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무등일보 아트플라스 문화뜨락

운당 2017. 8. 5. 09:46

<문화뜨락>

터널을 빠져나오니 더불어 사는 곳이었다

김 목(남도문학 발행인)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니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졌다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의 소설 설국의 시작이다. 시와 같은 첫 글의 묘사가 선명해서, 이따금 떠올리곤 한다.

설국의 무대는 일본 니가타 현으로 눈의 고장이다. 하지만 가보지 않아서 소설 속의 풍광은 가늠만 한다.

광주의 북쪽지역을 다녀오며 장성 못재 터널을 나오면 눈앞에 무등이다. 그 무등은 , 이제 집에 다 왔구나. 내 삶터구나.’이다. 스르르 눈이 감기고 마음은 포근해진다. 어머니의 품을 느낀다.

하얀 눈이 펄펄 내려 온 산천을 덮은 날, 못재 터널을 빠져나와 무등을 보던 날이 생각난다.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는 모습이지만, 어두운 터널을 나와서인지 무등이 품은 고을은 더 정겹고 아름다웠다.

삶의 터널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인생의 길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터널은 삶의 굴곡이고 구비이며, 분수령이라 여겨진다.

어두운 터널을 나오니 푸른 들판이었다. 두 팔 벌려 달려보려는데 다시 터널이다. 어렵사리 헤쳐 나오니 이번엔 내려쬐는 햇볕, 오르막길에 그늘도 없다.

오르막길 힘겹게 오르니 다시 터널이다. 이제 다시는 햇빛을 못 보나 했더니, 어느새 터널 밖이다. 눈앞에는 그리운 이들이 사는 마을이다. 한 마디로 절대 절망도 없고, 완벽한 행복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명확하다. 결코 어떤 경우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는 것이다. 절망의 반어는 행복이 아니라, 희망이다. 절망은 오늘의 포기이고 희망은 내일의 믿음이다.

지난 10여년을 되돌아보니 정말 그렇다. 10여년, 삶의 재미가 없었다.

바위섬! 맞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 기분은 거센 파도에 휩싸인 그 바위섬으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그건 개인적인 능력부족, 일의 어려움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었다. 주변을 옥죄는 불통사회의 강압과 독선에서 오는 실망과 좌절이 더 컸다.

그 중 하나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공사였다. 이따금 영산강에 나가 썩어가고 죽어가는 걸 보며 이 나라는 내 나라가 아니구나 싶었다. 소위 대학 교수나 전문가들이 오염된 강물은 유람선의 스크루가 돌아서 정화 시킨다. 로봇 물고기가 감시하니 걱정이 없다.’며 곡학아세, 궤변을 늘어놓는 것에, 마음은 이 나라를 떠났었다.

2014416일의 세월호는 부끄러움을 넘어 참담함이었다. 박근혜로 대표되는 정권의 추악함, 분노였다. 그리고 최순실로 이어지는, 통째로 희망을 앗아가는 죽음 같은 긴 터널이었다.

다시는 이 깊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겠지.’

201759일을 잊을 수가 없다. 대통령 선거 개표 방송을 앞두고 마음이 떨려서 텔레비전을 볼 수가 없었다. 그동안의 실망, 좌절, 외면의 습관에서 오는 숨 막힘,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거짓말쟁이에, 호남 사람 씨를 말려버린 사람이야.’

유력 후보를 비난하던, 장면이 스치면서, 결국 텔레비전을 껐다.

그러나 결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었다. 봄이 오면 새 움이 트고, 피어나는 작은 풀꽃에는 나비가 난다. 4대강의 거짓과 사기를 넘어, 불통과 참혹함의 세월호 분수령을 지나, 이제 진정한 희망의 날이 온 것이다.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는 것은 새로운 희망의 미래를 여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날마다 마음이 편하다. 개인적인 어려움은 여전하지만, 세상은 내일의 희망으로 평화롭다.

불통과 억압의 터널을 빠져나오니 더불어 사는 곳이었다. 세상의 낮은 곳까지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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