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변산바람꽃
어느 숲속 바람 길에서 바람꽃이 하늘하늘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봄날이다.
‘매화 언제쯤 피느냐 물었더니, 매화에게 물어봐야 안다하면서도, 다음 주쯤 필거라고 하데.’
월강의 전화를 받고 가슴 설레며 며칠 기다린 뒤다. 월강과 함께 변산 개암사를 향해 봄나들이를 나섰다.
개암사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의 느낌이다. 절집을 두른 돌담 안으로 들어서니, 대웅보전과 절집들이 단정하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봄 나그네를 맞아준다.
오늘의 연인! 홍매가 마악 벌어지고 있었다. 세월 탓이랴? 기울어지는 몸을 지팡이에 의지해 서있건만, 발그레 벌어지는 꽃송이는 수줍은 열여덟 새악시다.
첫사랑 아가씨의 입술 같은 그 꽃송이 사이로 우금바위를 올려다본다. 더 높이 푸른 하늘을 본다.
‘어, 이 녀석 봐라.’
월강의 들뜬 목소리에 꿈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조금 전 꼬릴 흔들며 나그네를 반기던 강아지가 어디선가 털복숭이 풍산개를 데려왔다. 그들 재롱에 개암사의 적막이 아지랑이로 흔들린다.
이어 반계 유형원이 20여 년간 기거한 우반동으로 간다. 반계 선생은 실학의 비조로 추앙 받는 분이다. 이곳 우반동에서 그가 기록한 반계수록(磻溪隨錄) 26권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국정개혁서라고 한다.
반계는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건 위정자의 사리사욕과 그로인해 생겨난 잘못된 제도(법)라 진단하고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진단했다. 15세에 병자호란을 겪은 뒤 처절한 반성과 그 극복을 위한 성찰로 얻은 결과물이라 한다.
작금도 돈쥐와 옷닭 그리고 그들 떨거지들의 사자방 비리에 국가의 기강은 무너지고 자본만능 갑질의 사회가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의 민초들을 본다면 반계는 어떤 생각을 하실까?
금계포란지형의 잘 생긴 산기슭의 반계서당과 그의 묘소에서 그를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그를 그리워하며 목례를 올렸다.
오늘 나그네의 봄나들이 목적은 호벌치였다. 이곳은 정유재란 때 의병장 채홍국이 126명의 의병과 정유갱창동맹(丁酉更倡同盟)을 결성하고 왜병과 맞서 싸우다, 모두 순절한 장소다. 그 피로 물들었던 호벌치, 나지막한 언덕길에 봄 햇살만 바람에 흔들린다.
이곳 호벌치 언덕에 처절한 핏빛 역사가 또 있다. 이제 달랑 작은 돌상자가 된 코무덤이다. 그렇게 이름도 끔직한 코무덤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임진, 정유 양 왜란 시, 왜병들은 의병이고 민초고 가리지 않고 귀와 코를 전리물로 베어 갔다. 산모건 갓난아이건 가리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날의 끔찍함을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들 기록에 있는 코의 숫자만도 21만이 넘는다 한다.
당시 항왜의 최전선은 전라도였다.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전라도 사람의 씨를 말리라 했다 한다. 당시 조선 인구가 5백여만 명쯤이었으니…. 전라도 산하는 그래서 지금도 핏빛 황토 흙이다.
나그네도 어린 시절 ‘이비! 이비다!’ 소릴 들으며 자랐다. 그 소리에 고집 피우고 울다가도 움찔 몸을 움츠리곤 했다.
이비(耳鼻)! 귀와 코는 그렇게 무서움과 공포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이제 어디를 둘러봐도 그날의 살육과 공포는 없다. 겉보기로는 평화롭고 한가롭다.
“어이! 오늘 즐거웠네.”
“고맙네.”
헤어질 시간, 월강과 고인돌 휴게소에서 커피 한잔의 행복을 즐긴다. 그러면서 오늘의 이 평화와 한가함은 귀와 코를 빼앗긴 민초들의 핏빛 은혜임을 잊지 않는다.
코무덤
호랑이 온다!
울음 그치지 않던 아이도
‘아나! 곶감!’
순사가 잡아 간다!
무서워하지 않던 아이도
‘이비(耳鼻)!’
종북은 북쪽에 있는 종
좌파는 왼쪽에 있는 파
무상급식은 2만 6천원짜리 점심에
비즈니스석 더하기 공무 중 골프
귀무덤은 임진왜란
코무덤은 정유재란
왜인들이 조선 백성 목숨 앗아간 자랑거리
변산바람꽃 피는 변산반도 호벌치 언덕
바람 지나가는 풀숲 코무덤 앞에서
‘곶감’과 ‘이비’가
‘종북’, ‘좌파’, ‘무상급식’인 쥐닭 세상
무섭다.
눈 부라리고 으스댐에 주눅 들어
만져본다. 이비(耳鼻)
(2015년 3월 23일)
<개암사 입구 동학농민혁명군 김기병 대장 행적비>
<개암사 홍매>
<홍매와 우금바위>
<새아씨꽃>
<풍산개, 악귀를 쫒는다 한다>
<실사구시, 반계 선생 보러 가는 길>
<반계 서당>
<반계 선생은 안 계시지만>
<반계 선생묘. 지금은 용인의 선영으로 가셨다 한다.>
<호벌치 전적지>
<전적비와 코무덤>
<전라도 산하를 민초들의 피로 적신 임란 정유재란의 핏빛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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