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기행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29

운당 2012. 11. 24. 06:04

 

호남 기행

 

호남가(湖南歌), 호남시(湖南詩)를 따라서 · 29

 

 <용담댐>

 <용담의 용안처>

 <기념비>

 <용담의 가을>

  <용담댐 기념관의 환경 작품. 현대인의 자화상>

 

 

용담(龍潭)의 맑은 물은 평안(平安)한 용()의 안식처

 

용담(龍潭)의 맑은 물은 이 아니 용안처(龍安處).

용이 사는 곳, 그곳에서 편안히 살아야 하니 우선 물이 깊고 맑아야 한다. 금강의 상류인 용담에 댐이 생겨 깊은 담()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라 한다.

 

왜 그런지 얘기하기 전에 흰구름 나그네는 먼저 용담(龍潭)의 지명에 대해 알아본다.

해발 217m에 이르는 산악 분지의 고을 용담면은 757(신라) 청거(淸渠)라 불렀으며 진례현(오늘의 금산)의 속현이었다. 1413년 조선 태종(太宗 13)때 남원도호부 9현 중의 하나로 현감이 있었고 1656년 효종(孝宗 7)에 현령(縣令)으로 승격되어 옥천(玉川)이라 했다. 1914년 진안군에 통합되어 현재의 용담면이 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용담은 땅이 메마르며 기후가 일찍부터 춥다고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주기(州記)에 용담현의 동남쪽 용강산(龍岡山)과 마산담(馬山潭)의 두 물이 모이는 사이에 용담이 있어 현의 이름으로 취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용담의 백성은 소박하고 꾸밈이 적다.’

땅은 궁벽하고 하늘이 깊으며 바위는 기이하고 나무는 노후하다. 구름다리가 산에 걸리고 돌길은 시내에 연해 있다. 백성은 드문드문하며 푸른 절벽이 만 겹으로 겹쳐있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안식을 취하는 용담면에는 다음과 같은 유적이 있다. 그 하나는 주자천변 우뚝 솟은 절벽의 태고정이다. 현종7(1666)에 용담 현령 홍석이 건립하여 유생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라 한다. 이 정자에도 다른 지역의 유명 정자처럼 선현들의 글들이 걸려 있는데 1911년 총독부가 이를 압수하려고 했다 한다. 그러자 주민 한 분이 자기 재산을 내놓아 지켰다고 한다. 이 태고정이 댐 건설로 인해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면민은 뜻을 모아 98년도에 망향의 동산으로 이전하였다 한다.

또 한곳은 옥천암이다. 천태산의 옥천암은 892(신라진성 여왕6)에 창건된 사찰이다. 처음에는 그 규모가 컸다고 한다. 사찰입구를 이루는 계곡의 맑고 깨끗한 물을 옥류천이라고 부른다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용담의 지명이 왜 우연이 아닌 필연적이었는지 알아본다.

용담은 용용()자에 못담()자다. ‘용이 살 수 있는 깊은 못이란 의미다. 하지만 과거의 용담은 큰 용이 살만큼 깊은 못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징적인 명칭으로만 생각했다.

다만 안천, 주천, 정천이라는 내 천()자가 들어가는 마을의 골짜기에서 물이 흘러와 용담면에서 하나로 만나 작은 강을 이루어 금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곳이어서 긴 강을 용 자체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댐이 생기기 전의 용담면에는 맑은 강이 용처럼 흐르는 곳이었다.

그러다 1992년부터 댐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여년 뒤, 이름 그대로 용이 살만한 거대한 못이 생겼다.

주변의 모습도 바뀌었다. 이 계곡 저 계곡으로 물이 차오르자 그 물줄기며 주변의 산세가 마치 꿈틀대는 용의 형상이 되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이며, 그 물에 몸을 담그는 계곡의 등성이들이 마치 힘차게 하늘로 오르는 용의 모습이었다. 용담의 이름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곳 용담댐 가까이에 용()자가 들어가는 마을이 2개 있는데 하나는 와룡리(臥龍里)이고 다른 하나는 회룡리(回龍里). 댐 바로 아래 마을이 회룡 마을인데 이 회룡(回龍)마을에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장차 이곳 용담에 거대한 못이 생기고, 그 못에 물이 가득 차게 되면 용이 하늘로 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물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서천동류(西川東流)하여 금강과 합해지는 곳에 큰 연못이 생기게 된다. 그 연못에 물이 가득 차게 되면 용이 돌고 돌아 하늘 높이 승천(昇天)한다고 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회룡이라는 거다. 회룡의 전설도 현실이 된 것이다.

 

올해는 임진(任辰)년이다. ()은 오행에서 수()이고, 색으로는 검은 색이다. 12년을 주기로 청룡, 적룡, 황룡, 백룡, 흑룡이 되는데 60년 만에 흑룡이 된 것이다. 그래서 2012년이 밝자 흑룡해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발가락 다이어 돼지해나 황금돼지해를 말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 데 흑룡해는 왜 좋아할까?

 

용은 상상의 동물이다. 용을 뿔은 사슴, 머리는 낙타, 눈은 토끼, 목덜미는 뱀, 배는 이무기, 비늘은 물고기, 발톱은 매, 손바닥은 호랑이, 귀는 소와 같은 모습이라 한다.

흑룡은 검은 용이다. 살색이라는 색깔이 사라진지 오래다. 이제 살구색이 된 살색은 특정색이 아니라, 그저 차이를 나타내는 색일 뿐이다.

검은 용은 검은 피부 오바마가 세계 대통령 격인 것처럼 용의 왕 격이다. 예로부터 용은 비바람의 조화를 부리는 상상의 동물로 임금을 상징한다. 그래서 임금의 옷을 용포, 얼굴은 용안, 앉는 자리를 용상이라 한다. 또 왕후의 침실 천정에 용 그림, 용무늬를 그려놓고 눈에 익혀 용꿈을 꾸도록 했다

어디 왕 뿐이랴? 평민들의 바람도 자식 잘 되는 게 최대의 염원이다. 그래서 용꿈 꾸고 아이를 출산하고자 희망하였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용이나 용꿈과 관련된 얘길 알아보자.

고구려 시조 주몽 신화에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다섯 마리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지상에 내려왔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은 용이 알영정(閼英井)에 나타나 낳은 딸이다. 고려 태조 왕건의 할머니는 용왕의 딸이며 용비어천가에는 이성계의 할아버지 도조의 꿈에 백룡이 나타나 자손이 크게 흥하리라고 예언한다.

신사임당은 용꿈을 꾸고 율곡 이이를 낳았다. 그래서 이이의 어릴 적 이름을 현룡(現龍)이었고, 오죽헌의 산실을 몽룡실(夢龍室)이라 했다.

 

로또가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차치하고 용꿈은 곧 현대판 로또에 상당하는 행운의 상징이었다. 이러다보니 용꿈을 사고 파는 경우도 있었다.

1964년은 용의 해였다. 그 용의 해 한해 전인 19631025일의 신문기사다.

그해 제5대 대통령선거가 한창일 때 경남 사천군 서포면 구평리에 사는 정 모양(20)이 용꿈을 공화당 지부에 팔았다는 것이다. 그 덕으로 오까모도 미노루이며 다까기 마사오인 박정희가 당선되었을까? 아무튼 공화당이 꿈 값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그 정 모양은 선거(1015) 직후인 24일 상경했다. 그리고 장충동의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5대 대통령취임일은 1217)공관 앞에서 꿈 값 내놓아라!’며 항의농성을 벌였다. 구경꾼이 몰려들고 급기야 경찰까지 동원됐다.

하지만 아무도 돈을 주지 않자 그녀는 자신의 손등을 돌로 찍어 피를 내는 소동을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은 그 처녀의 머리가 약간 돌았다는 게 판명돼놓아주었다고 했다.

그녀는 풀려나자마자 공화당 본부로 간다.’며 쏜살같이 내달렸다고 한다. 그녀가 그 후 박정희나 공화당 측으로부터 돈을 받았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게 사실이라면 몽매함으로 일어난 일일뿐이다. 허나 믿을 놈을 믿어야지 공화당을 믿었다니 정 모양을 탓할 수밖에 없다.

 

또 이런 기사도 있다. 198212, 559회 주택복권 추첨에서 강 모씨(28)는 연식복권 10장 가운데 1장이 1등에, 나머지 9장이 모두 행운 상에 당첨되었다. 모두 35404백 원의 거금이었다. 당시 200만 원짜리 단칸 전세방에 사는 강 씨는 약혼녀 집에 들렀다 가는 길에 복권을 샀고, 이후 세금 공제 뒤 28603074원을 받았다

한 달 전 용꿈을 꾼 것이 이런 행운이 됐나 봐요. 이 돈으로 집도 사고 내년 초에 결혼식을 올리겠다.’

용꿈을 꾼 강씨는 내내 싱글벙글 이었다는데, 그 뒤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용꿈의 뒤 사연이 궁금하다.

 

이밖에도 용에 관계된 사연들을 더 찾아본다.

신라의 문무왕은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또 어느 낚시꾼은 용꿈을 꾸고 낚시대회에 나갔다 월척을 올렸다 한다. 용꿈이 최소한 로또복권쯤은 되어야 하는데, 월척 물고기가 된 것이 좀 아쉽지만 본인은 감개무량했으리라.

또 어떤 운동선수는 용꿈을 꾼 뒤 숙원이던 우승의 꿈을 이루었다고 한다. 선거유세장에서 내가 이번에 용꿈을 꾸었으니 당선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나를 뽑아주면 나라의 운도 활짝 필 것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도 있었다 한다.

소설 홍길동에서도 길동은 아버지의 청룡 태몽으로 태어난다. 용이 얼마나 좋았으면 아리따운 아가씨 춘향의 남자가 용꿈(몽룡(夢龍))이겠는가?

 

하지만 용이라고 다 행운을 가져다 준 건 아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그 용의 해에는 왜적에게 우리 조선은 초토화가 되었다.

용두사미란 말이 괜히 있겠는가? 용꿈이라고 큰 소리 치다가 뱀 꼬리도 못 된 일도 있다.

용의 해인 1976년 병진(丙辰)115일이다. 박정희는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영일만 부근에서 우리나라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되었다고 했다. 이 발표 한마디로 온 국민은 용의 해의 용꿈이라며 벅찬 감격과 환희에 휩싸였다. 언론 역시 덩달아 연초를 흥분시킨 용꿈 낭보’, ‘용의 해, 우리도 잘 살게 됐다며 희희낙락 했다. ‘꿈에도 갈구하던 석유, 가히 단군 이래 염원이라고 할 민족의 바람이 현실로 등장’, ‘대통령의 석유 발표를 듣는 순간 국민들은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부풀리며 이성을 잃고 국민들의 흥분을 부추겼다.

이것은 병진년을 앞둔 1975123, 중앙정보부가 박정희에게 영일만에서 석유가 발견됐다.’는 첫 보고를 하고 사흘 뒤인 6일에 현물 석유 1드럼을 청와대로 보낸 것이 발단이다. 이걸 박정희가 용의 해에 맞춰 교묘하게 이용해 먹은 것이다. 오는 날의 사기마왕 이명박의 원조가 바로 박정희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126일 박정희는 청와대에서 중동지역수출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참석자들에게 석유 냄새를 일일이 맡게 하고 심지어 테이블 위 접시에 따라놓고 불을 붙이게도 했다. 불이 붙자 참석자들은 환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대통령은 아직 경제성이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소문내지 말라고 했다 한다. 하지만 그 말은 은근히 소문을 내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예로부터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법이다. 어떤 사람이 소문이 얼마나 빠른지 보려고 부산역에서 서울행 기차를 타면서 이명박이 전국의 쥐새끼를 모두 죽이라고 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서울역에 내리니 이게 벌써 소문이 나있더라는 우스개도 있다. 따라서 석유 건도 알만 한 사람은 다 알게 됐다. 사실은 박정희가 각계인사를 만날 때마다 여기서만 얘기하지만.’ 식으로 정보를 흘렸던 것이다. 당시 육영수 대역이던 박근혜도 TV회견에서 지나가는 말처럼 석유가 펑펑 쏟아져 아버님 얼굴에 웃음이 돌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또 그해 초 금 석유에 이어 제3의 노다지 우라늄광이 발견됐다.’는 기사까지 용꿈에 가세했다. 그러나 곧 석유탐사는 시들해졌고 우라늄 얘기도 슬금슬금 꼬리를 감췄다.

그러니까 진짜 용꿈을 꾸지도 않은 관료들, 특히 정보기구와 경제부처 장들이 딸랑이 경쟁에 나서 박정희의 환심을 사려고 거짓 보고를 일삼은 것이다.

석유원년이란 조어까지 유행시켰던 그해의 사기극은 결국 포항일원의 땅 투기와 주식열풍의 악영향만 남긴 채 용꿈이 개꿈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로부터 30년도 더 세월이 흘렀다. 그렇다면 이제 그런 과거의 나쁜 관행인 거짓과 부풀리기, 사기극이 없어졌을까? 뻔질나게 해외로 쏘다니는 이명박을 살펴보자. 이 인간은 귀국만 하면 무슨 양해각서를 나눴다고 자랑을 친다. 무슨 국제회의만 열고도 몇 십만 개의 일자리 창출, 몇 조의 경제유발 효과라고 뻥을 친다. 대국민 사기극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아무튼 언론은 석유가 나오기만 하면, 우라늄이 생산되기만 하면 이제 우리나라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난다고 했다. 그리되면 국민은 세금도, 학비도 안내고 오히려 나라에서 돈을 받을 것이란 전망까지 그럴듯하게 덧붙였다. 참으로 북치고 장구 치고 대단한 딸랑이들이 아닐 수 없고 그 딸랑이의 역사는 깊고 넓고 오래다.

하지만 곧 이런 조작은 사기로 판명되고 흐지부지 되었다. 시추공을 따라 흘러들어간 기름을 원유발견으로 둔갑시킨 거였다.

오늘 날도 사대강에 프로펠라를 돌리면 강물이 정화 된다고 하는 학자나 정치가, 심지어 대통령까지 입에 침을 튀기며 국민을 현혹하는 세상이다. 할 말이 없다. 그렇게 전 국민을 우롱한 싸가지 없는 헛된 용꿈도 있었다.

 

허망하게 용꿈을 짓밟아 버린 일도 있다. 2000년 경진(庚辰)년은 새천년의 문을 연 해다. 남북분단 후 처음으로 정상회담이 열려 6.15남북공동선언이 나왔다. 남북 이산가족 200명이 서울과 평양에서 반세기만의 상봉도 이루었다.

그런데 이명박이 집권하면서 그 용꿈을 개꿈으로 만들어버렸다. 참으로 나쁜 정권이다. 백성들이 가꾸는 희망의 꽃을 정권이 앞장서 짓밟은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12년 만인 올해 2012년 흑룡의 해, 임진년을 맞았다. 용을 뽑는 선거도 있다. 내가 적임자다며 몇 사람이 그 용꿈의 주인이 되려하고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용꿈을 꾸어도 그것이 거짓, 술수와 관련됐다면 개꿈이라는 거다. 용은 무엇보다 불의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어제는 경제민주화를 외치다 오늘은 경제위기를 외치는 사기꾼, 어제는 과거를 이야기하고 오늘은 말춤을 추는 천박한 인간은 결코 흑룡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어디 용뿐인가? 말없는 민초들이 엄중한 심판을 표로 할 것이라 믿는다.

 

더하여 꼭 용꿈이 아니어도 된다.

속성이 설씨인 원효대사(617-686)는 어머니가 유성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받은 후 임신하였고 만삭이 된 몸으로 남불지촌 율곡 마을을 지나다가 사라수 아래에 이르러 갑자기 출산하였다. 그 때 오색구름이 땅을 덮었다는 게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별이 내려왔다는 뜻의 낙성대(落星垈)는 강감찬(9481031)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장군의 어머니가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품속에 와서 안기는태몽을 꾼 것이다.

왜나라도 마찬가지다 토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도 어머니가 태양이 떨어지는 걸 치마로 받는 태몽을 꾸고 태어났다.

도꾸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의 어머니 오다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아들을 낳던 날 저녁 시녀를 시켜 절에서 불상을 가져오게 한다. 호랑이띠의 수호신인 보현보살상을 훔쳐오게 한다. 아이가 태어나자 내 아들은 보현보살의 현신이다. 호랑이띠, 호랑이 달, 호랑이 날, 호랑이 시에 태어났다.’고 소문을 낸다. 꿈을 현실로 받아들여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하지만 용꿈이고 별꿈이고, 해꿈이고 다 인간의 마음에 있다는 생각이다. 감나무 밑에 누워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말자는 얘기다. 스스로 개척하고 나아가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흰구름 나그네는 그걸 믿는다.

 

용의 옛말은 미르. ‘미르미리가 되었는데, ‘()’이 되었고 미리()’예언의 의미가 되었다. 그래서 용은 물을 나타내고 또 예언적 주술성이 더하여져 용신사상의 주체가 되었다.

 

물은 만물을 살려내는 생명수로 불과 함께 원시시대부터 경배의 대상이었다. 물은 또 문명의 젖줄로 고대문명의 발상지가 다 큰 강 유역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첫 새벽에 우물에서 길러온 정화수(井華水)를 신령하게 여겼다. 정화수 중에서도 정월 대보름날에 닭이 울 때 길은 우물물이 가장 신령한 물이었다. 용이 밤에 남몰래 알을 낳고 가는데 이게 처음 우물물을 길은 사람의 물속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용알이 담긴 물, 그러니까 두 신성한 물건이 합해져 길상수(吉祥水)가 된 것이다. 이물을 복수(福水), 또는 수복수(壽福水)라며 귀하게 여겼다. 기도하면 소원이 이뤄지고 용알 밥을 지으면 운수대통에 더하여 건강 장수한다고 믿었다.또 용은 물과 함께 있어야 신성한 영험을 갖고 이로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만일에 생명수를 만나지 못하면 용은 영험함을 발휘하지 못하고 분노가 폭발하여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고 한다.

 

2012, 용 중에서도 가장 영험하다는 흑룡, 돌고 돌아 60년 만에 임진년이 되었다.

단군 이래 사기 협잡꾼이 많았지만, 그 중 으뜸은 이명박이다. 그리고 박근혜가 그 뒤를 이어가려 한다. 물 한 모금 달라고 아우성치는 백성들에게 엉뚱한 행동과 말로 분노만 다하게 한다. 홍어×이 다 무언가?

이제 우리 손으로 갈증을 풀어야 한다.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은 결코 민초들의 영원과 희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물이 될 터이니 용이 되어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쥐나 닭이 설치고 사기와 협잡이 판치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한다.

 

흰구름 나그네가 용담을 찾던 날(2012. 11.4)은 오전에는 날이 좋았다. 그런데 용담댐에 가까이 갈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용은 물이 있어야 승천하는 법, 나그네를맞이 하는 용담식 환영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산도 받지 않고 잔비를 그냥 맞으며 용담댐을 둘러보았다. 물문화관과 환경을 주제로한 조각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눈에 띄는 작품이 많았다.

이어 용담댐을 따라 난 찻길에서 아름다운 늦가을 풍광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면서 용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용은 변화와 융합의 상징이라고 했다. 모든 영험함의 합일체이며 물을 얻어 풍운을 거느리고 불을 뿜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상징이다.

일본인 하마다 요라는 사람은 용이 유비쿼터스처럼 다양한 사상이나 문화의 공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유비쿼터스는 장소에 상관없이 어디에서나 소통할 수 있음이다. 그 유비쿼터스처럼 용도 어디에나 있고, 하나의 이미지나 관념만이 아니라는 거다. 따라서 용은 힘과 지혜를 갖추고 이 시대와 상황을 변화시키고 타개할 힘이 있다고 본다.

그러기에 우리 민초들은 희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에 열과 성을 다했으면 한다.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다.

임진년이다. 민초들의 희망과 염원에 맞춰 시운이 따라주는 흑룡의 해다. 1219, 민초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 민초들의 손으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