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 여행기

고구려몽둥이-4

운당 2014. 7. 3. 08:12

4. 집안

 

광개토태왕!

우리는 광개토대왕이라 배웠는데 중국인들은 호태왕이라고 한다. 광개토태왕비에 쓰인 공식 호칭이 국강상광개토호태왕(國岡上廣開土好太王)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대왕과 비문에 새겨진 태왕은 어찌 다른가? 대왕은 말 그대로 큰 왕이고 태왕은 하늘 아래 단 하나의 왕, 다시 말해 제후국을 거느린 왕들의 왕인 것이다.

그래서 태왕과 대왕의 표현에서도 일제식민사관의 잔재와 그걸 신봉하는 친일 강단사학자들의 찌꺼기가 남아있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 역사에 이런 명칭으로 불리 운 왕이 누가 있는가? 조선 말엽 고종 황제가 중국의 제후국에서 벗어나고자 중국과 동일한 황제라는 명칭을 쓰고 건양이라는 국호를 처음 썼지만, 안타깝지만 그건 국력이나 힘의 뒷받침을 받지 못한 그저 공허한 메아리였을 뿐이다.

그 우리의 광개토태왕비를 중국인들이 호태왕비라고 지키며, 돈을 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역사의 비극이지만, 그 중국인들의 눈치를 살피면서라도 광개토태왕비를 볼 수 있어서 참으로 감개무량이었다.

태왕비 주변은 너른 정원이었는데 특이하게도 느릅나무가 정원수로 심어져 있었다. 그것도 나무 상단부가 댕강 절제되어 가지들이 수양버들처럼 우산 모양으로 늘어져 있었다.

고개를 숙이지 않고 천하를 호령한 광개토태왕 비석 주변의 늘어진 느릅나무 정원수는 태왕의 위엄에 고개 숙인 제후국의 모습이거나, 아니면 절대강자였던 태왕이 제후국을 대하는 겸손함의 상징 아닐까?’

나그네의 해석에 주위 사람들은 그저 헛! ! 웃을 뿐이다.

이 땅의 쥐닭족(鼠鷄瘯)은 쥐꼬리 닭벼슬 권력을 쥐어 팔에 완장을 차면 무소불위 권력이라도 되는 양 고개 빳빳이 쳐들고 오로지 민초들 후려잡는 행패와 작태다. 그런 각종 인간쓰레기들 횡행소가 2014 한국이다. 또 한 번 잡으면 끼리끼리 권력과 부를 주고받으려 조작 사기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며 군홧발, 물대포도 불사한다. 그 귀태들을 비일비재로 보고 살기에 광개토대왕과 느릅나무에 대한 나그네의 생뚱한 해석이 새삼스럽지 않아 헛웃음을 치게 했을 거다.

나그네는 늘어진 나무를 좋아한다. 죽으면 수양벚나무 아래에 눕고 싶다. 왜 하필 수양벚나무인가? 벚나무()가 일본국화고 특히 이 수양벚나무(しだれ)는 늘어져서 더 싫다는 한국인들이 있지만, 나그네는 고개 숙인 수양벚나무가 좋다. 이유는 단 하나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만 겸손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수양벚나무처럼 겸손히 고개 숙이고 세상의 시끄러움으로부터 평화를 찾고 싶어서다.

어쨌거나 태왕비를 감시하는 제복 입은 남녀 두 중국인들에게 허락을 받아 유리창 밖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태왕 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왕 능은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나그네는 무엄하게도 그 태왕 능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아 맨 위쪽에 있는 현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유물은 오래 전에 도굴되었을 터고 아무런 장식도 없는 평범한 직사각형의 현실이 무덤덤하게 자신의 후손을 향해 민낯을 보여주었다.

 

이어 광개토태왕 능에 비해 비교적 보존이 잘 된 장수왕 능과 그의 두 번 째 부인 능이라는 고인돌 형태의 능을 둘러보았다.

대륙을 호령하던 선조들의 위업을 남의 나라 땅에서 보는 후손으로서 무슨 감회가 있을 소냐?

그저 말없이 장수왕 능을 나와 채색 벽화가 있다는 고구려 5호분이라는 능으로 갔다.

물기가 송글송글 돋아있는 5호분 능 안으로 들어가자, 서늘한 공기가 온 몸을 감쌌다. 마침내 떨리는 마음으로 현실 안으로 들어가 이제 사라진 주인이 누워있었던 관 자리에서 동서남북 사방에 그려진 채색벽화가 전등 불빛에 드러나는 걸 살펴볼 수 있었다.

그렇게 청룡백호주작현무 등 당시의 세계관에 의한 상징동물과 소머리의 신농씨 등 고구려 이전 북방민족의 조상들 모습을 보며 두 어깨가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못난 후손으로서 너무 부끄러워서다.

아무튼 이곳의 주인은 국왕이 아니라, 왕자이거나 대단한 귀족일 거고 용이 37마리 그려진 것으로 보아 37세에 운명했을 거라는 설명을 듣고 짧은 고구려와의 만남과 작별하였다.

점심을 먹기 위해 집안 시내로 이동하였다. 잠시 압록강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점심시간을 줄여 당시 국내성 성벽을 둘러보았다.

이제는 남의 땅 이름 집안, 그렇게 국내성을 뒤로 하고 통하를 향하였다.


<국내성으로 흘러가는 비류수(혼강)>

<도굴된 고구려 능, 그래서 가운데가 파여 두 개의 능으로 보인다고 한다>

<국내성의 압록강, 건너편이 북한이다>

<국내성 고구려 성벽>

<광개토태왕비>

<중국인들은 호태왕비라 한다>

<광개토태왕능>

<무엄하게도 능 위로 올라가...>

<장수왕능 가는 길>

<장수왕의 천도한 평양이 북한의 평양이 아니라, 요하강변의 요녕성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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