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 여행기

고구려몽둥이-3

운당 2014. 7. 2. 06:32

3. 단동

 

이곳 중국 동북 3성에는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 조선족들이 일제강점기에 이주했던 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그 원뿌리는 자랑스런 고구려의 후예임이 분명하다.

이곳의 조선족 아이들이 한족 아이들과 싸울 때 듣는 욕이 있다고 한다. 바로 고구려 몽둥이라는 말이다.

중국말로 꼬리빵즈(高句麗棒子)’. 고구려를 꼬주리고려를 꺼우리라 불렀고 훗날 한자 표기로 읽어 고구려, 고려라 했으니, 꼬리빵즈는 우리 고구려인을 정확하게 지칭하는 욕이다.

아무리 좋은 말도 듣기 싫으면 욕이겠지만, 사실 이 꼬리빵즈는 양면성을 가진 말이다.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본시 욕이란 인간의 삶과 가장 가까운 데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이 꼬리빵즈는 중국인들의 삶에 오랜 세월 철저하게 각인된 상황에서 나왔고,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여겨진다.

고구려 병사가 창검 대신 몽둥이를 들고 싸웠다고 하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고구려 병사의 손에 들린 몽둥이가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창검과 기마병의 전투가 지나 간 뒤, 몽둥이를 들고 전투 뒤처리를 하는 고구려 병사들이 저승사자처럼 무서웠을 것이다.

그 공포와 두려움이 꼬리빵즈라는 말을 만들었고, 전해졌으며, 고구려가 사라진 뒤 천수백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눈앞에 다시 나타난 조선족에 놀라 그 꼬리빵즈라는 말도 되살아났을 것임에 분명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가보라. 한참 길을 걷다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막대기를 들고 칼처럼 휘두른다. 하다못해 풀이파리라도 꺾어들어 흔들어 댄다.

고대인들이 길을 걸으며 뱀이나 짐승을 쫒기 위해 지팡이를 사용하고, 빨래 방망이, 지게막대기 등이 비상시에 무기가 되었음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 습관의 유전인 것인바, 특히 고구려인의 몽둥이는 창검 이상의 무기이고 공포였다.

 

이곳 단동은 압록강의 하구이고 요동반도의 문이다.

백두산 천지에서 9백여Km를 흘러온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중국이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한글로 써진 북한 식당이 있고, 압록강변에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신의주와 단동을 잇는 압록강단교, 625 때 폭격에 의해 끊어졌고 그게 이름이 된 압록강단교가 그때 그 모습으로 민족의 아픈 상처를 상기 시켜 주는 곳이다.

그리고 위하도 회군이라는 고려와 조선의 운명이 엇갈린 역사가 있는 곳이다.

평생에 한 번 와보고 싶었던 압록강변 공원을 거닐면서 그런 생각에 빠진 나그네는 강중(江中) 위화도와 함경도 산하를 보며 가슴 깊이 흐르는 눈물을 그저 먹먹히 삼킬 뿐이다.

압록강! 언제부터였을까? 그 숱한 역사의 질곡을 담아 푸른 물결 출렁이며 흘러흘러 갈 뿐이다.


<압록강 단교>

<강 건너 신의주>

<오른쪽은 단교>

<압록강 중국 표지석>

<단동의 아침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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