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학동 나그네의 깊고 푸른 밤
선학동은 한반도 남쪽 땅끝 마을 중 하나다.
한반도의 정남쪽이라는 장흥 정남진 전망대를 둘러보고, 이어지는 해변도로가 천자의 관을 쓴 천관산에 이른다. 그 천관산이 한 발을 내딛고 있는 회령성의 회진면 소재지를 지난 뒤, 나지막한 잔등을 슬쩍 넘으면 바로 선학동 마을이다.
산자락을 학의 날개처럼, 법승의 장삼처럼 펼치고 선학동을 감싸는 산은 공지산이다. 주인이 없는 산이란다.
비어있는 산 공지산이라? 천지만물의 창조주는 비워놓을 뿐이니 자궁처럼 생명의 잉태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쨌든 푸른 하늘과 바람이 벗인 학이나, 세파를 초월한 법승에게 주인이 있으랴?
또 공지산 봉우리는 고깔을 쓴 법승의 머리처럼 뾰족하여 관음봉이라고도 하고, 득량만에 물이 차면 그 산그림자가 마치 나는 학처럼 비춘다 하여 학산이라고도 한단다.
선학동은 산 아래 마을이라는 산저(山低)마을이었는데, 이청준 선생의 선학동 나그네를 영화화 하면서 개명하였다 한다.
이 선학동 마을에서 해마다 메밀꽃 축제를 열고 있다.
2015년 10월 4일 그 메밀꽃 축제를 마치는 날 땅거미 지는 해질 무렵이다. 우연히 그 선학동에 들렸다.
완숙기를 지났지만, 메밀꽃은 아직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더니 하얗다 못해 이내 푸른빛이 되었다.
깊고 푸른 밤이라더니, 그게 메밀꽃밭에서 맞는 밤이구나. 메밀꽃밭 한 귀퉁이에 몸을 내려놓으니, 하얀 마음 위로 깊고 푸른 밤의 평화가 밀려온다.
산 아래 선학동 마을회관에서는 축제를 마친 주민들의 노랫소리가 흥겹고, 눈을 들어보는 득량만에도 불빛이 별처럼 걸린다. 그 별빛이 바닷물 깊이 몸을 내리니 회진과 노력도를 잇는 다리가 마치 이승과 저승의 세계를 함께 품은 듯하다.
사랑하는 이가 있는 세상에서 바랄 게 더 있으랴?
하얀 메밀꽃이 마음에 피어 푸른 밤은 깊어가고, 숨길 수 없는 사랑은 남해 바닷가 마을에 별이 된다.
깊어가는 가을이다.
마음을 비우고 싶으면, 그리고 아름다움이나 사랑을 채우고 싶으면 남해바닷가 선학동 마을을 찾아도 좋으리.
<땅거미 질무렵 선학동에 이르렀다>
<마을 표지판>
<이청준 선생이 반겨준다>
<푸른 밤이 찾아오고>
<선학동은 흥겹고>
<학도 날개를 접고 돌아온다>
<푸른 밤은 깊어가는데>
<하늘과 바다를 별다리가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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