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 여행기

6백 71살, 8백 살, 그리고 2천 5백 살 어르신

운당 2015. 10. 23. 19:09

<영암 서호면 엄길리 기행>

 

671, 8백 살, 그리고 25백 살 어르신

 

가을이 깊어간다. 들녘은 황금벌판이고, 휘적 불어가는 바람에도 낙엽이 우수수 날린다.

그만큼 하늘이 넓어지고, 안 보이던 숲길도 보인다.


20151021, 이른 아침 길에 섰다.

전남 영암 서호면의 엄길리 암각 매향명(奄吉里 岩刻 埋香銘)을 뵙기 위함이다. 이 암각 매향명은 1344년에 새겨졌으니 올 해 연세가 671살이다. 철암산(鐵岩山) 5부 능선쯤의 널따란 자연암반에 21118자로 음각(陰刻)된 고려시대 기록유산이다.

가까이의 청용리, 장천리 일대의 지석묘 발굴조사 시, 산속에 글씨바위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귀하게 얻은 매향명이다.

 

휘적휘적 거미줄과 아침 이슬을 털며 철암산을 오른다. 산길에 도토리가 지천이고, 보라색 꽃을 수줍게 매단 도라지도 보인다.

한 두어 번 숨을 고르느라 쉰 뒤, 마침내 671살의 매향비 어르신을 뵙는다.

 

고려 말과 조선 초기 해안과 섬 지방에서 향나무를 갯벌에 묻고, 그 위에 비석을 세운 뒤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매향, 향나무를 묻는다.’했고 우리는 그 비석을 매향비라고 한다.

 

이 엄길리 매향명은 경남 사천매향비(보물 제614, 고려 우왕 13, 1387) 보다 43년 빠르고, 명문이 전하지 않는 평북 정주의 침향석각(고려 충숙왕 4, 1335) 보다 9년이 늦지만 국내 현존 매향비 가운데 연대가 가장 앞선다고 한다. 매향비 중 가장 어르신이라는 말이다.

또 이 엄길리 매향비에는 명문(銘文)에 조성시기, 목적, 매향장소, 매향집단, 발원자, 화주와 각주 등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2001417일 보물 제1309호로 지정되었다.

 

이어 마을로 내려가 8백 살 어르신을 뵙는다. 고려시대에 민정이라는 아낙네가 자식의 과거급제를 지성으로 빌던 둘레가 8m나 되는 커다란 느티나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성으로 빌었건만 아들이 첫 과거에 낙방하자, 느티나무가 시들었다 한다. 하지만 다음 해에 합격을 하자, 느티나무에 다시 새잎이 돋았다고 한다.

 

신령스런 나무라고 해서 기를 받으려고 두 팔로 안아봤더니, 다섯 아름이 더 된다. 어르신 안아보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어 25백 살도 더 되셨을 청동기시대 고인돌을 뵈러갔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대게 탁자식과 바둑판식, 뚜껑식 등으로 구분한다.

엄길리 고인돌은 길이 6m에 가까운 거대한 고인돌 2기를 중심으로 20여 개가 2열로 있는데 바둑판식, 뚜껑식이 혼재해 있다.

여기서 민무늬토기, 돌화살촉, 삼각형돌칼, 홈자귀, 숫돌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고 세형동검 조각은 우리나라 고인돌에서 처음 나왔다 한다.

 

이렇게 이 날은 아침부터 서둘러 어르신들을 뵈웠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면 좌파가 되고, 올바르지 못한 인간이 되는 세상, 반역자, 비애국자가 되는 나라다.

하지만 한 줌 티끌도 안 되는 것들이, 입만 열면 뱃속의 똥 냄새 피어나는 년, 놈들이 깝죽대는 것 아니겠는가?

 

아무런 말씀은 없으시지만 그렇게 잠시 어르신들의 품에 기대어 맘을 달래니 평화가 거기다.

속절없이 가을은 깊어만 간다.


<이쯤 오르니 땀이 조금 난다.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

<마침내 도착! 굴처럼 보이는 곳, 오른쪽 바위가 글씨바위, 암각명이 있다.>

<오랜 풍상에도 글씨가 또렷하다.>

<덮개돌이 있어서 풍상설우를 견디어냈으리라>

<황금들판, 앞산 능선의 바위가 암각명이 있는 곳이다>

<철암산, 예전에는 바닷물이 발밑을 적셨으리라.>

<8백살 어르신>

<역사를 장악하려는 진짜 친일매국노, 반란수괴 무리들도 보셨을 테지만...

국정교과서 집필자들을 비공개할 모양이던데 도적놈들이나 파렴치범들일까?>

<지석묘 어르신들>

<엎드려 비나이다. 힘 없는 민초들을 보듬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