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저들이 가고 있는 곳을 알겠느냐?”
“아니요.”
설문대 할망의 물음에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악의 무리들은 힘을 얻으려고 수많은 사람의 슬픔과, 고통, 원한, 불행, 그리고 죽음을 바란단다. 그래서 지금 저 쥐와 닭이 전쟁터로 가고 있어.”
“전쟁터요?”
“그렇다. 소부리로 가고 있구나.”
“소부리요?”
소부리는 지금의 부여다. 지금부터 천여 년 전 백제 시대에 부르던 이름이다.
“그렇다면 저 쥐와 닭이 가는 시대가 백제 때인가요?”
“응! 맞다.”
설문대 할망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려주었다.
“전쟁만큼 원통하고 비참하며 피비린내 나는 곳이 없지. 더욱이 백제를 멸망으로 이끈 황산벌 전투는 역사상 가장 처절한 싸움 중 하나지. 신라 병사도 숱하게 죽었지만, 단 하루 만에 계백의 5천 결사대가 죽은 곳이니까. 그러니 그곳이야말로 쥐와 닭이 제일 좋아할 곳이지.”
“그래서 지금 저 쥐와 닭이 백제의 소부리로 가는 건가요?”
“그곳에서 악의 힘을 더 얻을 것이다. 원통하게 죽은 병사들의 피와 원한이 저들의 힘이 될 거다. 그래서 걱정이구나. 갈수록 쥐와 닭의 힘이 커지고 강해져서 더욱 악독해질 테니 말이다.”
“무슨 뾰족한 수가 없나요? 설문대 할망님!”
잠시 말을 끊고 한참을 깊은 생각에 잠겼던 설문대 할망이 대답했다.
“있지. 있고말고. 아무리 악의 힘이 크고 강해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해서는 안 돼. 바로 그 악을 물리치려는 용기와 희망이 우리의 무기다. 또 악의 무리 역시 그 용기와 희망을 가장 무서워한단다. 그러니 그 용기와 희망으로 우린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우면 된다.”
“그렇군요. 저 악의 무리들, 쥐와 닭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있군요.”
“암, 그렇지. 더욱이 저 악의 무리들은 또 진실을 두려워한단다. 저들의 온갖 거짓과 악한 행동을 물리치고 이길 수 있는 힘은 바로 진실이란다. 잊지 말아라. 우리들이 지닌 가장 큰 힘은 용기와 희망, 그리고 진실, 올바름이란 것을 말이다.”
“예! 알았어요.”
“좋다. 그럼 쥐와 닭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약초와 부싯돌을 줄 테니 어서 뒤쫓아 가거라. 너희들이 할 일이 있다.”
설문대 할망은 지나간 역사를 뒤바꾸거나 쥐와 닭을 없애지는 못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원한과 고통을 위로해 줄 수는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 악의 무리에게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과 용기를 갖도록 도와주라고 했다.
“그리고 이 옷감을 줄 테니 가지고 가거라. 쓸데가 있을 것이다.”
설문대 할망이 깨끗한 옷감을 가져와 보따리에 싸주었다.
구름이와 세민이는 설문대 할망, 외돌개와 헤어져 다시 바다 밑쪽으로 나왔다.
“그럼 잘 가!”
“그래. 그동안 고마웠어. 곧 황룡강신 푸른 잉어가 올 거야.”
백록담 까마귀와도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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