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생 한번 가면

운당 2022. 12. 26. 07:50

 

민요 성주풀이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영웅호걸이 몇몇이며 절세가인이 그 누구냐라는 노래 가사 속 무덤은 중국 허난성 뤄양시의 망산이다. 이 망산은 중국 고대 9개 왕조의 수도인 뤄양시 북쪽 10여 리의 해발 300, 동서로 100에 이르는 산줄기이다. 이곳에 후당 이전의 황제릉 24기를 비롯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수십 만기의 무덤이 있다.

성주풀이가 귀에 익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노래 속 북망산은 낯설지 않다. 백제 의자왕과 아들 부여융, 흑치상지와 아들 흑치준, 고구려 연개소문의 둘째와 셋째 아들인 남생과 남산, 남생의 둘째 아들 헌성, 연개소문의 고손자 비 등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이들 무덤 유적과 유물이 중국에 있는 것이 참으로 비통하지만, 어찌 보면 다 자업자득이었다.

645년이다. 한겨울에 고구려 침략에 나선 당군은 안시성에서 10만의 전사자를 냈다. 이때 안시성주 양만춘의 화살에 당 태종 이세민은 한쪽 눈을 잃었다. ‘검은 꽃이 흰 깃에 떨어질 줄 어찌 알았으랴의 검은 꽃은 당 태종의 눈, 흰 깃은 양만춘의 화살이니 고려 이색의 시구이다. 이 일로 이세민은 쉰셋인 649년 병사했다. 655년이다. 당고종 이치가 부친의 원한을 갚고자 정면진소정방을 고구려로 보냈다. 옳다구나, 백제는 이 틈에 신라를 여러 차례 공격했고 신라왕 김춘추는 당에 구원을 요청했다.

마침내 운명의 660년이다. 당고종은 먼저 백제 함락을 결단하고 3월에 소정방에게 수륙대군 13만을 주었다. 또 김춘추에게 군사 5만을 동원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서쪽의 당군, 동쪽의 신라군을 맞게 된 백제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660710일이다. 소정방은 백마강(금강) 하구 기벌포(장항)에 이르렀다. 2만의 백제군은 서쪽 언덕에 있었다. 소정방은 백제군의 불화살을 피해 동쪽 해안 갯벌에 버드나무와 갈대로 엮은 버드자리를 깔고 전선을 댔다. 그리고 육지로 오른 선봉대와 수륙 협공에 나섰다. 중과부적의 백제군에게 하늘도 무심했다. 마침 밀물이 차니 당군이 아귀처럼 달려들었고 천지는 비명으로 가득하여 마치 지옥이었다.

660713일이다. 소정방은 사비성의 턱밑에 이르렀고, 의자왕은 웅진으로 도주했다. 닷새 뒤 18, 성주 예식의 배신으로 의자왕은 사로잡혔다. 의자왕은 차고 있던 칼로 목을 찌르려 했으나 실패하고 소정방 앞에 끌려나갔다. 소정방은 이때의 일을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에 자랑스레 새겼다.

이 사찰 석탑에 새겨진 당의 정4품 벼슬 우무위중랑장 김양도는 신라 진골 귀족으로 기벌포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문인이자 화가였던 김양도는 여섯 차례나 당에 들어가 백제의 정보를 눈에 보이듯 제공했던 외교관이자, 밀정이었다. 금강하구에서 사비성에 이르는 지형, 각 성의 상세한 상황, 갯벌에 깔았던 버드자리의 준비 등도 다 그 정보의 산물이다.

김양도는 말년에 당의 인질이 되어 옥사하였고, 장안 서쪽 언덕에 묻혔다. 백제 멸망의 주역이었지만 조국 신라에 버림받은 인물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렇듯 장황하게 천 수백 년 전 지난 일을 되새기는 것은 이 김양도의 행적이 과거가 아닌 현재를 반추하며, 타산지석이 아닌 반면교사의 교훈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의 검찰은 그들만이 가진 내밀한 정보로 상대의 입을 막고 발을 묶고 있다. 그나마 그들이 김양도처럼 타국의 앞잡이가 아닌 것이 다행이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는 법이다. 이들의 밀정 노릇이 또다시 외침의 빌미가 되지 않는다고 어찌 감히 말하랴?

성모 마리아의 하늘 보기는 공경이지만, 빈곤 포르노의 하늘 보기는 천박이다. 159 망자의 49제에 맞춰 선물 떡 돌리기, 술잔 자랑에 화들짝 미소, 이런 일련의 일을 입 닥쳐와 꼼짝마로 입을 막고 발을 묶는 부화뇌동의 검찰과 정치인들은 천박에 역겹고 추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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