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기행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30-2

운당 2012. 12. 1. 07:55

 

잠시 능주의 옛날로 돌아간다. 바다를 바라보는 능주의 들과 강은 수렵, 어로, 채취, 농경 등 고대인들에게 천혜의 삶터였으리라.

능주가 바다와 접했다는 것은 오늘의 우리에게는 믿기지 않은 일이기에 화순, 능주의 옛 지명을 살펴본다. 백제 때 화순을 잉리아현(仍利阿縣), 해빈현(海濱縣)이라 했다. 신라 경덕왕 때는 여미현(汝湄縣)이라 했다. 인할 잉()은 이두로 라는 말이다. 따라서 화순은 너리아였다. 또 이때에 바다를 너리또는 나미라 불렀으니 화순, 능주 지역이 바다였다는 걸 말한다. 지금도 파도를 이르는 말에 너울이 있으며 이 너리에서 나온 말이라 여겨진다.

우리의 언어는 우랄알타이어 계통이다. 이 우랄알타이어에서는 바다와 호수가 같은 뜻으로 섞여 쓰이고 있다. 몽골에서 호수를 나우르/노우르라 하니 우리 한국의 너울, 놀과 닮았다. 닮은 게 당연한 거다. 또 퉁구스어로는 바다나 호수가 라무/나무. 고구려 때 연못을 노모라 했다. 이 역시 한 계통임을 알 수 있다.

일본어에서도 소()누마이고 파도가 나미’(). 한반도의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신라 경덕왕 때의 능주의 고을 이름 해빈현(海濱縣)도 바다 해()자와 물가빈()자가 아무 뜻 없이 붙여진 것이 아닐 것이다.

또 충남 서산시 해미(海美)의 앞선 땅이름에 여미(餘美)가 있다. 지금의 해미는 조선조 태종 때 정해현(貞海縣)와 여미현(餘美縣)를 합친 것이다. 화순의 여미(汝湄)와 서산시의 여미(餘美)는 한자는 달라도 당시 바다에 접한 고을 이름이었다. 당시에 바다를 이르는 또 하나의 이름 나미는 이 여미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러하니 잉리아현(仍利阿縣), 해빈현(海濱縣), 여미현(汝湄縣)이었던 능주는 백제 때부터 최근의 조선 초까지도 바다와 접했었다는 증거가 땅 이름에 있는 셈이다.

 

아무튼 해안과 접해 고대인의 삶터로는 최적지였던 능주, 화순은 마한의 54소국 중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이었고, 이웃하여 동복에 벽비리국(辟卑離國)이 있었다 한다.

삼국시대에 백제는 능주를 이릉부리현(爾陵夫里縣)이라 했다. 신라 경덕왕 16(757)에 능성군(陵城郡)이 되어 무주(武州, 光州)에 속하며, 지금의 보성군 복내면인 부리(富里)와 화순군인 여미(汝湄) 등의 영현(領縣)을 관장했다.

고려초 태조 23(940)에 능성(綾城)이라 했고, 고려 현종 9(1018) 나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인종 21(1143) 현으로 승격했다. 조선 태종 16(1416) 화순을 병합 순성현(順成縣)이라 했다.

이 능주 고을은 과거에 목사가 있었던 목사 고을이라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조선조 16대 왕 인조(仁祖) 10(1632)의 일이다. 왕의 어머니는 인헌왕후(仁獻王后 1578.4.17.~1626.1.14.)로 속성이 구()씨였다. 그리고 모친의 시조(始祖)인 능성 구씨(綾城具氏) 구존유(具存裕)의 관향(貫鄕)은 능성현(綾城縣)이었다. 이에 인조는 능성현을 목()으로 승격 시켰다. 별호는 이릉(爾陵)이었다.

그 뒤 1895년에 지방제도 개편으로 나주부 능주군, 1896년에 전라남도 능주군이 되었다. 1908년에 화순군이 능주군에 병합되고, 1914년 군면 폐합 때 동복군도 편입하여 영역이 넓어졌으나 능주군을 화순군으로 개칭함으로써 군의 명칭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이 고을 사람들의 마음 속 자부심까지 빼앗아가지는 못했다.

 

사람의 자부심이나 행복은 어떤 것일까? 일자리나 물질의 풍요로만 대체할 수 있는 걸까?

99%1%의 빈부격차, 동서의 지역감정과 남북의 이념갈등, 노령화와 청년실업 등 지금 우리는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더하여 불통, 사기정권인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위의 일들은 심화되고 격화되어왔다.

 

특히 망국적인 지역감정은 선거 때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지역을 가르고, 이웃을 가르고, 심지어 친구나 가족관계도 불편하게 만든다. 그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할지라도 현실에서 도가 넘어섰다고 본다.

집권하고 있는 거대 지배세력의 두목 똘만이가 감히 민초들을 향해 공식석상에서 홍어×이라고 적개심을 표현하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뿐이다.

 

성씨로 보면 한국은 남과 북도, 경상도도 전라도도 없다. 성씨로만 보면 한국인은 누구나 다 그렇게 한 줄기다. 고구마 열매처럼 뿌리를 들춰보면 모두 다 한 뿌리에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죽수절제아문-능성현 동헌의 정문>

<죽수절제아문 안내판>

<목사 고을 능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