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

설악산 신흥사 리영희 향나무

운당 2023. 1. 15. 08:59

 

해거름 녘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산사의 범종 소리는 평화와 안식의 은혜이다. 온 가족이 저녁 밥상에 둘러앉아 나누는 사랑과 행복의 울림이다.

200545일 강원도 양양읍의 화재로 낙산사가 불타고 범종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1469년 예종이 아버지 세조를 위해 동으로 주조한 지름 98, 높이 158의 이 보물급 범종의 꼭대기 용 두 마리는 종을 매는 고리이고 그 아래 두른 띠는 연꽃잎이다. 몸통을 굵은 줄로 나눈 뒤 맨 위쪽에 범어인 산스크리트어 16, 그 아래 보살상 4구를 모시고 사이마다 역시 범어 4자씩을 새겼다. 몸통 아래쪽에는 만든 시기와 사람 등 기록을 남기고 구름 모양의 물결무늬로 신비감을 더했다.

이 종은 아주 큰 종은 아니지만, 모양이나 종소리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나라의 범종을 대표하는 걸작품이었다. 그런데 전쟁 때도 아니고 모두가 화재 장면을 티브이로 지켜보는 가운데 연기처럼 사라졌으니, 그 안타까움이 참으로 컸다.

1951년 설악산 전투가 한창일 때다. 우리 국군이 명령에 따라 설악산 상원사를 태워버리려 했다. 이때 당시 상원사 주지 방한암이 본당 안에 드러누웠다.

절을 태우려면 나도 함께 불사르라.”

방 주지의 이 한마디가 상원사를 지켰고, 오늘 우리가 설악의 비경 앞에서 조금이나마 덜 부끄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역시 1951년 늦가을이다. 설악의 밤은 이미 겨울일 때다. 설악으로 들어간 국군의 한 연대가 신흥사에 임시본부를 두었다. 이미 양양읍은 폐허가 되었고 스님들은 보이지 않았으나, 다행히도 신흥사는 전화가 미치지 않았다.

절에 들어간 병사들이 추위를 녹이려고 활활 모닥불을 피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병사들이 돌과 도끼, 삽으로 빠개고 있는 것은 장작이나 나무가 아니었다. 불경을 새긴 목판이었다. 이걸 본 한 장교가 기겁하고, 황급히 불을 끄도록 했다. 타다만 경판 조각까지 회수하여 경판고에 다시 꽂아놓게 했다.

훗날 안 사실이지만 신흥사의 그 경판은 은중경, 법화경, 다라니경등 소중한 유물이었다. 경판을 제작한 화주와 비용을 댄 시주의 이름은 모르지만, 조선 효종 때인 1650년에서 59년 사이에 만든 것이었다. 또 한글, 한자, 범어의 세 언어로 새긴 복합언어 경판으로 불교계의 희귀본이었다. 그렇게 모두 연기로 사라질뻔한 경판은 다행히도 277판이 남았고, 이때 소실을 막은 한 장교는 바로 2010125일 세상을 떠난 리영희 선생이다.

6·25 당시 양양은 수복지역으로 19518월부터 195411월까지 미 군정이 통치했다. 이때 신흥사 아미타여래좌상 뒤쪽 벽의 영산회상도가 사라졌다. 그 후 미국 LA 카운티박물관 수장고에서 여섯 조각으로 잘린 채 발견되어 20208, 66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곳 신흥사 명부전은 이승을 떠난 이들의 명복을 비는 곳이다. 조선 영조 때 지은 이곳에 조각승 무염이 1651년에 만든 목조지장보살삼존상이 있다. 지장보살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이 명부전 왼쪽에 잘생긴 향나무 한 그루가 마치 이승을 떠난 이들에게 바치는 향불처럼 우뚝 서 있다. 오랜 세월 온갖 재난과 전화를 묵묵히 지켜본 향나무이다. 물론 6·25 때 불쏘시개로 타는 경판을 보며 혀를 차고 발을 동동 굴렀을 리영희 향나무이다.

설악산 신흥사 리영희 향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