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녀의 영웅들 1권-신들의 시대
1. 세상을 열다
(1) 빛
그 빛은 둥근 공처럼 보였다. 그리고 따뜻하였다. 고요하고 어두운 곳에서 그 둥글고 따뜻한 빛은 조용히 떠있었다. 세상은 그저 고요하였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가늠하기 힘든 오랜 세월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자 둥글고 따뜻한 빛 주변에 변화가 일었다. 양팔저울에 똑같은 무게를 올려놓은 것처럼 움직임이 없던 세상에 움직임이 있었다. 양팔 저울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둥글고 따뜻한 빛 주변의 어둠이 얇아지고 가벼워지고 얕아지며 덩어리가 작아졌다. 둥글고 따뜻한 빛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어둠이 두꺼워지고 무거워지고 짙어지며 큰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자 어둠의 깊이와 두께와 무게와 모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두꺼운 어둠, 얇은 어둠, 무거운 어둠, 가벼운 어둠, 짙은 어둠, 얕은 어둠, 큰 어둠, 작은 어둠 등 어두움의 형태가 여러 가지로 바뀌었다.
그렇게 어둠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둠이 물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무거운 어둠이 가벼운 어둠으로 흘렀다. 그 무거운 어둠이 가벼운 어둠과 부딪쳤다. 그러면 무거운 어둠에 부딪친 가벼운 어둠이 출렁였다. 그 출렁이는 어둠들이 또 서로 부딪쳤다. 그러자 이번엔 그 출렁임이 일렁대며 소용돌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세상은 고요했다. 그저 움직임만 있을 뿐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멀리서 보면 그저 깊고 짙은 어둠이 지배하는 그런 세상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가늠하기 힘든 오랜 세월이 또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번쩍!’
처음엔 어둠 속에 켜놓은 촛불 같은 빛이었다. 가까운 곳에서는 빛이지만, 멀리 떨어지면 그 촛불 빛은 어둠에 묻히고 만다. 그렇게 처음엔 촛불처럼 어둠에 묻혀있는 작고 둥근 빛 덩어리였다.
그 둥글고 따뜻한 빛이 갑자기 대폭발을 일으켰다. 셀 수없이 많은 눈부신 빛줄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앞과 뒤, 오른쪽과 왼쪽, 위와 아래 등 세상의 모든 곳을 향해 쏜살같이 퍼져나갔다.
그동안 어둠은 갈라지고, 뒤틀리며 모양과 크기와 무게가 달라져있었다. 그 어둠의 틈새를 향해 빛은 무서운 폭풍우처럼 퍼져나간 것이다.
번쩍하는 짧은 순간에 대폭발을 일으키며 퍼져나간 빛으로 세상은 끝을 모를 만큼 크고 넓어졌다. 하지만 어둠도 만만치 않았다. 셀 수 없는 빛이 어둠을 가르자, 또 어둠도 셀 수없는 조각이 되어 크고 넓어진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폭발하는 빛처럼 어둠의 조각들도 폭발하듯 움직였다.
빛이 일직선으로 달려가면 어둠은 날카롭게 찢어지며 갈라졌다. 빛이 갈퀴처럼 사납게 할퀴면 너덜너덜 찢긴 어둠은 사납게 빛을 잡아채며 할퀴었다. 빛이 덩어리로 뭉쳐서 달려가면 어둠도 역시 빛을 향해 맞부딪쳤다. 빛이 안개처럼 퍼지면 어둠은 헝겊처럼 너풀거리며 빛을 덮었다.
빛이 세찬 힘으로 할퀴고, 맞부딪치고, 덮치면 어둠도 똑같이 그렇게 빛을 맞받아쳤다. 빛과 어둠은 그렇게 격렬하게 세상을 가르고 찢었다.
그럴 때마다 거칠고 세찬 폭풍우가 몰아치듯 세상은 혼란스러웠다. 빛과 어둠은 그렇게 세상을 온통 뒤흔들었다.
어둠에 막힌 빛이 덩어리가 되었다. 큰 덩어리도 있고, 작은 덩어리도 있었다. 그 빛 덩어리들이 형체를 가진 물질이 되었다. 빛과 열을 가진 별들이 된 것이다.
빛에 갈라진 어둠도 덩어리가 되었다. 빛덩어리처럼 어둠덩어리들도 형체를 가진 물질이 되었다. 빛과 열을 갖지 않았지만 그 어둠덩어리들도 별들이 되었다. 그렇게 또 알 수 없는 세월이 흘렀다.
어느 때부턴가 빛과 어둠은 서로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빛덩어리의 별들과 어둠 덩어리들의 별들이 모여서 커다란 세상을 이루었다. 작은 우주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또 그 작은 우주들이 모여 큰 우주가 되었다. 그렇게 빛과 어둠은 별이 되면서 우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 빛과 어둠의 별들은 서로 밀기도 하고 잡아당기기도 했다. 큰 별이 작은 별을 밀어내면 별들 사이는 점점 벌어져 더 크고 넓은 우주가 되었다. 큰 별이 작은 별들을 잡아당기면 작은 별들은 큰 별을 빙빙 돌았다.
밤새 내린 비에 잠긴 들판처럼, 그렇게 빛과 어둠은 별들이 되어 서로 밀치고 당기며 크고 넓게 퍼져나갔다. 달려가기도 하고 빙빙 돌기도 하면서 오묘하고 신비로운 큰 세상인 드넓은 우주를 만들었다.
그 끝없이 너른 우주의 한 쪽에 큰 우주가 있었다. 지금 우리가 은하계라 부르는 우주였다. 또 그 은하계 우주의 한쪽에 작은 우주가 있었다. 지금 우리가 태양계라 부르는 우주다. 그 태양계에는 빛과 열을 가진 태양을 비롯하여 8개의 별이 있었다. 8개의 별은 스스로 빛과 열을 내지 못하는 별로, 태양의 둘레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 태양계의 8개의 별 이름은 태양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이름을 붙여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라 했다.
태양이 사람의 머리라면 수성은 눈이고, 금성은 코이며, 지구는 입이었다. 화성은 젖가슴이고, 목성은 배꼽이며, 토성은 생식기, 천왕성은 무릎이며, 해왕성은 발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8개의 별이 지금의 사람처럼 태양을 중심으로 늘어섰다. 그리고 태양의 둘레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그 태양계의 3번 째 별인 입의 별 지구에 이상한 변화가 있었다. 태양의 빛이 8개의 별을 고루 어루만질 때였다. 머리, 눈, 코, 배꼽, 생식기, 무릎, 발의 별에서 각각 한줄기 빛이 솟구치더니 입의 별인 3번 째 별로 모였다. 여덟 빛줄기는 마치 봄바람에 살랑대는 물결 같았다. 그렇게 잔잔하게 물결이 일며 여덟 빛줄기가 서로를 감싸고 돌 때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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