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학원이 신세 8

운당 2008. 1. 14. 08:47

 경인운하 조감도랍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다 그런거지요. 선보는 사진은 실제 인물보다 훨 더 좋지요. 다 아시지요?

서울에서 인천까지 유람선 타고 나들이 하고 싶나요? 모타보트로 쏜살같이 날아가보고 싶나요?

그러나 실제 모습은 그게 아닌 듯 합니다. 벽이 저렇게 높아서야 뭘 보나요? 뭐라고요? 키를 운하 옹벽 높이로 키우면 된다고요?

아니면 배 위에서 폴짝폴짝 뛰라고요? 그러면 경치가 보인다고요? 운동도 되고 건강에도 좋단 말이지요?

앞으로는 기술이 발달하여 다 보게 될 수 있으니 믿으라고요. 그 분의 능력을!

아니면 무식함을 감추고 미적 수용능력을 확대 시키라고요? 벽의 미학! 뭐 그런겁니까? 애? 잘 안들려요. 아, 벽창호라 그런다고요?

겨울에 얼때를 대비해 망치도 한 개 준비하란 말씀이지요? 초중고에서부터 중요, 필수로다가 망치로 얼음깨는 공부를 미리 시킨다고요? 

저 푸른 김포운하! 그림같은 배를 타고 사랑않는 너희 님과 하루 먼저 건너가세. 하루 먼저 보내불세

참고로 운하로 물건을 운송할 때는 반드시 하루 먼저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 사진은 다음 아고라에서 운하님이란 아이디를 쓰시는 분이 게재한 것을 퍼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설>

학원이 신세

 

<8>

사람들은 그 때부터 학원이에게 ‘학원아!’하고 하시하여 부를 수가 없었다.

“학원 영감님! 어인 행차시옵니까?”

아니면,

“학원 어르신! 기, 기체후 이, 이, 일향마안강 하오십니까?”

그렇게 뜻도 잘 모를 문자까지 쓰면서 두 손 공손히 모으고 허리를 굽혔다. ‘어험!’하고 큰 기침으로 눈길도 주지 않고 걸어가는 학원이의 뒷모습을 향해 머리를 숙여야 했다.

심지어는 어떤 초시라는 양반은 자기 집에 찾아온 학원을 맞이하여 ‘학원 대감마님! 향기롭고 거룩하신 마님께서 어인 일로 귀한 걸음을 이리도 누추한 소인의 집까지 왕림하여 주시옵니까? 통촉하여 주심에 마냥 계속 감흡입니다. 대감 마님!’ 하면서 버선발로 대문간까지 뛰어나와 학원이의 발꼬락 냄새를 맡을 만큼 코를 들이대며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또 학원이가 말을 시작하면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가는 그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고개를 숙이며 한껏 공손한 말투로 ‘예이!’하거나 ‘지당하십니다요’ ‘감흡드립니다’ 하면서 한껏 감동을 먹은 표정으로 말반죽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만약에 대답이 조금만 늦거나, 이유를 달거나, 말을 더듬거리면 ‘빠가야로! 조센징!’이라는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도 않은 왜인들 욕을 그냥 배터지게 얻어먹어야했다. 그뿐인가? 대문짝만하게 이빨 두 개가 튀어나온 학원이의 입에서 흙탕물처럼 튀어나오는 침까지 뒤집어써야만 했다.

“어르신! 기침하셨습니까요? 밤골 사는 바우라고 하는 놈입니다요. 히히히! 학원이 영감어르신! 오늘따라 안색이 더 훤하십니다요. 이거 지가 기르던 씨암탉인디 기냥 몸보신 하시라고 가져왔습니다요.”

“하이고마. 지는요. 벌촌에 사는 남필이라 헙니더. 이거 쇠고기인데 고마 젤 좋은 안심으로다가 한 스무근 가져왔심더. 지도 땅잔 주이소. 학원 대감님! 대감님만 믿습니더.”

그러니까 학원이가 그 농지책임자가 된 그날부터 학원이가 사는 관사에는 온갖 먹을 것들이 바리바리 쌓이기 시작했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는 물론이려니와 몸에 좋다는 노루, 사슴고기며, 팔뚝만한 잉어와 자라, 녹용과 인삼, 심지어는 산삼까지도 들고 와서 헤헤 거리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것뿐인가?

“학원 영감님! 지들이 오늘 영감님을 모시고 한잔 거하게 올리기로 했심더. 이따 저녁에 인력거를 보내겠심더.”

이윽고 인력거가 오고 학원이는 그걸 타고 거들먹거리며 요정으로 갔다.

똑다리 밑에서 너덜너덜 헤어진 거적대기로 두쪽불알을 겨우 가리고 살던 학원이의 모습은 이제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왜놈들하고 있을 때는 번지르르한 양복에 뿔테 안경까지 떠억 걸치고 큼지막한 양놈들의 담배빨부리를 입에 물고선 뽀금뽀금 연기를 품으면 그야말로 귀티가 잘잘 흘렀다. 오늘 같이 기생들이 득시글거리는 색주가에 나들이할 때는 면도칼로 잘라도 잘 안 잘라진다는 되놈들 일등급 비단으로다가 온몸을 감싸고, 머리에는 중절모를 쓰고, 시계줄만 금이 한 돈이라는 그 금시계에다 손가락에는 황소눈깔보다 더 큰 호박인가 수박인가 하는 반지까지 끼었다. 그 모습이 백만장자의 위엄, 위용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다만 어쩔 수 없이 바꾸지 못하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반질반질 빛나는 뱀눈하고 툭 튀어나온 뻐드렁니 두 개였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순가? 설령 두꺼비 낮짝처럼 얼굴이 박박 얽었으면 어쩌고 뒷동산 참나무 등걸처럼 쭈글쭈글 하면 어쩌냐?

돈만 있으면 됐다. 아따 그 넓은 ○○○농지를 지맘대로 떡주무르듯 주무르는 힘을 가졌는데 무엇이 문제가 되겠느냐? 이 세상 도덕이나 정의가 뭐 말라 비틀어진 것 아니더냐?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경제권력을 쥐었는데 말이다. 학원이가 지 똥구녘을 핥아먹으라고 해도 ‘하이고 학원이 대감님 똥은 달기도 하그만이라이. 우째 요로코롬 맛있다요?’ 하고 아부 아첨을 할판이다.

그 경제권력자 학원이가 어록으로 한마디를 남긴다.

“예전에 어떤 시러배 아들놈이 ‘못생긴 년이 싸비스가 좋다’ 고렇게 말혔지만….”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이며 느긋하게 주위를 휘둘러보니, 좌중의 인간들이 모두들 긴장하여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자신의 입을 바라보고 있다. 학원이는 그 점이 대단히 흐뭇하고 무척이나 만족하였다. 그래서 아름다운 미소라고 역사에도 기록되었음 바라는 마음으로 한껏 흡족하고 만족한 아름다운 미소를 만들면서 어록의 뒷부분을 마무리했다.

“난 이쁜년이 좋은기라! 느그들 귓구멍이 두갠게 잘 알아 모셨제!”

“하이고마. 학원 영감님! 아니 대감님! 우찌 지들이 그걸 모르겠심니꺼? 염려 탁 놓아부리시고 대감님 맘대로 고르시기 바랍니더. 오늘은 지들이 정성을 다해 대감님을 모시겠심더. 야! 이년들아! 너그들 알겄재? 빨랑빨랑 대감님 앞으로 근께 일렬횡대로 주욱 서거라. 그라고 우쨌거나 디지라면 디진 시늉을 하면서 대감님을 잘 모셔야 하는 거다. 알았재?”

학원이의 눈에 들어야 땅 한뙈기라도 얻을 수 있고, 그래야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으니 땅을 얻으려는 사람들로 그렇게 학원이의 주변은 인산인해였다.

그러니 한마디로 말하면 학원이는 대통령이었다. 아니다.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전제군주, 바로 왕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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