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환한 해

운당 2008. 1. 1. 05:04

 

<새해맞이 시>

따뜻하고 환한 해

 

아직 어두운 새 해 아침

문득 우리 어머니 돼지고기 솜씨를 생각 한다

야들야들 썰어내는 향긋한 삶은 고기

보글보글 얼큰한 김치찌개

노릇노릇 구워서 파절이, 마늘, 거기에 고추 툭 부질러

배추 속잎이나 상추로 싸서 한 입 미어터지게 먹던 삼겹살

 

처녀시절엔 친정 아버지

결혼해선 남편

그리고 들독 같은 자식들, 눈에 넣어도 안 아프던

이제는 이따금 집에 들리는 손주 녀석들에게까지

해마다 돼지고기 삶고 끓이고 구어서 먹이는 우리 어머니

당신 입에는 한 점도 넣지 않았던 돼지고기를 생각한다.

 

새 해 아침 그 세월을 속절없이 세어본다.

 

올해도 자식들 좋아하는 돼지고기 삶고

김장 김치 쑥쑥 썰어서 얼큰하게 찌개로도 끓이고

식구들 모여 삼겹살에 소주도 마실텐데

자식들 좋아하는 모습만 보고도 기분 좋다며

그 맛있는 돼지고기 느끼해서 싫다며

평생을 자신의 입에는 한 점도 넣지 않은 우리 어머니

오늘 아침 문득 그 사랑 깨닫고 가슴 아리는데

우리 어머니 흐릿해진 시력처럼

아직은 산 너머에 있는 2008년 새 해 아침

 

이왕이면 우리 어머니 돼지고기 같이 맛도 있고

어둡고, 춥고, 쓸쓸한 곳을 비출 새 해를 기다린다.

따뜻하고 환한 새 해를 기다린다.

(2008.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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