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도는 자로 재는 길이의 표준을 말한다. 이 척도는 보통 4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남자냐 여자냐 등의 간단한 구분 같은 명목척도이다. 둘째, 1등, 2등의 순서나 차례 같은 서열척도이다. 셋째, 어제 10시부터 12시의 온도와 오늘 10시부터 12시의 온도 변화를 비교하여 그 간격을 살펴보는 것 같은 등간척도다. 그러니까 어제는 6도였고 오늘은 10도이면 오늘의 온도 변화 등간이 더 크다. 넷째, 절대적인 기준을 정해서 비교하는 비율척도이다. 그러니까 일정한 기준으로 따지며 사칙연산, 분류가 가능하고, 차이를 비교하며 순위를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명목, 서열, 등간, 비율 등 4 척도는 단순에서 점점 복잡해지는 척도의 과정이다.
잣대는 자로 쓰는 대막대기나 나무막대기 따위를 가리킨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때는 어떤 현상이나 문제를 판단하는 기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렇듯, 척도와 잣대에 대한 용어는 명확하나, 비유적으로도 사용된다. 그리고 우리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이 척도와 잣대 속에서 살고 있다. 노래를 부르고 책을 읽는 것부터 직업이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일상에서 이 척도와 잣대가 작동하고 있다.
또 이 척도와 잣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심지어는 정반대가 되기도 한다. 자, 그럼 다음의 두 경우를 위 척도와 잣대로 생각해보자.
정인각은 일제강점기에 충남 공주군 계룡면장이었다. 그리고 중일전쟁 때, 군용물자 조달 및 공출업무, 군사 원호업무, 국민 여론 환기 및 국방 사상보급 선전업무, 국방헌금 및 헌납자금 모집업무 등을 했다. 일제 측 자료인 ‘지나사변 공적조서’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총독부는 그가 ‘오타니 마사오’로 창씨개명한 일까지 보도해주었다. 이 정인각의 아들 정석모는 경찰관으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군부정권에서 내무부 치안국 경무과장, 내무부 차관, 내무부장관, 강원도지사, 충남도지사, 공화당 국회의원, 민정당 국회의원 등 출세 가도를 달렸다. 특히 전두환 정권인 1985년 내무부 장관으로 민주화운동 탄압에 앞장섰던 독재정권의 부역자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자민련 국회의원을 지내고 지역구를 자기 아들에게 물려줬으니, 그 아들이 바로 정진석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이다. 경상도의 밀양 이북은 온통 텅 비어서 기찰하는 곳이 없어 토적이 성행하였다. 이 무렵인 선조 27년 8월 22일의 ‘선조실록’ 내용이다.
‘정기룡은 나이는 젊으나 고을 일을 잘 처리해 아전과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정기룡을 토포사로 하여 평시에는 토적을 잡고 왜변에는 적병의 길을 끊게 하소서.’
그렇게 정기룡은 3남 지방의 토적을 토벌하는 토포사가 되었다. 정기룡은 도적들을 평정하고 그들에게 둔전에서 농사를 짓게 하여 양식을 자급하고 남은 곡식으로는 피난민을 보살폈다. 또한, 그들 중 날쌔고 건강한 자를 뽑아 병사로 삼았다. 정기룡의 군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였으니 ‘감사군’은 그들을 일컫는 말이다.
함양전투에서 명군의 장수 이절이 전사하자, 7백여 병사들이 감사군에 소속되기를 원했다. 명의 황제가 이를 허락하고 정기룡에게 명의 총병관 직위를 주었다.
상주의 아전 중 전성수, 이승근, 이봉 등이 부정이 많아 당시 상주 목사 김해에게 파직당했다. 왜가 오자 이들은 왜의 앞잡이가 되어 재물을 약탈하고 여염집 부녀자를 적장에게 바쳐 환심을 사는 등 횡포가 극심했다. 이들의 목을 정기룡의 감사군이 베어 백성들 앞에 효시하자 왜는 감히 출몰하지 못했다.
왜는 조선과 전쟁한 적이 없다는 무리 따위와 목숨을 걸고 왜와 싸운 정기룡 장군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감히 불경이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정의의 척도와 잣대인지 잠깐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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