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 여행기

고구려몽둥이-6

운당 2014. 7. 5. 07:52

6. 홀본성

 

천지의 감격을 안고 통하에서 일박을 한 다음 이른 아침에 다시 단동을 향해 길을 되돌아간다.

백두산과 천지를 봤으니 이제 여행도 마무리다.

고구려의 첫 도읍지입니다. 차창간산이나마 하십시오.’

꾸벅꾸벅 조는데 가이드가 졸음을 쫒는다. 차창으로 오녀산성(五女山城)을 안내해준다.

이 산에 다섯 명의 여신이 살아 산과 마을을 수호해 주었다 한다. 어느 때 이 오녀 신이 흑룡과 싸우다가 전사했고, 이를 기려 중국인들이 오녀산성이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산성은 고구려를 창건한 주몽의 첫 도읍지다. 광개토태왕비 기록에 홀본성(忽本城), 교과서에서 졸본성(卒本城)이라 배웠던 바로 그 성이다.

주몽의 부하들이 돼지를 잡는데, 그 돼지가 도망을 쳐서 뒤따라갔다가 천혜의 요지를 발견했고, 그곳에 쌓은 성인 것이다.

하지만 이제 비류수(沸流水)도 혼강(渾江)이 되었고, 홀본성도 오녀산성이 되었다. 그렇게 중국 이름이 된 이 고구려의 첫 도읍지 비류수 유역의 홀본성(오녀산성)은 유리왕이 천도한 환인(집안)의 국내성과는 약 8km쯤 떨어져 있다.

이 홀본성 안에는 천지(天池)라고 부르는 못이 있는데, 2천년동안 한 번도 마른일이 없다고 하며, 지금도 마실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홀본성은 고구려 멸망 이전에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북방 기마민족의 표상이기도 한 성이다.

특히 북방기마민족이 가는 곳에는 흰머리산이라는 뜻의 산과 천지라는 이름이 따라다니니, 한반도에 사는 우리 옛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것이다.

히말라야라는 이름도 흰산이란 뜻이다. 백의민족도 바로 그런 맥락 아니겠는가? 그러하기에 더욱 부끄러운 오늘의 우리가 아닐까? 자꾸만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러한 감상도 잠시 북한의 삼지연에서 바라본 백두산처럼 두 어깨를 치켜세운 당당한 모습의 홀본성이 아쉽게도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제 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구불거리는 길로 들어서더니 비류수와 숨바꼭질을 하며 압록강 쪽으로 다가간다.

 

북한과 중국의 경계선인 압록강, 하지만 철조망은 없다. 강에 있는 섬은 대부분 북한 소유라 하고 4개의 수력 발전소도 사이좋게 나눠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왜 우리 남과 북은 힘을 합해도 모자랄 판에 철천지원수처럼 지내는 걸까?

북이건 남이건 서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만큼 황폐화 되었던 625의 비극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고조선이 고구려가 되고, 뒤이은 발해와 고려도 역사의 뒤 안으로 사라졌지만, 1만년 기마민족의 역사에 그보다 더 참담하고 비극적인 사건이 또 있었을까?

그래서 옛 조상의 땅도 남의 나라 눈치를 보며 밟고, 형제의 땅도 건너다보며 두려워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슬퍼하지만 말자. 네 것이면 어떻고 또 내 것이면 어떠랴? 누가 됐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잘 먹고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광개토태왕능, 건너편 산이 압록강 너머 북한 산하다>

<광개토태왕비의 예전 모습>

<광개토태왕, 장수왕능의 예전 모습>

<장수왕비의 능은 암만봐도 고인돌 형태다>

<차창으로 본 홀본성>

<중국인들의 오녀산성>

<이제 압록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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