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31
능주(綾州)에 붉은꽃은 골골마다 금산(錦山)이라.
금산(錦山), 아름다운 고을이다.
아름답다는 말 외에 또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젊은 그 어느 날, 아리따운 아가씨의 모습에, 혹여 맘에 드는 총각의 모습을 보고 그만 헉! 심장이 멎는 듯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면 말이다. 누구든 그런 추억을 한 번쯤 담고 산다면 그게 곧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이라 유추해보시라.
금산은 그런 곳이다. 아름다운 산하(山河), 바다와 섬, 더불어 사람이 먹는 먹거리까지 좋으니 그곳이 바로 금산이다.
선조들이 사는 시대에 비단이 귀하고 소중했기에 금(金)이나 금(錦)은 같은 개념이었을 터다. 곧 부귀의 상징이고, 권위의 표현이었을 거다.
호남가 따라 능주의 붉은 꽃이 골골마다 피어있는 금산을 찾는다. 비단뫼, 비단 고을인 금산이 호남에는 두 군데가 있다.
인삼으로 유명한 지금은 충청남도지만 예전엔 전라북도였던 금산군이 그곳이다. 또 산이며, 바다며, 들과 마을이 비단처럼 펼쳐지는 거금도 금산면이 그곳이다. 두 곳 다 금산의 자격이 넘치고 흐르는 곳이다.
2012년 10월 20일, 가을 햇살아래 유자가 황금처럼 익어가는 거금도 금산을 먼저 찾는다. 유자는 고흥군의 대표적 특산물이다. 맛과 향, 그리고 약효도 있다. 특히 감기예방과 치료에 효험이 있고, 미용에도 좋아 차로도 마시고, 유자술과 과자류의 가공식품으로도 그만이다.
그 고흥의 거금도 금산을 가기 위해서는 남쪽의 아름다운 항구 녹동에 가야한다. 지형이 사슴을 닮아서 녹동이다. 오랜만에 차를 버리고 그 사슴고을 녹동 버스 정류장에서 거금도 군내버스를 기다린다. 가는 차편을 묻자, 버스 기사가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매 시간 1대씩 운행한다는 오천행 대흥여객을 탄다. 저만큼 천천히 걸어오는 사람도 기다리는 군내버스답게 버스는 시가지를 천천히 지나치며 승강장에서 잠시 멈춘다. 허리 구부러진 촌노들이 ‘오메 차 기다리다 눈 빠져불것소’ 하며 힘겹게 차에 오른다.
사람 좋은 기사도 ‘아따 눈 다 있구만 그러시오. 조심히 타시오.’ 우스개말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한다.
시골버스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
앞에 앉은 두 노인은
‘자네 올 해 몇인가?’
‘응 여든 넷이여.’
‘오메, 그런게 세월이 꿈같이 지나가버렸네.’
‘그려. 이제 치매에 안 걸려야 혀. 그 친구 아무개가 치매 결렸자녀.’
‘맞어. 치매가 제일 더러운 병이여.’
오랜만에 만난 듯 두 분의 정겨운 얘기가 나그네도 정겹게 만든다.
녹동에서 중간 승강장인 적대봉 들머리 성치마을까지는 30여분, 사람 좋은 기사와 손을 흔들며 차에서 내린다.
적대봉 표지석 앞을 지나 밭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이곳의 가을은 늦어 아직 고구마도 거둬들이지 않았다. 양파농사 시기인지, 식묘가 끝난 밭을 스프링쿨러가 물을 뿌리고 있다.
유자가 탱글탱글 익어간다. 오랜만에 볏단을 쌓아놓은 걸 보고 반가워 가까이 가니, 참새 떼들이 깜짝 놀라 ‘야, 임마! 너 누구야?’ 감나무 가지로 도망치며 재잘거린다.
“미안!”
참새들에게 손을 흔들어 미안하다고 한 뒤 저만큼 적대봉을 두고 포장길을 부지런히 걷는다. 길가에 마른 말똥이 보인다.
문득 차 안에서 나누던 두 분 촌노들이 나누던 치매얘기가 생각나며 요즈음 그 치매에 걸린 인간들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문득 현대인의 삶에 맞든 안 맞든 공자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공자왈(子曰), 십유오이지우학(十有五而志于學)이요, 삼십이립(三十而立)이며,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이라, 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하고,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하니,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慾不踰矩)니라.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 살에는 삶의 기틀을 확립하며, 마흔 살에는 함부로 움직이지 아니한다. 쉰 살에는 하늘의 뜻을 알고, 예순 살에는 남의 말을 들으면 그 뜻을 이해하니, 일흔 살이 되어 마음에 하고자 하는 일이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 이제 고상한 말 더 들먹이지 말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딴따라패 얘기다. 요즈음 연예인의 인기가 하늘 높고, 그들을 따르는 팬이 부지기수여서 말 잘못하다간 무슨 곤혹을 치를지 모르나, 입이 비뚤어져도 촐래는 바로 부는 법이다. 여기서 치매 걸린 딴따라패들 얘기를 아니 할 수 없다.
필자인 흰구름 나그네는 최불암, 이순재, 노주현 등이 나오는 프로는 어디서건 아예 보질 않는다. 그들 얼굴이 비치는 순간 전두환 시절 땡전(9시 땡 치면 나오던 전두환 뉴스) 뉴스처럼, 최근에는 이명박 사기마왕 쥐뉴스(이명박 호가 쥐새끼)처럼 아예 티비 앞을 떠나 버린다.
그런데 요즈음 색누리당 독재자의 딸(다까끼 마사오의 딸 닭까서 마시오)을 찬양하는 딴따라 유세단이 결성되었고 그 수가 12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니 이제 아예 티비를 없애버려야 할 판이다.
특히 흐린나빈가, 호로나빈가를 부른 그 인간을 보면 삼년 묵은 우거지가 나올려고 하니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리라.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나 싶다. 설운도나 현철 노래는 그런대로 들을만했는데, 이제 앞으로는 그 인간들 노래도 끝이다. 또 알만한 인간들 이름이 있으니, 전원주, 선우용녀, 송재호, 현미, 김세레나, 이용식, 황기순 등이고 송기윤, 방형주, 이수나, 이동준, 이주노, 이명훈, 이영화, 심현섭 등은 잘 모르겠다. 조금 아까운 인간도 있으나 쓰레기들에 대한 앎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이제 인연 끝이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아무튼 공자님이 이순이면 귀가 순해져야 한다고 했는데, 눈도 순해지지 않아서 말이다. 하지만 속을 끓이면 그 화가 다시 내게 온다는 것은 안다.
그래 그렇다. 이 아름다운 산하 금산에 와서 그 더러운 종자들을 왜 생각하느냐? 길가에 보이는 마른 말똥을 발로 탁 차서 밭으로 보낸다.
어떤 시인의 말처럼 다 타버린 연탄재만도 못한 인간들, 밭에 가서 거름이 될 말똥만도 못한 그 인간들!
그래서 걸음을 빨리한다. 이 아름다운 금산에서만이라도 그 더러운 생각을 씻고 싶어서다.
땀이 비 오듯 흐른다. 눈이 쓰리고, 마른 땀이 소금이 되어 손으로 만지면 서걱거린다. 또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다.
이윽고 적대봉 입구다.
주차장에는 관광버스, 승용차도 많은데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나그네의 늦은 산행 탓으로 고즈넉한 산길을 혼자서 말없이 오른다.
깔끔하게 정비된 약수물터를 지나, 돌탑길을 지난다. 다른 데 돌탑과 조금 다른 모양이 있다. 아마 암탑, 수탑이라 생각하며 만든 듯 싶다. 누구 한 사람이 쌓은 게 아니라면 오랜 세월에 걸쳐 인간의 기원이 함께 쌓였으리라.
녹동 쪽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돌탑 꼭대기에 소원탑이라는 글이 새겨진 달걀 모양의 갸름한 돌이 놓여있다. 평소에 돌멩이 한 개 얹어 놓은 적 없지만 그래도 염치없이 마음 속 소망을 생각해본다. 소망은 단순하지만 너무 요구가 많고 큰 듯 싶어 혼자 피식 웃는다.
한참 땀을 더 흘리며 앞만 보고 오르는데,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어라처럼 마침내 마당목이란 곳에 이른다. 단체 등산객들이 떠들썩하니 먹고 마시고 있다. 예전 같으면 ‘한 잔 하고 가시오’ 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지만, 이제 자가 운전이 흔한 세상에서는 다 잊어버린 정담이다.
거기서부터는 사방의 바다와 멀리 섬까지 보이는 능선길이다. 마치 말 잔등 같기도 하고 성벽 같기도 하다. 적대봉 정상까지 1Km다. 마지막 힘을 내 길을 재촉한다. 정상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마침내 정상에 도착한다.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전된 봉화대가 그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무너질 위험 때문에 출입금지의 띠가 둘러져 있다. 슬그머니 올라가볼 생각도 있었으나, 아쉬운 맘 참고 그 띠를 넘지 않았다.
이제 차분하게 사방을 둘러본다. 동쪽으로 여수반도가 보이고 남쪽으로는 오천 마을과 거북모양의 두 섬, 그리고 푸른 바다가 이어진다. 서쪽으로는 완도의 섬들이 늦은 오후 햇살에 보석처럼 빛난다. 북쪽으로는 녹동항이다. 거금대교가 푸른 파도에 두 발을 딛고 오가는 배들을 한가로이 내려다본다.
비단을 두른 산하 골골마다 금산이라는 표현이 틀림없다. 산비탈 아래 마을, 그리고 손바닥처럼 붙여놓은 밭과 밭들, 푸른 바다, 오가는 배, 무엇 하나 어울리지 않은 것이 없다. 한 폭의 움직이는 그리고 땅에 꼬옥 붙어 우리를 먹이고 살려온, 그리고 대대로 생명을 이어줄 아름다운 그림이다.
다시 부지런히 내려온다. 속도가 붙는다. 그러나 내려올 때 더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조심스레 다시 처음 장소로 왔다.
지난 번 태풍 볼라벤 때문이라 했다. 벚꽃이 몇 송이 피어 가지에 매달려 있다.
아직 겨울도 오지 않았다. 내년 봄에 피어야 하는데, 그 놈의 태풍이 생태계를 교란시킨 것이다. 다시는 못 볼 봄인가 싶어 벚나무가 봄을 서두른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꼴뚜기가 뛰면 망둥어도 뛰는 법이다.
한 때 호남에선 김대중이 작대기만, 경상도에선 김영삼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무지막지한 세월이 있었다.
그런데 그 김대중 밑에서 단물 빨던 인간들, 한광옥, 한화갑 등이 박근혜 밑으로 가서 찬양 나팔을 분다고 한다.
박정희가 누구인가? 엊그제 대선토론 때 이정희 후보가 말하지 않던가? 다까끼 마사오, 나아가서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왜놈 암살자 오까모도 미노루라는 이름으로 두 번 변신하는 왜국의 앞장이요, 민족의 배신자가 바로 박정희다.
얼마 전 민족문제연구소가 1939년 3월 11일자 ‘만주신문’의 사본을 공개했다.
이 신문에는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이라는 박정희의 혈서와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왜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라고 적은 편지글이 실려 있다.
그런데 그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찬양하다니, 할 말이 없다.
‘에이 퉤!’ 가래침부터 뱉는다. 아무리 뭣이 뛰니 뭣도 뛴다고 하지만, 손주놈들 보기 부끄럽지 않을까? 퉤이 퉤! 다시 올라오는 가래침 크게 뱉는다. 저만큼 풀잎에 떨어진다.
아차! 미안하다. 미안해. 풀잎아!
<금산 적대봉>
<소원탑. 새로운 첫 대통령도 기원하였다. 사기와 교만의 정권 5년이 지옥 같았기에.>
<비단금을 쌓아놓은 평안한 적대봉이 저만큼이다>
<봉수대, 적은 외적만이 아니다. 친일파, 독재자의 후예와 동조자, 서민의 고혈을 빠는 자들도 경계해야 한다.>
<적대봉에서 마당목제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산하>
<거금대교>
<녹동의 삼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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