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문정현 신부
눈앞에 보이는 건 한 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중에 하얀 머리카락과 긴 수염이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할아버지가 눈에 뜨였다.
아이 하나가 큰 소리로 말했다.
“야! 신부님이 꼭 한라산 같으시다”
“그래. 할아버지와 한라산이 쌍둥이야.”
또 다른 아이가 한라산과 할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맞다. 우리를 지켜주시고 안아주시니 신부님이 한라산이시다. 한라산이 신부님이시다.”
사람들이 아이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신부님께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다.
그때다. 쥐와 닭이 슬그머니 사람들 틈을 비집더니 한 젊은이 옆으로 다가갔다.
“저 분이 신부님이오?”
구름이와 세민이, 그리고 까마귀의 눈에는 쥐와 닭이 쥐와 닭의 모습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쥐와 닭이 사람의 모습으로 보였다. 그러니 어찌 쥐와 닭의 흉측한 몰골을 알 수 있으랴? 젊은이는 쥐와 닭의 물음에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그렇다오. 문정현 신부님이시다오. 우리 강정 마을의 기둥이시다오. 그리고 이 강정의 평화, 나아가서는 이 땅의 평화와 생명을 지키시는 분이시다오.”
젊은이의 신부님을 쳐다보는 두 눈이 빛났다. 정감어린 목소리는 떨렸다.
문정현 신부님은 1970년 박정희 독재시대부터 지금까지 40여년을 한결 같이 억압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해왔다. 억압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건 달려갔다. 눈보라치고 비바람 몰아치는 길이라도 상관치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 신부님을 ‘길 위의 신부’라고 불렀다.
그 문정현 신부님이 이곳 강정 마을로 온 것은 2011년 7월이다. ‘고통의 땅’ 강정마을로 오며, 문정현 신부님이 한 말이다.
‘저는 가난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의 고목의 뿌리와 같은 굳은 연대를 믿습니다. 내가 그곳에 있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단지 강정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고통을 받고 있는 주민들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그렇게 강정의 땅과 바다, 제주의 자연과 문화, 이 땅의 평화와 생명을 파괴하는 해군기지를 온 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까마귀가 다시 한 번 세찬 날개 짓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말했다.
“애들아! 잘 봐.”
“응! 잘 보고 있어.”
“지금 보는 저 날은 2012년 4월 6일이야.”
부활절을 앞두고 문정현 신부와 사람들이 생명평화 미사행진을 하고 있었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모두들 구럼비 바위로 가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든 저들이 이 평화의 땅 구럼비를 더 이상 파괴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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