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산 계곡 버들치
<병풍폭포>
<계곡물 따라 맨발로 걷는 길을 택해도 좋고, 이 나무데크 길을 걸어도 좋다>
<데크 길이 조금 높아지니 계곡이 저만큼이다>
<오르막 길, 여기서 맨발로 걷는 길로 내려 갈 수도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광>
<삼인대 유적지>
<강천사 대웅전>
<버들치 노니는 금강계곡에서 눈, 귀를 씻고>
<강천문을 되돌아 나오면 다시 속세다. 극락과 속세는 문 하나 차이다.>
세상의 도리를 깨닫게 하는 건 학문이요, 세상의 이치를 따지는 건 글이라고 한다. 그래서 학문은 삶의 원천이요, 글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하지만 학문을 익힌 자들은, 세상의 도리는 부와 권력의 개가 되는 거라고 한다. 글을 쓰는 자들 역시, 세상의 이치는 부와 권력의 입맛을 상케 하지 않는 거라 한다.
이쥐놈닭그년 세력이 기승을 부리는 게 바로 그자들의 잘난 도리와 이치 때문 아닌가?
일례를 들어보자. 배의 스크류가 산소를 발생하여 강을 깨끗하게 한다며 4대강 건설을 주장했던 자는 이쥐놈보다 더 나쁜 놈이다. 한 마디로 패죽일 자다.
이야길 꺼내기도 가슴 아프지만 세월호, 그 아이들이 죽어가는 시간에 7시간을 떡치고 나와 ‘구명복을 입었을 텐데 아직 못 구했냐’했던 닭그년보다, 그 7시간 행적이 국가안보에 관한 일이라고 한 놈도 마찬가지로 쌔려죽일 자다.
이 세상이 어찌하여 돈만 있으면 죽은 자도 살아있다 우기고, 권력만 있으면 산자도 죽었다고 아웅하는가?
무신불립!은 언감생심이다. 근자에 식물인간, 가짜시체까지 판치며 사기협잡이 난무하니 신뢰와 믿음은 사전에서 아예 사라진 말이다.
그렇게 백성을 살리는 학문과 글 대신 헌법개판소, 개법원, 걱가걱정원, 견찰, 떡편기래기 등 권력의 독단독주불통만 해골뼈다귀니 숨이 막힌다.
학문을 제대로 익힌 자들이 세상의 도리를 깨달아 집중으로 선정을 펴고, 글을 쓰는 자들 역시 칼을 품고 정의와 분기탱천의 붓을 든 그런 세상이 그립다.
문무겸비, 세상의 도리와 이치를 위해 목숨을 걸줄 아는 선비가 새삼 그리워지는 것이 그런 연유다.
그리움의 칠석비도 내리고, 더위를 한풀 꺾는 선선한 처서비도 내렸다. 하늘은 푸르고 치솟은 뭉게구름이 솜사탕일 듯 눈을 달큼하게까지 한다.
그렇게 2015년 가을이 왔다. 이 가을 손님을 맞으러 강천산을 찾았다.
강천산(583.7m)은 전라북도 순창에 있다. 군립공원이고 호남의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산과 계곡, 암벽과 폭포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계곡을 따라 물소리와 함께 걷는 산책로는 잔모래가 깔린 평탄한 길이어서 맨발로도 걸을 수 있다. 또 산허리와 봉우리까지 휘감는 나무데크 길도 있다. 중간 중간 의자와 전망대가 설치돼 있어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를 즐길 수 있다.
병풍폭포, 천우폭포, 금강계곡 등 손바닥 길이의 버들치가 노니는 폭포와 소, 계곡을 지나 한참을 걸어 규모가 크지 않지만 도선국사가 창건한 강천사에 이른다.
그 강천사 앞개울에 놓인 멋진 돌다리 건너 비각이 한 채 있다. 삼인대다.
때는 1506년, 중종반정이 성공하여 연산군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따라서 그의 비인 거창신씨도 조선왕조 최초의 폐비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이곳 삼인대는 연산군의 비 신씨가 아닌 중종의 원비인 단경왕후 신씨와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조선 11대 임금 중종이 진성대군 시절 1499년 혼인, 1506년 반정성공으로 왕후가 되었으나, 역적 신수근의 딸이라 하여 8일 만에 폐위되었다. 서울 인왕산의 치마바위가 또 이 신씨의 한이 서린 이야기다.
아무튼 신씨 폐비 뒤, 새 왕비가 된 장경왕후도 10년 만에 죽었다. 이 소식을 듣고 당시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류옥 등 세 사람이 비밀리에 이곳 강천산 계곡에 모여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했다. 이때 세 사람은 각자의 관인을 소나무 가지에 걸고 관직과 목숨도 함께 걸었다. 삼인대란 이름은 그 관인 셋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일로 김정 등이 대사간 이행의 탄핵을 받아 귀양을 가게 됐을 때다. 정암 조광조가 나서서 ‘대사간이 상소자를 탄핵하고 벌하는 것은 언로를 막는 것으로 국가 존망에 관계되는 일”이라했고, 중종은 그 간언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일자리 창출 수십만, 경제유발효과 수백조다. 웬 국격 떨어지는 소리?’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병걸리셌서요?’
위 말은 중종의 말이 아니다. 이쥐놈닭그년의 못생긴 서비스걸 아몰랑 어다. 새삼 김정, 박상, 류옥, 조광조처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대쪽선비가 그립다.
그 삼인대를 지나 또 걸으면 삼한 시절 9장군이 전투에 패해 죽을 곳을 찾아 들어왔다가, 죽기를 각오하고 다시 싸우자고 결의했던 9장군 폭포가 있다.
고소공포증이 없으면 숨을 멎게 하는 구름다리도 건너보고, 그냥 땀을 좀 더 흘려 산을 오르면 담양의 금성산성이다.
등산이 어디 쉬운 일이랴?
하지만 이곳 강천산은 유모차를 끌고도 유유자적 산길을 걸으며 폭포와 소, 계곡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 풍진 세상에서 신선의 경지를 엿볼 수 있다.
세상사 별건가? 평화롭게 노니는 강천산 맑은 계곡의 주인 버들치와 함께 눈도 씻고, 귀도 씻고, 그렇게 마음을 씻으며 가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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