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가림성 백제병사 충혼 소나무
중국 제나라 관중의 저서 관자에 있는 ‘민이식위천 왕이민위천’은 ‘백성은 먹는 것이 하늘이고, 왕은 백성이 하늘이다.’라는 말이다. 백제 제24대 동성왕이 가림성을 쌓은 건 바로 그 하늘인 백성을 잘살게 하기 위함이었으리라. 그리고 왕의 절대권력이 백성(하늘)을 지키기 위함이라 믿었기에, 가림성의 병사들은 그 하늘(백성)을 지키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백제라는 나라 이름이 있건 없건 오직 하늘인 백성을 위해 굳건히 성을 지켰다.
하지만 사치와 향락에 빠져든 동성왕의 행각은 하늘의 버림을 받았다. 501년 8월, 동성왕은 가림성을 축조한 위사좌평 백가를 성주로 임명했으나 백가는 불만을 품었다. 그해 11월 사냥을 나간 동성왕이 큰 눈에 갇혀 가림성 가까이 머물렀다. 이때 백가는 자객을 보냈고, 왕은 큰 상처에 12월에 죽었다. 뒤이어 즉위한 무령왕은 백가를 참수하고 시신을 백강에 던졌다.
여섯 명의 좌평은 백제 16품 관등의 1품이고 위사좌평은 왕의 호위와 군사를 맡은 직책이다. 백가는 동성왕의 신임을 받아 중국 남제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백성을 내팽개친 우매 탐학한 왕과 자신의 정치 권력만 탐낸 백가의 반역은 백제 멸망의 신호탄이었다.
부여 임천면의 가림성은 동성왕 23년(501) 8월, 금강 하류 성흥산에 쌓은 산성이다. 산봉우리 즈음에 쌓은 머리띠 모양이어서 ‘테뫼식’, 떡시루에 두르는 시룻번 같아 ‘시루성’이라고 하는 산성이다. 골짜기를 끼고 산봉우리와 능선을 따라 쌓은 ‘포곡식’ 산성과 달리 물과 식량이 넉넉지 않아 오래 버티기 힘든 성이다. 하지만 여기 가림성은 660년 백제 멸망 이후에도 672년까지 백제의 이름을 당당히 지킨 철옹성이다.
성이 있는 성흥산은 해발 260m로 낮으나, 평야에 우뚝 솟아 강경을 비롯해 금강 하류 일대를 바라보는 군사 요충지이다. 또 남북국 시대에 신라가 국가 제사를 지낸 24개 명산의 하나이다. 산기슭의 대조사는 백제 26대 성왕(504~554) 때 스님 겸익이 창건했다. 어느 날 겸익의 꿈에 관세음보살이 황금빛 큰 새가 되어 성흥산 중턱 바위로 날아갔다. 겸익이 그곳에 절을 짓고 미륵 석불을 세웠다. 이 황금빛 큰 새의 서기로움은 대륙의 웅자로 부여족 후손인 성왕에게 백제 부흥의 희망을 품게 했고, 538년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660년 6월이다. 개 한 마리가 사비강 언덕에서 왕궁을 향해 짖고 사라졌다. 사비성의 개들도 길가에 모여 짖고 울어대다가 흩어졌다. 귀신 하나가 궁궐에서 큰소리로 ‘백제가 망한다. 백제가 망한다.’라고 외치다 땅속으로 들어갔다. 땅을 파보니, 석 자쯤 깊이에 거북이가 있었다. 그 등에 ‘백제는 둥근 달 같고, 신라는 초승달 같다.’라고 쓰여 있었다.
의자왕이 이에 대해 묻자, 무당이 ‘둥근 달은 가득 참이니 차츰 기울며, 초승달은 가득 차지 못함이니 점점 차게 된다.’라고 대답했다. 뒤이어 신하가 ‘둥근 달은 왕성함이요, 초승달은 미약함이니, 생각해보건대 우리나라는 왕성해지고 신라는 차츰 쇠약해진다.’라고 대답했다. 의자왕은 노하여 무당은 죽이고, 신하의 대답에는 기뻐하였다. 천4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신은 물론 나라를 망치는 것은 공정과 상식이 아닌 우매와 탐학에 있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그 망국의 백제를 끝까지 지킨 부여 임천면 가림성에 백제병사 충혼사가 있다. 그리고 병사들이 쉼 없이 오르내렸을 성벽 아래 바윗길에 한 아름 반의 소나무가 천년 세월을 이고 있다.
문득 백성을 하늘로 우러른 가림성의 용감한 백제 병사와, 자신이 하늘인 양 으스대던 왕을 비롯한 우매 탐학한 자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리고 그 이름 없이 스러져간 병사들 생각에 떨어지려는 눈물을 감추고 슬픔을 참으려 그저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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