리겠다고 입에 개 거품을 무는 놈이 싱겁게 잘 내뱉는 말이 오해잖어?.

“근께 전달 과정에 생긴 오해였당께라. 여기 오면 부활은 따 논 당상이라고 해서 비싼 돈 들여왔는데.”

그럼 그렇지. 이 세상 모든 게 오해인 거여. 그걸 모르는 놈이 바보, 천치 아니겠는가?

그렇게 부활의 꿈은 오해로 접고, 수천 명을 수용한다는 해라폴리스 호텔에서 온천욕을 즐길 수 있었다.

역시 남녀혼탕이었는데,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누드 목욕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석회성질이 있어 뿌옇지만 눈 귓병에 특효라는 온천욕이 시원하기는커녕 그냥 왠지 찜찜하기만 해서 서둘러 탕을 빠져나와, 비행기 태워 모시고 간 잎새주 한 병으로 내장목욕을 즐겼다.

 <헤라 폴리스 남쪽 문으로 들어갑니다>

 <이 폐허가 그 화려했던 헤라폴리스 랍니다>

 <야외 음악당, 극장이지요>

 <무엇이라 했는데, 그만 잊었습니다>

 <화려했던 그 날의 흔적 대리석 기둥입니다>

 <저 아래 마을이 인구 20만의 데즈니 델리고요>

<석회암 성분이 있어서 하얗게 보인다고 했다>

 <미끄러운데 조심해요>

 <호루라기 휙 불다가 사진을 찍으려하자 수줍은 듯 고개 돌렸지만, 그래도 찰칵!>

 <화려했던 그 날의 헤라폴리스>

 <그 날의 영광을 안고 있는 돌더미>

 <화려한 복장에 말을 타고 달렸을 병사와 귀족들의 모습은 어디에?>

 <신의 도시 헤라폴리스, 일생에 한 번 와보는 게 소원이었을 평민들>

 <어느 땐가는 옛 모습이 복원되겠지만, 옛 사람들은 다시 못오겠지?>

 <성문을 나선다>

 <이제 무덤이다. 저 위쪽 둥근 모양이 왕의 무덤>

 <이곳에 묻히면 부활을 한다고 했단다>

 <다 오해였지만, 전달과정에 말이다>

 <대 경기장, 격투사들이 이곳에서 상대가 죽을 때까지 싸웠다 한다>

 <대 경기장의 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