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은 봄의 꽃이다. 불꽃을 품은 눈부신 등인 듯, 종 소리에 꽃구름이 피어나는 듯 화사한 꽃이다. 백목련이 선비의 기개인 갓과 상투이거나 아리따운 처자 저고리의 단정한 동정이라면, 자목련은 영웅이나 전사의 가슴에서 빛나는 찬란한 훈장이다.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 가면 십자가의 그리스도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성모 마리아상, 오른쪽에 김대건 신부상이 북녘땅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그 앞 의자 곁의 목련나무가 역시 북녘땅을 바라보고 있다. 왼쪽 산야에는 북으로 가는 육로와 기찻길이 있고 오른쪽 짙푸른 바다에서는 철썩이는 파도가 하얀 거품을 토한다. 그리고 눈 앞은 손에 잡힐 듯,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땅, 그리운 산과 들,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바다 금강인 해금강이다.
강원도 고성군은 38선 이북의 우리나라 최북단이다. 1945년 소련군이 차지했으나, 한국 전쟁 때 수도사단, 5사단, 11사단, 15사단이 351고지 전투 등에서 대승하여 되찾았다. 하지만 고성군은 나뉘어져 남북 고성군이 되었다. 태백산맥의 미시령을 경계로 설악산과 금강산을 구분한다면, 남북 고성군이 합쳐져야 금강산도 비로소 하나가 된다.
여기 통일전망대는 금강산과 가까운 남고성의 맨 위쪽인 현내면 마차진리에 있다. 휴전선의 동쪽 끝이자, 민간인출입통제선 북쪽 10km 지점이다. 통일전망대에 오르면 해안 철책선이며 한국군과 북한군 초소가 한 눈에 보이는데, 불과 600m의 거리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가슴 셜레는 것은 해금강의 절경이다. 금강산의 바다쪽 한 자락이지만, 바라보며 숨이 막힌다. 거북이가 어슬렁어슬렁 파도를 헤치는 듯 송도는 우리 땅이고 그 넘어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끝자락 아름다운 구선봉(낙타봉) 봉우리가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전망대에서 금강산까지는 최단 16㎞, 최장 25㎞라고 한다. 비록 망원경으로 확인하는 해금강의 만물상, 현종암, 사공바위, 부처바위, 그리고 조금 더 멀리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과 일출봉, 채하봉, 육선봉, 집선봉, 세존봉, 옥녀봉, 신선대 등이지만 가슴 한 가득 우리 나라, 우리 땅이다. ‘선녀와 나무꾼’ 전설의 감호도 푸른 숲 아래라 하니, 그저 그리움을 달랜다.
여기 성모상은 지난 30여 년간 실향민은 물론 7천만 겨레를 품어주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상과 김대건상은 2020년 9월 18일에 통일을 기원하며 남북화합의 상징으로 세웠다고 한다.
새로 모신 김대건 신부는 지금의 충남 당진시 솔뫼에서 1821년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2021년은 김 신부의 탄생 200주년인 희년이고, 이를 기려 유네스코가 2021년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했다. 그가 태어난 해에 콜레라가 창궐하여 몇 달여만에 1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일곱 살 때에 박해를 피해 경기 용인 골배마실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15세 때 프랑스인 신부 피에르 모방에게 발탁되어 신학생이 되었다. 24세 때에 상하이 진자샹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고 신부가 됐다. 조선에 돌아와 1년여간 조선교구 부교구장으로 전교하다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한 우리 나라 최초의 가톨릭 사제이다. 질곡의 시대에 미리내의 별빛으로 세상의 어둠을 밝힌 등불이자 희망이었다. 그 김대건 신부와 함께 북녘 산하를 바라보는 마른 잎을 떨군 앙상한 목련나무는 평화와 화합의 비목이자 생명나무이다.
보송보송 보드라운 깃털의 파랑새 한 마리가 마른 가지에서 푸드득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오른다. 그렇다. 새 봄이면 목련은 가지 가득 향기로운 꽃송이 등불을 켜고 꽃구름으로 피어나리라. 별똥별처럼 선을 그으며 금강산쪽으로 날아가는 파랑새를 쫓아 눈길도, 마음도 북녘 산하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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