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학교와 공부가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면, 그 이유는 여럿일 것이다. 그중 공통점을 하나 찾는다면 바로 평가일 것이다. 국가의 수장인 대통령도 여론조사라는 평가로 명군과 혼군으로 나뉘고, 심지어 탄핵에 내몰리기까지 하잖은가? 학생에게도 이 평가는 학교생활을 유지하는 관건이며 일생을 좌우하는 시험대이다. 달달 외웠건, 어쨌건 평가의 좋은 결과는 미래를 보장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남한의 교육을 담당한 미군정청 학무국은 ‘교수요목 제정위원회’에서 새 교육과정과 교과서 대신 교수요목을 제정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 뒤 문교부는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에 미 군정의 교과과정을 전면 개편하여 ‘교육과정 시간배당 기준령’을 제정하고, 이듬해 새 교육과정을 공포하였으니, 제1차 교육과정(1954~1963)이다.
이후 제6차 교육과정(1992~1997)까지 학교에서 가르치고 학생들이 배웠던 과목 중 하나가 농업(실과)이다. 물론 지방 소도시 소재 중, 고등학교에서 많이 채택했고 중학교는 3학년, 고등학교는 2학년 때 남학생에게 가르치는 학교장 선택 과목이었다. 하지만 연합고사 및 학력고사 시험 과목이기도 했다.
‘이 리비히의 물통 그림은 꿈속에서도 외워야 한다.’
그때 농업 선생님이 분필로 칠판을 탕탕 치며 강조했고, 시험에 꼭 내는 문제 중에 ‘리비히의 물통’이 있었다. ‘최소율의 법칙’ 또는 ‘최소양분율의 법칙’이라고 하는 이 리비히의 물통 그림은 ‘같은 밭에서 난 농작물의 크기는 왜 서로 다를까?’에 대한 의문점을 해결해 주었다.
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는 농작물의 생육이 과잉 영양분이 아니라 부족 영양분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양분, 수분, 온도, 광선 같은 필수 인자 가운데 공급이 가장 적은 인자에 의해 농작물의 성장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어떤 인자가 100%이고 어떤 인자가 19%이면 농작물의 성장은 그 19%가 좌우한다. 그러니까 ‘리비히의 물통’은 나무판자를 덧대 만든 물통 중 가장 높이가 낮은 판자에 의해 담기는 물의 양이 결정되는 그림이다.
이 이론은 우리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커다란 댐의 붕괴가 작은 쥐구멍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삶의 위기도 작은 실수나 사소한 준비 부족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단위가 확대될수록 위험도 역시 증가한다.
배추 농사 3년에 한 번만 잘 지어도 먹고 산다는 말처럼, 일 년 농사를 망치면 다음 해에 잘 지으면 된다. 가까운 친구 간의 사소한 다툼도 곧바로 사과하고 다시 화해하면 예전처럼은 아니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구성원이 다양한 사회와 국가의 차원이 되면 문제가 아니라, 재앙이 된다. 공정과 상식은 없는 자의 몫이고, 역시 법과 원칙도 없는 자만 지켜야 한다면, 그 사회는 결국 리비히의 물통처럼 최소율의 법칙에 따라 파국의 길을 걷는다. 지난 역사의 전제국가와 대제국들이 어떻게 망했는지를 살펴본다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어떤 집단이 아무리 잘해도 한 조직원의 망언과 실책은 그 집단 전체를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다. 걸핏하면 남의 탓, 말끝마다 책임을 전가하는 철면피한 자들이 지배하는 집단은 미래가 없다. 남의 허물에는 분노하나, 제 허물과 가족의 허물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말로 감싸고, 나아가 미화하는 데 급급한 무리에게 무얼 바랄 것인가?
우리의 삶터는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빌려 살고 있을 뿐이다. 성범죄 동영상이 무죄가 되고, 권력자의 논문표절도 정당화, 세계를 뒤흔든 욕설을 찬양하는 철면피한 사회는 최소양분율의 법칙에 따라 단죄를 받고, 새로운 질서를 위해 붕괴 됨이 마땅하다.
줄탁동시! 어미와 병아리가 서로 쪼아서 껍데기를 깨고 새 병아리가 나오듯 말이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잃을 신뢰나 있는지 (0) | 2022.11.23 |
---|---|
척도와 잣대 (0) | 2022.10.20 |
국군의 날 부대 열중 쉬어 (0) | 2022.10.02 |
과학 도주방역 (0) | 2022.08.08 |
총체적 난국에서 나라 살림 일으킬 후보는? (0) | 2022.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