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동화

황녀의 영웅들 1권-신들의 시대

운당 2015. 8. 14. 09:14

(2) 소리

그렇게 빛과 어둠이 별들을 만들고 있을 때다. 그 별들이 모여 작은 우주가 되고 그 작은 우주가 모여 큰 우주가 되고 있을 때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세상은 고요했다. 빛과 어둠이 맞부딪쳐 폭풍우와 번갯불이 휘몰아치는 무시무시한 혼돈과 혼란 속에서도 시끄럽지는 않았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일어나는 폭풍이었다. 오직 빛과 어둠이 세상을 찢어버릴 듯 눈부시게 소용돌이 칠뿐이었다.

그럴 즈음이다.

, 아아아아아아아아

어디선가 소리가 들린 것이다. 바로 태초의 소리였다.

사람의 머리라 할 수 있는 이글이글 뜨겁게 타고 있는 태양에서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소리가 들렸다. 무겁고 높은 소리였다. 눈의 위치에 자리한 수성에서는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코의 위치에 자리한 금성에서는 강하고 짧은 쇳소리가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가슴의 위치인 화성에서는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부드러운 소리가 들렸다. 배꼽의 위치인 목성에서는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는 소리가 들렸다. 생식기인 토성에서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소리가 들렸다. 무릎의 위치인 천왕성에서는 온 세상을 감쌀 듯 넉넉한 소리가 들렸다. 발의 위치인 해왕성에서는 잔잔한 물결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들이 모두 입의 위치에 있는 지구를 향해 몰려들었다.

머릿속 깊숙이 파고드는 높은 소리가 있었다. 들릴락 말락 낮은 소리도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다란 소리의 틈새에 짧은 소리가 끼어들었다.

고막이 터질 듯 큰 소리에 맞서서 듣기 알맞은 작은 소리가 있었다.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모를 빠른 소리가 이어지고, 음 하나를 언제 마칠지 모를 느린 소리도 있었다. 그렇게 높고 낮고, 길고 짧고, 크고 작고, 빠르고 느린 소리가 한데 섞였다.

하지만 그 소리들은 각자 제멋대로의 소리일 뿐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높은가 하면 너무 낮았고, 긴가 하면 너무 짧았다. 너무 컸고 너무 작았다. 너무 빠르고 너무 느렸다. 소리들은 그렇게 다 제각기 따로따로였다. 혼란스럽고 시끄러울 뿐이었다.

그러기를 또 얼마동안이었는지 모르게 기인 시간이 흘렀다. 소리들은 차츰 무엇인가 불편함을 느꼈다.

소리들은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의 소리를 줄이고 상대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다른 소리를 이해하고 조금씩 조금씩 받아들였다. 높은 소리가 낮은 소리를, 낮은 소리가 긴 소리를, 긴 소리가 짧은 소리를, 짧은 소리가 큰 소리를, 큰 소리가 작은 소리를, 작은 소리가 빠른 소리를, 빠른 소리가 느린 소리를 받아 들였다.

다시 소리들은 상대를 바꿔가며 소리를 받아들였다. 이윽고 자신의 소리가 아닌 나머지 소리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서로의 소리를 이해하고 함께 어울렸다.

그러자 소리의 느낌이 달라졌다. 이제 각자의 소리가 아니었다. 한데 어울려진 그 소리는 아름다우며 슬프고, 두려우면서도 힘을 주었다. 무거운가 하면 가벼웠다. 낙망과 고통스러운 느낌인가 하면, 용기와 희망을 샘솟게 하는 소리였다.

이제 세상에는 세 가지가 존재하게 되었다. 어둠과 빛과 소리였다.

그래도 아직 세상의 주인은 어둠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어느 순간 빛에 의해 갈라지고 조각이 났지만 어둠은 우주를 장막처럼 덮고 있었다.

하지만 빛도 만만치 않았다. 어둡고 광활한 어둠을 향해 끊임없이 펴져 나갔다.

그렇게 빛은 쉼 없이, 아낌없이 자신을 작은 덩어리로 쪼개었다. 그리고 다시 그 빛 덩어리들이 뭉쳐서 크고 작은 별들의 무리를 이루었다. 그 별들이 끊임없이 어둠과 어울려 작은 우주와 큰 우주를 만들어냈다.

어둠과 함께 빛도 세상의 당당한 주인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생겼지만, 소리도 이제 이 세상의 주인이었다.

처음엔 서로 다른 한 가닥의 소리에 불과했지만, 서로 어울리면서 힘이 생겼다. 한데 뭉쳐서 느낌까지 만들어냈다.

세상의 첫 주인인 짙은 어둠이 형체와 질감이 만들었지만 느낌을 만들진 못했다. 두 번째 주인이 된 빛도 강렬하고 무시무시한 힘이 있었지만 역시 느낌을 만들진 못했다.

하지만 소리에는 느낌이 있었다. 서로 상대를 받아들이고 함께 어울려서 느낌이란 걸 만들어 내었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듣는 빛과 어둠에게도 차츰 어떤 느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둠은 느꼈다. 아니 생각했다.

나는 넓다. 나는 이 세상의 지배자다.’

어둠은 먼저 자신이 엄청나게 넓고 크다는 것을 느꼈다. 무겁고 깊으며 자신만이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강하다. 큰 힘을 가졌다. 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이다.’

빛도 느꼈다. 이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자신의 힘을 느꼈다. 자신이 한번 용솟음치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소리는 어둠과 빛에게 어떤 느낌과 생각을 주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일을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이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냈다. 새로운 소리는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느낌은 새로운 생각을 갖게 했다. 그 새로운 느낌과 생각은 어둠과 빛에게도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갖게 했다.

어둠에서 빛이 생기고, 그 빛과 어둠이 어울려 소리가 생겼다. 소리는 어둠과 빛을 깨워 느낌과 생각을 하게 만들어 세상은 날로 새로워졌다. 새 세상이 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