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향기의 고을 남원 요천의 봄>
<봄의 전령사인 능수버들>
<사랑의 여신 춘향>
<영원한 사랑의 상징 춘향 사당>
<호남제일루 광한루>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32-2
남원(南原)에 봄이 들어 각색화초(各色花草) 무장(茂長)하니 나무나무 임실(任實)이요 가지가지 옥과(玉果)로다
한폭의 도원경이요, 신선도인 호남가 한자락에 홀려 다시 2013년 첫 기행지인 남원을 향한다. 계사년 새 해 봄의 첫 기행지가 남원이니 이름만으로도 고귀하고 따사로우며 평화롭다.
남원(南原) 춘향(春香) 고을에 봄이 오니, 온 세상에 봄 향기 그윽하고 가득하다. 더하여 봄볕 기를 얻은 나무마다 가지마다 무성히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 또한 구슬처럼 고귀한 결실이니 바로 현세에서 인간이 바라는 이상향이다.
자연도, 그리고 인간도 사랑하는 님 만나 대 이을 귀한 자손 얻음은 고귀함의 으뜸이려니, 행복과 행운은 이를 말함이요, 춤추고 노래함은 이런 때인 것이다.
지난 겨울에 나그네는 세상과 인연을 끊었다. 마음의 봄을 잃고 나라를 잃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독한 인간들이 독한 자식들을 낳아, 독한 짓거리들 하는 걸 보고 희망과 꿈을 버렸다.
그러나 새 봄이다. 나라는 망해도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 했다. 봄도 나라도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새 봄에도 내가 사랑하는 나라, 내가 꿈꾸는 나라의 사람들을 찾아 나그네 길을 나선다.
2013년 3월 31일 3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이다. 채비 하고 나서니 바람 끝이 조금 차갑게 느껴지는데, 파란 하늘빛에 가슴이 툭 트인다.
광주에서 남원을 가는 길은 여럿이다. 그런데 오늘은 곡성읍을 들려 섬진강을 건넌 뒤, 천마산 구불길을 넘기로 했다. 그랬더니 곧바로 산수유의 고을 산동이다.
마침 산수유 축제 마지막 날이다. 천마산을 넘으니 가로수까지도 산수유 나무로 온 세상이 산수유꽃이다. 작고 여린 노란꽃이 서로서로 끌어안아 보듬고 잡아당겨 엉키니 산동골짜기가 온통 노오란 꽃구름 세상이다.
그 노오란 산수유 꽃구름이 사람을 불러 인산차해(人山車海)다.
사람 구경 꽃구경하면서 이른 점심을 먹고 곧바로 남원으로 향한다. 구례는 다음에 또 들려야 하고 오늘은 봄 향기의 고을 남원이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구례 산동에서 남원은 바로 지척이다. 10여분 남짓 달리니 어느새 남원고을 이정표가 나그네를 반긴다. 그리고 섬진강의 한 지류인 요천을 건너니 바로 오늘의 목적지인 광한루원이다.
호남제일루 광한루는 춘향이의 이야기가 있어서 또 정겨운 곳이다. 각색화초 무성한 봄의 땅, 남원에 봄 향기 그윽한 춘향이의 사랑 얘기가 있는 건 당연지사다. 사랑도 모르는 인간들이 어찌 인생을 논하고 삶의 우여곡절을 말하겠는가? 돈과 권력에 눈멀어 한바탕 허세를 부려도 껍데기는 껍데기고 쓰레기는 쓰레기다. 역사의 한 장면으로 스러지며 결국 허망한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그게 생의 역사이고 귀결인 것이다.
아! 푸른 숲, 푸른 물이다. 요천강변에 늘어선 벚꽃송이는 순간순간 연분홍 고운 입술을 벌린다. 발그레 물들어가는 그 모습은 자연과 생명의 조화요 신비로움이다. 보는 마음이 설레임으로 울렁인다.
급할 것 없으니 천천히 광한루원을 한바퀴 휘돈다.
먼저 춘향 사당에 들려 인사를 한다. 우리에게 사랑의 여신이 있다면 그 중 한 분이 바로 춘향이리라. 유교를 숭상했던 나라이기에 정절과 일편단심의 사랑으로 언제 들어도 가슴 애절한 사랑의 여인이 바로 춘향이다.
춘향의 영정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보고, 그 뒤로도 몇 번 본 모습이다. 마지막 본 것은 십여 년 전으로 기억하는데 이제 옛 소년이 노인이 되었듯 춘향이 나이 든다고 누가 뭐랄까? 그런데 영정 속 춘향은 앳되고 귀엽기만 하다. 아침 이슬 머금은 앵도알 같은 모습이랄까? 아침 햇살에 스러지는 인생이지만, 춘향의 모습은 우리가 염원하는 영원한 사랑의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 뒤를 이어갈 우리 후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좋은 일, 좋은 모습을 후손에게 남겨주는 어른들이 되어야 함이 바로 그 때문 아닐까?
춘향 사당을 들려 주욱 늘어선 선정비를 둘러보며 ‘변삿도 선정비들이구먼!’ 우스개 소리 한 마디 하고 오작교를 보러간다.
오작교, 견우와 직녀가 하늘에서만 만나는 건 아니다. 한 평생 단 한 번의 오작교 인연에도 감사를 드릴 일이다.
이어 춘향모가 살았다는 월매집을 마지막으로 들려나온다. 무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또 무언가 허전하고 아쉬움이 남는 게 나그네 길이다. 그네 타는 춘향이의 모습에 마음을 뺏기듯 잠시 살구나무 고목에 핀 꽃에 마음을 뺏긴 뒤 광한루원을 나가려는데 삼현육각 소리가 요란하다.
봄 향기의 고을 남원을 찾는 관광객을 위하여 남원 시민들로 구성된 놀이패라고 했다. ‘신관사또 부임행차’라고 쓴 깃발을 따라 삼현육각패가 신명나게 가락을 울린다. 이어 늠름한 호휘장교의 가마를 앞세우고 신관사또의 행차가 들어온다. 육방 아전들이 해학적인 분장으로 춤을 추며 사람들의 눈길을 끌면서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기생들을 인솔한다.
절로 어깨춤이 추어질 봄날의 화려한 볼거리요, 행차다. 이윽고 광한루원 앞마당에 당도하여 이런 저런 볼거리로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준다. 일종의 현대판 코믹 신관사또 행차 놀이였는데, 관광객을 위한 좋은 추억거리라 여겨졌다.
그렇게 한 시간여 계속되는 노래와 춤, 코믹극을 관람하고 봄 향기 가득한 남원 광한루원을 나왔다.
다시 요천강변으로 나오니 강둑에 벚꽃이 더 많이 벌어졌다. 화무십일홍이라지만 지는 꽃을 누가 두려워하랴? 그저 가는 세월이 빠를 뿐이다.
남원은 참 좋은 고을이다. 산수가 아름답고 사랑의 얘기가 있는 곳이다. 고을의 인심이 넉넉하고 먹거리도 풍부하니 예로부터 사람살기에 더할 나위없는 좋은 터였다.
그리고 한 가지 기억하고 가야할 게 있다.
‘만인의총(萬人義塚)’이다.
만인의총은 사적 제272호로 이곳 남원시 향교동에 있다. 조선 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끝까지 지키다가 순절한 민·관·군의 합장유적지인 것이다.
1597년(선조 30년) 8월에 왜군 10만 여명이 개미떼처럼 남원성을 에워싸고 공격하니 바람 앞의 등불이란 이런 때의 표현이다.
이때 명나라는 부총병 양원을 중심으로 천총(千摠)인 장표가 거느린 3천군사가 관아 건물인 용성관을 중심으로 주둔하면서 남원성 사수에 나섰다. 명나라에 의지해야 했던 서글픈 우리 관군은 남원부사 임현, 접반사 정기원을 비롯하여 병사 이복남, 방어사 오응정, 조방장 김경노, 판관 이덕회, 구례현감 이원춘, 산성별감 신호 등이 군민과 함께 힘을 모았다.
성안의 주민들은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왜군에 맞서 싸웠는데, 남문이 무너지면서 치열한 백병전이 성안에서 벌어졌다. 그러자 명나라 장수 양원은 이복남 등에게 상황이 불리함을 들어 성을 나가자고했고 이복남은 거절했다. 그러자 양원은 옷을 갈아입고 심복부하 50여 명과 함께 재빨리 도망쳐 버렸다.
이날 관군 4천과 성민 1만 여명이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리고 용성관과 광한루를 비롯한 남원의 관아와 누정이 모두 불타버렸다. 성안에 즐비하던 민가도 17동만 남고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후일 이날 전사한 성민과 관군을 한 곳에 묻었는데 이것이 바로 만인의총이다.
이제 만인의총이란 이름 네 글자로 남았지만, 지금도 전쟁을 좋아하는 독재잔당과 그들을 추종하는 일부 수구골통들이 판을 친다. 그들 피도 눈물도 없는 잔악무도한 독종세력들이 있으니 역사의 되풀이를 어찌 우려하지 않으랴?
박정희 쿠테타가 가져온 것은 이 땅의 경제발전이 아니라, 전쟁도발의 심화요, 평화의 불안정이었다. 독한놈들이 시민의 평화와 행복을 담보로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봄 향기 그윽한 남원 땅을 떠나며 나그네의 마음이 다시 허무해진다.
<광한루 앞의 거북돌>
<오작교에서 노니는 잉어>
<오작교와 광한루의 봄>
<월매집>
<춘향과 이도령>
<그네에 띄워 보내는 마음>
<신임사또 부임행차>
<남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한다.>
<살기좋은 봄향기 고을 남원, 춘향제에 가보세요. 4월 말경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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