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금산의 의병들
‘친구들이 배 안에 있어요. 유리창을 깨주세요.’
‘당시 헬기에 유리창을 깰 도구가 없었지요.’
위의 말은 지난 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학생의 말이고, 아랫말은 그날 구조한답시고 출동했던 헬기 구조원의 말이다.
있으나 마나한 경찰, 구조대, 해군이었다.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하던 수천억짜리 구조함은 똥별과 쥐닭무리의 간식거리였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비참하고 황당한 그날이었다.
그리고 일 년 뒤,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는 2015년 4월 16일 아침이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다섯 번째 세월 기행에 나섰다. 슬프고 분노 이는 맘이라도 달랠 겸, 임란의병 전적지가 산재한 충남 금산을 찾았다.
맨 먼저 찾은 곳은 눈벌(臥平)이다. 땅이 엎드린 누운벌이니 넉넉한 벌판이라는 말이다.
길을 돌아돌아 어렵사리 길 가 산기슭의 고경명 전적비에 이르렀다. 고경명 의병들이 오로지 의기 하나만으로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 곳이다. 비각이 세워진 곳은 그 날 전투에서 순절한 장소를 바라보는 곳이라 하는데, 비각이 두 개였다. 하나는 일제강점기에 왜인들이 박살을 내버린 비고, 그 옆에 다시 세운 비가 있었다. 안타깝고 슬픈 맘으로 잠시 목례를 올리고 지척인 눈벌을 둘러본 뒤 칠백의총을 찾았다.
칠백의총은 조헌 장군, 영규대사 등 수천의병을 합장한 묘소이다. 잘 정비되어있고, 안내하는 분들도 성의가 있고 친절해서, 그나마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지막 여정지는 배티대첩지다. 권율 장군이 호남을 장악하려는 왜군을 막아낸 곳으로 임란의 역사를 바꾼 전승지다. 배티는 잘 생긴 대둔산의 천험의 요지였다.
마침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데, 온 산에 만개한 산벚꽃이 아름답다는 말 외에 더 할 말을 없게 했다.
“아름다운 산천이네.”
“그래, 좋은 풍광의 나라에 태어나긴 했어…”
유구무언!
요즈음 어딜 가나 사람 만나기도 어렵고, 친절을 받기란 더욱 어렵다.
‘눈벌이 바로 저기여라.’
허리가 굽어 느린 걸음을 스스로 탓하며 눈벌까지 안내해준 하류리에 사시는 할머니, 칠백의총의 위치를 알려주신 할아버지, ‘금산성은 지금의 금산초등학교 일대.’라고 금산성의 위치를 알려준 칠백의총에 근무하는 분들의 친절은 오늘 기행에서 얻은 또 하나의 소득이다.
늦은 점심을 때우러 들린 식당 메뉴에 인삼비빔밥이 있을 정도로 금산은 인삼의 고장이기도 하다. 식당 주인아주머니의 고향이 광주라 했다.
‘시집을 멀리 왔네요?’
‘신랑이 이쁘고 여기가 돈이 많은 고을이잖아요.’
그래서 시집왔다는 음식 맛도 좋은 식당 아주머니가 심심할 때 먹으라고 누룽지를 덤으로 준다. 인삼과 인심은 비슷한 말인가 싶다. 달리 인삼 모양이 사람 모양이랴?
아름다운 고을에 아름다운 사람들이 산다. 그렇게 임란의 의병들이 지키고 그 후손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고을 금산이다.
오늘은 운전까지 하느라 수고한 월강 친구와 함께 이런저런 얘길 나누며 돌아오는 길이 평화롭다. 인삼막걸리와 인삼 튀김을 사고도 시식, 시음을 못했으나, 아름다운 의기, 아름다운 인심, 아름다운 절경에 취하고, 취하고 또 취했다.
금산 의병
그대 이름은 금산 의병
눈벌, 배티, 연곤평의 영웅들
횡당촌, 개티 전투에서
붉은 피로 산하를 지킨 수호신들
아름다운 비단 고을 금산에 새긴
그대 이름은 금산 의병
더 이상 무슨 이름 필요 하리오?
그날의 함성이
그날의 의기가
하늘을 울리고 땅을 적시니
천년만년 이어나가니
이 세상 가장 고귀하고 순결한 이름이려니
금산 의병!
(2015, 4, 16)
<금산군 금성면의 고경명 선생 순절비각>
<왼쪽이 2002년에 새로 세운 비각이다>
<고경명 선생 순절비각>
<순절비>
<왜인이 박살을 낸 비를 모신 곳>
<눈벌>
<고경명 선생이 순절한 곳>
<의총>
<순의 비각>
<취의문>
<종용사>
<의총>
<의총 기념관>
<의총의 봄>
<금산성이 있었던 금산초등학교>
<배티대첩지>
<대첩비각>
<충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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