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솝이 살아있다면

운당 2023. 2. 17. 07:36

역사에 가정은 없다. 설령 신이더라도 무덤에 묻힌 자를 살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세상이 어수선할수록 사람들은 역사의 가정을 꿈꾼다. 왜냐하면, 99개 가진 자가 100개를 채우려 하고, 이것은 1개나 1도 없는 자의 것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누구에게는 소망이자 기쁨이 되고, 누구에게는 낙망이고 절망이 되는 세상이 지난 세월의 역사고, 앞으로도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민초는 역사의 가정을 바라며 세상이 바뀌길 바라지만, 이는 깊은 물에 빠져 썩어가는 지푸라기를 잡고 있음과 같다.

지난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재판장 이준철)는 곽상도 전 의원에 대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했다. 내용인즉 이렇다. 화천대유는 대리직급 사원으로 6년 일한 곽상도의 아들 곽상채에게 퇴직금으로 50억을 지급했다. 곽 씨의 퇴직 전 월급은 380만 원 정도였다. 이 급여 수준의 직장인이 12년 정도 일하면 퇴직금이 5천여만 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50억 원은 무려 1200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1200년의 퇴직금을 어떻게 받았느냐는 질문에 곽 씨는 몸이 아파서 받은 산재 위로금 격이라고 해명했다. 곽 씨가 제출한 진단서의 병명은 이석증이다. 이 병은 몸의 균형을 잡는 귀속 반고리관의 칼슘 덩어리가 떨어져 돌아다니며 어지럼증을 유발한다. 하지만 며칠이면 회복되는 병이기도 하고, 더욱 곽 씨는 화천대유 근무 당시 조기축구회 회원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곽 전 의원에 대한 무죄 이유는 아들 곽 씨가 성인이고 결혼해서 독립적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논리는 궤변이다 못해 참으로 참담하다. 성인이 되도록 결혼도 못 시키는 부모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죄인이냐 아니냐가 자식 장가를 보내느냐 못 보내느냐이니 너 장가 못 보낸 내가 죄인이다며 통곡할 일이다.

그러니까 얼마 전 조국 전 장관의 딸이 장학금으로 받은 6백만 원에 대해 유죄 판결이 있었다. 이 사건은 조 양이 부산대 의전원을 다니며 3년간 2백만 원씩 3번 받은 장학금을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인정한 것이다. 당시 조 장관 측은 부산대 의전원에 장학금 지급을 요구한 적이 없고, 독립적 생활을 하는 조 양이 받은 금품을 아버지가 받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조국 전 장관은 딸이 결혼하지 않아서 죄인이 된 것이다.

그렇게 이 두 사건은 대표적인 유검무죄 무검유죄라며 비판을 받는다. 그리고 조 양의 6백만 원이 엄청난 뇌물, 곽 씨의 50억 원이 그저 라면이나 껌값이 된 것은 결혼 여부로 판결 난 것이다. 그렇게 곽 씨는 효자, 조양은 천하의 불효자가 되었다.

이 두 사건을 보면서 문득 숱한 우화를 쓰고 모은 그리스의 이솝이 살아있다면 다음과 같은 우화 하나가 더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한 마리의 대머리 개가 있었다. 이 개가 양털 가발을 쓰고 자기도 양이라며 양의 재산을 빼앗았다. 이에 재판이 벌어졌다. 양털 가발을 쓴 대머리 개는 친구 개들에게 뇌물을 주고 자신이 양이라는 거짓 증언을 부탁했다. 그 결과 개는 재판에 이겨 양의 모든 재산을 차지했고, 양은 남은 털마저 모두 깎아 재판 비용을 물어야 했다. 이때 재판장이 판결하면서 사용한 방망이는 대머리 개가 상납한 양털 방망이였다. 이후 대머리 개는 재판에 재미를 붙여 소털 가발을 쓰고 소 행세, 돼지털 가발을 쓰고 돼지 행세를 하며 소와 돼지의 재산까지 모두 빼앗았다. 이후 나라 이름은 개판공화국이 되었으며 대머리 개는 두령이 되었다. 어느 날 대머리 개가 양털 가발을 쓰고 지나가는데,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었다. 대머리 개의 가발이 벗겨지자, 가까이 있던 양과 소, 돼지가 달려들어 이놈이 양이 아닌 대머리 개라면서 마구 짓밟았다. 대머리 개가 나는 개가 아니고 양이며 두령이라고 외쳤으나, 누구 하나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솝이 살아있다면 역사에 남을 우화가 한 편 더 남을 텐데, 이 역시 가정이니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마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0) 2023.03.06
기미가요와 욱일기  (0) 2023.02.22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0) 2023.01.30
인생 한번 가면  (0) 2022.12.26
잃을 신뢰나 있는지  (0) 2022.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