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달 따러 가자

운당 2011. 6. 25. 12:16

<짧은 이야기>

달 따러 가자

 

“어서 오시게. 근디, 아따 뭔 날씨가 이렇게 덥단가?”

이열치열이라 했다. 헬스로 더윌 쫓을 생각에 헉헉 뜨거운 숨 내품으며 귀빈체육관에 들어서니, 신 선배가 반갑게 맞아준다.

“글씨 말이오. 메아린가 뭔가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니께, 더위가 한풀 가시겄지라.”

“근디 태풍 이름이 참 좋아. 메아리라. 산에 산에 산에는 산에 사는 메아리 언제나 찾아가서 외쳐 부르면 반가이 맞아주는….”

“아따 선배님은 기억력도 참 좋으시오. 소시쩍 노랠 다 기억하시니 말이오.”

그렇게 해서 기억에 가물가물한 동요를 흥얼거리게 되었다. 노랠 흥얼거리면 운동하는데 힘이 덜들기도 해서다.

“선배님! 지가 이번엔 ‘달 따러 가자’를 불러 볼게라우.”

 

‘애들아 나와라 달 따러 가자

장대 들고 망태 메고 뒷동산으로

뒷동산 올라가 무등을 타고

장대로 달을 따서 망태에 담자

 

저 건너 순이네는 불을 못켜서

밤이면 바느질도 못한다더라

애들아 나와라 달을 따다가

순이네 엄마 방에 달아드리자.’

 

“그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적에 그 ‘달 따러 가자’를 나도 불렀네 그려. 달이 오른쪽으로 배가 부르면 상현달, 왼쪽으로 배가 부르면 하현달이다. 상현, 하현, 초승달, 그믐달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의 말씀도 귀에 쟁쟁허시.”

“근디 말이오. 선배님! 방금 뭘 딴다고 혔소 잉?”

“뭘 딴다고 혔냐고? 달을 딴다고 안 혔는가? 아하! 그러고 보니 자네 요즈음 그 어떤 시러배 종자가 한 말 때문에 그러제.”

“야! 그러요. 춘향전은 변사또가 춘향이 따먹는 얘기라고 한 그 시러배 종자의 말이 이 시점에서 재수없시 팍 생각나불고만이라우.”

“근께 말이시. 그 시드기 같은 인간이 못생긴 여자 어쩌구 저쩌구, 보온병 들고 포탄이라고 헌 그 재수에 옴오른 잡것은 여자는 자연산이라고 혔고, 이제는 그 시러배 종자 때문에 여자는 따먹는 존재가 되부렀구먼.”

“그러고 보니 아름다운 우리 말을 많이 잊어버렸지라. ‘동무 동무 씨동무 보리가 나도록 씨동무’ 하고 노래 부르던 ‘동무’ 라는 말은 북쪽 형제들이 쓰는 말이어서 금기시 되었지라. 그 대신 ‘친구’라는 말이 있어서 다행이지만 잘못쓰면 빨갱이가 되는 판이니 무서운 말이지라. ‘평생동지’라는 말도 참 좋은 말인디 황소를 마스코트로 내세우며 ‘우리가 남이가’ 하는 정치권력 때문에 혐오스런 말이 됐지라. 그 ‘동지’를 대체할 말이 없어 그냥 ‘동지여! 동지여!’ 하고 피울음 우는 것으로 멍든 가슴을 달래는 것이겠지라.”

“근께 언어의 미학이 추학(醜學)이 된 것이구만”

“참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은 거지라.”

 

쥐들아 나와라 못생긴 여자를 찾자

보온병 들고 모피옷 입고 둥둥섬으로

둥둥섬 유람선 낚시드리워

못생긴 자연산 실컷 따먹자

 

저 아래 민초들은 배가 고파도

말 한마디 잘못하면 골로 간단다

우리가 남이가 못생긴 자연산

천년만년 우리끼리 실컷 따먹자

 

언어의 추학이라. 참으로 더러운 기분이었다. 우리의 마음을 한없이 아름답게 적셔주던 동요 한 곡을 또 망쳤다.

“어야! 그 테레비 꺼불소. 군대도 안갔는가, 못갔는가 빙신같은 놈이 무신 6,25 기념사단가?”

6, 25 기념식을 생중계하는 티비화면에 괜스레 화풀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61주년 6,25 기념일이다. 티비를 켜니 기념식을 하는데 눈구녁이 어쩌코롬 돼서 군대를 안갔네, 못갔네 하던 인간의 얼굴이 보인다.

“아따! 그 시드기 종자가 통일이 도둑처럼 온다 안합디여. 무학대사가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이 보이고 소 눈에는 소가 보인닥 안혔소. 도둑놈 눈에는 다 도둑놈으로 보이는 법이지라. 저 인간들 얘기 허다가 우리 입만 더러워지겄소 잉. 오늘 운동 이만 마치고 시원한 대포 한잔으로 입안을 칼칼히 씻읍시다.”

“어야! 거시기 말이시. 이왕이면 보온병에다 따라서 한잔씩 허세. 입만 씻을게 아니라, 눈도 귀도 칼칼히 씻어불세. 포탄주로 말이시.”

“좋지라. 부라보!

잠시 내리던 비가 그치고, 바람 끝이 시원하게 땀을 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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