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민초들의 염원이 흰구름 나그네에게도 이심전심으로 전해졌을까? 엉뚱한 상상이 스쳐 지나간다.
1519년 11월 15일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인 아침이다. 그러니까 어제는 이른 새벽부터 한종일 눈보라가 몰아쳤다. 눈보라가 눈으로 코로 감겨들어 얼굴을 바로 들고 걷기 힘들 지경으로 매서운 날씨였다. 그 눈이 한자나 쌓인 길이 꽁하고 얼어 미끄러웠다. 그런데 소문이 돌던 금부도사가 화순 너릿재를 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금부도사가 한양을 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몇 날 며칠을 뜬 눈으로 지샌 양팽손이다. 그러잖아도 허약해진 몸인데 심려가 겹치니 가누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가만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비밀리에 이러저러한 일들을 도모하던 양팽손은 단단히 옷을 겹쳐 입고 집을 나섰다. 다행히 오늘은 눈이 갰다. 하지만 이따금 잿빛구름 틈새로 해가 설핏 거릴 뿐, 바람이 몹시 불어 느끼는 추위가 더 매서웠다.
능성 목사가 금부도사 접대 준비에 만반의 준비를 갖출 때다. 능성목사 관아에 온 양팽손이 목사를 찾았다.
“목사 영감님! 먼 길 오신 금부도사를 융숭하게 환대하였으면 합니다. 조 대감의 마지막 가시는 길이 조금이나마 편안하도록 목사님께서 금부도사께 부탁드려 주셨으면 합니다.”
“양공! 이르다 말이오. 나 역시 조 대감의 불운을 가슴 아파하오. 양 공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한 치의 빈틈없이 금부도사를 맞이하겠소.”
“아무튼 목사 영감님만 믿겠소이다. 금부도사의 노독을 풀어드릴 겸 기녀 애랑이도 꽃단장 시켜놓았으면 합니다.”
“여부가 있겠소. 하하하!”
능성현 목사 관아에 들려 은밀히 얘기를 나눈 양팽손이 이번엔 조광조의 적거지가 있는 초막 가까운 곳의 주막에 들렸다. 주막에는 추운 날씨 탓인지, 너무 이른 시각이서인지 인적이 없었다. 양팽손은 바짓가랑이에 묻은 눈을 털털 털며 주막 안쪽의 으슥한 골방으로 들어갔다.
장정 셋이 기다리고 있었던 듯 벌떡 일어나 예의를 갖춘다.
“빈틈없겠지?”
“예, 나으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거행할 만반의 준비를 갖췄습니다.”
장정들은 윗목에 놓인 큰 푸대자루에 눈길을 보내며 머리를 조아렸다.
“저게 조 대감을 대신할 시신인가?”
“예, 운이 좋았습니다. 마침 행려병자 주검이 있어서, 귀신도 몰래 가져왔나이다.”
“아무튼 이 일이 발각되면 우리 모두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네. 다시 또 당부하지만 죽을 때까지 가슴에 묻어야하네.”
“나으리의 은혜를 어찌 갚나했는데, 오늘 이런 일이 있습니다. 저희도 굳은 각오로 이 일에 나섰으니 심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래,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연락을 하면 번개같이 해치워야 하네.”
“예!”
세 사람의 장정이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양팽손은 다시 밖으로 나와 조광조의 초막으로 갔다.
“조 대감님! 이번에는 제 뜻을 따라주셔야 합니다. 한 번 죽음이 있지, 두 번 죽음이 있겠습니까? 오늘 조 대감님은 저 세상으로 가시지만, 내일은 새로운 삶이 조 대감님 앞에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양팽손의 말에 조광조는 지그시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겨진 그 눈 안으로 만감이 스쳐지나갔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럼, 제가 말씀올린 대로 시행하겠습니다.”
양팽손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다음 다시 밖으로 나왔다.
금부도사가 도착했나 보았다. 목사관아의 나졸들의 모습이 저만큼 얼핏얼핏 보였다. 양팽손은 골목으로 모습을 황급히 감추었다.
금부도사는 유엄이라는 사람이었다.
마침내 유엄이 조광조의 초막에 이르렀다. 조광조는 밖으로 나와 쌓인 눈을 쓸고 깔아놓은 거친 갈잎자리에서 금부도사를 맞았다.
“어명이오. 죄인은 사약(賜藥)을 받으시오.”
“나는 참으로 죄인이오. 그런데 한 가지 묻겠소. 사사(賜死)의 명만 있고 사사(賜死)의 글은 없소?”
“왜 없겠소. 이게 바로 어명의 글이오.”
하지만 조광조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머리 맞대고 국사를 논하던 중종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음모와 계략인 것을 뻔히 알면서 설마 사약까지 내릴 거냐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훈구파들이 거짓 사약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었다.
“심정(沈貞)은 무슨 벼슬에 올랐소?”
“의금부판서로 복직되었소이다.”
“그렇다면 내 죽음은 틀림없소이다.”
조광조는 정적인 심정이 다시 판서에 복직했다는 말에 그만 맥이 풀렸다. 이제 실낱같은 희망도 사라져버렸다.
이제 죽지 않으려면 양팽손의 말에 따르는 것 밖에 없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양팽손이 간절히 권유했다. 은밀히 계략을 꾸몄으니, 하는 대로만 따르라고 했다. 이제 양팽손의 말에 따라야하는 걸까? 이 탐욕과 아집에 빠진 조정의 탐관오리들이 민초들의 고혈을 빠는 세상을 바로 잡으려는 뜻을 채 펴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어야 하나? 아니면 구차하게라도 목숨을 부지하여 후일을 도모하여야 하나? 순간 갚은 갈등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조정의 분위기는 어찌하오. 우리에 대한 평판이 어떻소?”
“왕망(王莽)의 일에 비교하여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하하하!”
순간 조광조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너털웃음이라니….
하지만 중국의 왕망에 비유한다는 말에 조광조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왕망은 중국 한(漢)나라 때의 정치가다. 권모술수가 뛰어난 야심가로서 역사상 최초로 선양혁명(禪讓革命)에 의해서 황제의 권력을 빼앗은 독재자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에서도 유학을 배웠고 어른을 잘 챙겨 큰아버지 왕봉(王鳳)의 신임을 받았다. 그렇게 기회를 노리다 마침내 왕망은 반역에 성공하여 재상인 대사마(大司馬)가 되어 갓 9세인 평제(平帝)를 옹립하고 자신의 딸을 왕후로 삼아 천하의 권세를 움켜잡았다. 또 기회를 엿보다 황제를 독살한 뒤 교활한 오행참위설(五行讖緯說)로 ‘안한공 왕망은 황제가 되라’는 붉은 글씨의 흰 돌을 내세워 하늘의 명령이라며 스스로 황제에 되었다. 그러나 화무 십일홍이라, 왕망은 한나라 왕족인 유수(劉秀)의 군대에 쫓겨 장안의 미앙궁(未央宮)에서 부하의 칼에 찔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오늘날에도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독재자 박정희가 부하의 총탄에, 그의 아내 육영수가 암살자의 총탄에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으니 역사의 심판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음을 알 수 있다.
어쨌거나 당시 조광조가 박정희의 최후는 모르는 일이니, 왕망의 최후를 생각하며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눈을 머금은 잿빛 구름의 차가운 하늘을 보며 큰소리로 껄껄 웃던 조광조가 모든 걸 체념한 평화로운 얼굴로 유엄에게 말했다.
“이보시오, 금부도사! 왕망이라면 사사로운 욕심으로 왕을 죽이고 스스로 황제에 올라 자신을 가황제(假皇帝)라 칭하고 신하들에게는 섭황제(攝皇帝)라 부르게 하였소. 그러니까 이 조광조가 그런 대역을 꿈꿔 임금이 되려고 반정이라도 꿈꿔 왔단 말이오? 헛허허!”
조광조는 다시 껄껄 소리 내어 웃었다.
“그들이 나를 왕망에 비유하여 죽이려 했구려. 하지만 왕망은 사사로운 일을 위해서 살았던 자요. 나와 비교하는 건 맞지가 않소, 아무튼 죽으라는 왕명을 지체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오. 하오나 오늘 안으로만 죽으면 되지 않겠소? 내가 마지막으로 글을 써서 집에 보내려 하오. 이런 저런 분부하고 조처할 일도 있으니, 그 때까지 여유를 주실 수 있겠소?”
왕망 얘길 듣고 웃고 나니 조광조의 마음엔 한껏 여유가 생겼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양팽손의 권유를 받아들여야겠다고 작정을 했다. 시간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양팽손이 귓속말로 일러준 대로 여유를 달라고 청을 했다.
비록 정적이긴 했지만 조광조의 인물됨을 아깝게 생각하던 유엄이었다. 그래서 유엄은 조광조의 청을 순순히 허락하였다.
“그리하오.”
조광조는 갈대 자리에서 일어나 초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마지막 절명시와 가족에게 당부하는 글을 썼다.
때는 음력 12월이다. 남녘이지만 섣달의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매서운 날씨가 계속 되며 어제는 한종일 눈까지 흩뿌렸다. 다행히도 오늘은 눈이 갰으나 낮게 깔린 구름을 몰아가며 산천을 할퀴는 바람에 초막은 바람막이가 되질 못했다.
추위에 떨리는 손을 다잡으며 한 글자도 비뚤어지지 않게 글쓰기를 마친 조광조는 목사가 보내주어 잔심부름을 했던 관동(官僮)과 집주인을 불렀다.
“내가 죽거든 관을 얇게 만들고 두껍게 하지 말아라. 먼 길을 가기 어렵다.” 그리고 집주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네 집에 묵었으나 아무런 보답도 못하고 도리어 흉변(凶變)을 보이고 네 집을 더럽히니 죽어도 한이 남는다.”
조광조의 유언과 같은 마지막 말을 들으며 관동과 주인은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런 와중이다.
조광조에게 마무리할 시간을 주고 금부도사가 임시처소에서 쉬고 있을 때다. 능성 목사가 직접 나졸을 데리고 유엄의 처소로 왔다.
“금부도사님! 누추한 고을을 찾아주셔서 영광이옵니다. 조 대감에게 잠시 시간을 주셨다 하니,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하리라 여겨집니다. 어제는 폭설까지 내렸고 오늘도 추위가 만만치 않습니다. 객고도 풀겸 잠시 따뜻한 장소로 옮겨 기다렸으면 합니다. 정성껏 소찬을 마련했사오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는 은근히 금부도사를 주연 자리로 이끌었다.
“아직 해가 많으니 그리해 볼가요? 목사님의 환대를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닐 듯싶으오.”
마침내 금부도사와 목사는 자리를 옮겼다. 역시 음식은 남도라 했다. 가보니 생전에 보도 듣도 못한 산해진미가 한 상 가득이다. 더하여 능주 고을의 일등 기녀인 아리따운 애랑이까지 눈웃음을 친다. 그 애랑이가 입안의 혀처럼 수발을 들었다.
금부도사는 자제하려 했으나, 무슨 술이 그리 독한지 몰랐다. 취기가 오르니, 이제 술이 술을 마신다. 잔뜩 대취하니 방바닥이 오르락내리락이요, 천정이 빙글빙글 돈다.
그러는 가운데 해가 설핏 서산으로 기운다.
“이제 가서 어명을 집행해야겠소이다.”
“그러시지요.”
잔뜩 취한 금부도사 유엄은 나졸들의 부축을 받으며 다시 조광조의 초막을 찾았다.
“이제 사약을 받게 하라.”
“예이!”
기인 대답과 함께 사약이 방안에 있는 조광조에게 건네졌다. 독한 술도 한통이 따라 들어갔다.
조광조는 사약을 받아 마시기에 앞서 예를 갖추었다. 조상께, 임금께, 그리고 세상과 운명에게 사배를 올린 다음 먼저 술을 한 사발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리고 주저 없이 사약을 마셨다. 그러고 한동안 기다렸으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술을 한 사발 더 마셨다. 사약도 한 사발 더 마셨다.
“어째 이제 죄인이 죽었느냐?”
사약을 마시는 조광조의 상황을 보고 받으며 유엄이 물었다.
“예, 이제 숨이 끊어진 듯 하옵니다. 손수 검시 하시겠습니까?”
“음, 그래야지.”
금부도사 유엄은 비틀걸음으로 초막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역한 냄새가 확 끼친다. 조광조의 주검에 오물이 많이 묻어있었다.
“됐다. 거적에 싸서 버리도록 하라.”
금부도사 유엄의 검시가 끝나고 모든 게 마무리되었다. 조광조의 주검은 곧 거적에 둘둘 말려져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장정 셋이서 그 주검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데 장정들의 얼굴이 낯이 익다. 주막집 골방에서 양팽손의 지시를 받던 사람들이다.
그날 밤 양팽손의 처소다. 흐릿한 호롱불 아래 두 사람이 앉아있다. 바로 양팽손과 조광조다.
사약을 마신 조광조가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광조는 사약을 마시는 척만 했고, 곧바로 초막을 나와 몸을 감춘 것이다. 그리고 가짜 조광조의 주검이 초막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눈 깜짝 할 새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다면 사약을 마시지 않고 몸을 숨긴 조광조는 그 뒤 어찌 살았을까?
“헛허허! 껄걸껄!”
크게 한 번 웃을 뿐이다. 어찌 역사에 가정이 있을 손가?
조광조의 죽음이 안타까워 흰구름 나그네가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1519년을 다녀온 것이다. 착각이 자유이듯, 안타까운 역사를 애통해하는 상상도 자유다. 하지만 엉뚱한 상상으로 조광조와 양팽손 선생 등 훌륭하신 두 분 이름에 흠이라도 남으면 어쩌랴? 죄송한 마음으로 뒤늦게나마 정암 선생의 영정에 머리 조아려 그 절통한 심정을 나누어본다.
<능성현 관아 내의 봉서루>
<목사고을 능주. 옛날의 능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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