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몽둥이
1. 백두산 천지
떡 벌어진 두 어깨, 박달나무 몽둥이처럼 단단한 두 팔을 벌려 드넓은 평원에 펼친 늠름함, 오래 전 북한의 삼지연 비행장에서 바라본 백두산의 모습은 그러했다.
치우 천황의 투구처럼 뿔 솟은 투구를 쓰고 철갑을 두른 듯 천하를 내려다보는 위엄, 몇 해 전 북파산문에서 바라본 백두산의 모습은 그러했다.
그리고 황금빛 찬란한 천관을 쓰고 봉긋 솟은 가슴이 마치 천녀의 모습인 듯 아름다움, 2014년 6월 14일 서파산문에서 바라본 백두산의 모습이다.
대련, 집안, 통화를 들리며 비류수(혼강)와 압록강을 번갈아 마주하면서 마침내 백두산의 서쪽 언덕에 있는 서파관문에 도착했다. 그리고 셔틀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검은 구름을 인 백두산을 바라보며 숲길을 달린다. 백두산이 펼친 분지를 일직선으로 가르며 신나게 달리더니 산 아래에 이르렀는지 지그재그로 방향을 바꾼다. 오르막길이다. 천지가 지척인 것이다.
그렇게 북쪽 지방의 대표적 활엽수인 자작나무와 죽죽 벋어 하늘을 보는 이깔나무, 가문비나무, 천년송 숲은 눈 아래로 내려가고 키 작은 나무들마저 눈앞에서 사라지더니 천상의 화원이 펼쳐진다.
아! 감탄사마저 입안에 갇힌다.
백두산의 봄꽃이다. 천지로 오르는 산등성이가 온통 하얀 두견화로 덮여있다.
백두산의 꽃은 6,7,8월 3개월에 봄여름갈겨울의 꽃이 한꺼번에 피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맨 처음 피어나는 꽃이 바로 이 두견화다.
우리가 두견화 하면 연분홍 진달래꽃을 생각하는데, 이곳 백두산의 두견화는 흰색이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흰머리산이니 두견화가 흰꽃이란 게 조금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핏빛 두견화를 이별과 정한의 꽃이라고 하지만 이 하얀 꽃 두견화는 참으로 신비롭고 청초하고 아름답다. 순백의 흰색이 오히려 요염하기까지 하여 마음이 뜨거워진다.
서파 셔틀버스 종착지에서 백두산 천지에 이르는 길은 계단 길이다. 천지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높이라 가파르진 않지만, 1442 계단을 오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6월 중순이지만 백두산 기후로는 아직 이른 봄이라 천지로 오르는 길에 눈이 빙하처럼 쌓여있다. 세찬 바람이 차갑게 옷깃을 파고든다.
또 백두산 천지를 덮고 있는 검은 구름이 언제 비를 뿌릴지 알 수 없다. 자연스레 마음이 급해져 천지로 오르는 계단 길을 서두른다. 이내 숨이 가쁘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천지를 봐야지 하는 마음에 거친 숨결을 심호흡으로 달래며 마침내 천지를 눈앞에 맞는다.
아! 그리고 언제처럼 눈물을 쏟을 듯 감격에 젖는다.
하늘은 검은 구름에 덮여있지만 천지는 짙푸르다. 머나먼 길 찾아 세 번째 보는 하늘 못이지만, 매번 첫 사랑이다.
한동안 감격에 젖어 천지와 그 건너 한반도를 넘겨본다. 두 동강이 난체, 다시 동서로 갈리고, 세대로 나뉘고, 갑과 을로 찢어졌다. 그리고 서로 짝짜꿍이라도 한 듯 걸핏하면 종북과 괴뢰로 몰아대는 재미로 권력과 부를 유지하는 이상하고 기막힌 두 쪽 위정자들을 생각한다.
그렇게 회한에 젖어 중국과 북한이 나눠 가진 천지를 떠억 가로막은 37호 경계비와 둘러쳐진 말뚝과 밧줄 안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하산을 서두른다.
눈꽃처럼 피어난 두견화에 눈과 마음을 주고 서서히 계단 길을 내려온다. 언제 다시 차분하게 다시 이곳을 찾아올건가? 기약 없는 약속일 테니 이별과 정한의 하얀 두견화가 바로 나그네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렇게 백두산 천지와 이별하고 사다리모양의 협곡인 쌍제자하를 둘러보고 금강대협곡으로 간다.
금강대협곡은 백두산의 용암이 분출하여 땅을 훑고 지나가며 만든 깊은 계곡이다. 날카로운 바위와 깊은 절벽아래 흐르는 물이 백두산의 선경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눈을 낮추니 민들레, 바람꽃, 봄맞이꽃 등이 보인다. 이름 모를 꽃도 보인다.
좀 더 내려오니 후두둑 저 멀리 소나기가 지나가고 그 구름 틈새로 한 줄기 빛이 쏟아진다.
‘가난하고 수탈당하는 백성들에게 힘을 주고, 자신들이 노예가 아님을 반드시 깨닫게 하소서.’
한낱 빛줄기에 감격하여 그리 기원하며 소망을 한 가지 덧붙인다.
‘고조선이라는 이름이 있기 전부터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북방민족의 후예가 수천 년의 세월 뒤에 남의 땅을 밟아 다녀갑니다. 우리 후손들은 자기 땅을 밟아 백두산에 오를 수 있도록 새로운 역사를 열어주세요.’
광개토태왕의 호태왕비 앞에서처럼 백두산에 머리 숙이며 그렇게 작별을 고한다.
<지난 겨울의 눈이 다 녹지 않은 천지하의 두견화>
<천지로 오르는 계단 길>
<조중 국경비>
<천지>
<두견화>
<흰철쭉꽃과 비슷했다>
<금강대협곡>
<금강대협곡>
<연리목, 이깔나무와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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