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 여행기

이집트, 그리스, 터키 여행기 29

운당 2008. 6. 8. 08:37

26. 트로이-1월 25일 아침

 

오늘은 새벽 이동이다. 젊었을 적부터 습관이어서 일찍 일어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기와집에 사는 인간의 얼리버드라는 말을 들으면서부터는 심사가 뒤틀린다. 신경 끄고 살자고 하면서도 하는 짓거리, 꼬라지를 보면 과연 저게 정상적인 인간인가? 전라도 말로 참 거시기하고 머시기하다. 아무튼 그런 씨잘데기 없는 인간의 얼리버드는 얼른 떨쳐버리고 삶은 계란 두 알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출발했다.

이곳 아이발륵은 염전이 있는 고장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에게해의 바닷물을 소금으로 만드는 그 염전이 보이고 짭쪼름한 바다 냄새가 코끝에 닿는다.

샛별이 앞에서 뒤에서 따라붙는다. 새벽 샛별이 있는 곳이 여기서도 동쪽인지 어쩐지 가늠하는데 버스는 흰구름 몇 조각이 멈춰있는 올리브나무 숲 산등성이 사이를 달린다.

트로이는 트로이 전쟁과 목마로 유명한 고대도시국가다.

잠시 그 때의 영웅들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먼저 트로이 전쟁의 시발에 관한 얘기다.

BC 3500년 무렵이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왕비 헤카베가 태몽을 꾸었다. 자신이 횃불을 낳아 온 도시를 태워버리는 꿈을 꾼 것이다. 그 꿈 이야길 들은 프리아모스는 신하에게 해몽을 구했고, 신하는 태어나는 왕자가 나라를 멸망시킬 거라는 예언을 했다.

왕은 왕자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신하는 왕자 ‘파리스(Paris)’를 이다(Ide)산으로 데려가 죽이려고 했으나, 마음이 변해 나무에 매달아 놓고 왔다.

한 목동이 파리스를 발견하여 파리스는 양치기로 성장하였다.

그런데 운명의 덫이 그에게 다가왔다.

바다의 신인 네레우스의 50명 중의 딸 중 바다의 요정인 테티스와 미르미돈족의 왕인 펠레우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테티스를 서로 아내로 차지하려고 싸웠으나, 테티스에게서 태어나는 자식이 아버지보다 더 위대해질 것이라는 정의의 여신 테미스의 예언을 듣고 인간 왕과 결혼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아무튼 결혼식은 성대하게 열렸는데, 이때 초대받지 못한 질투의 여신 에리스가 화풀이로 황금사과 한 알(불화의 사과 : The apple of Discord)을 던져놓고 갔다. 그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To the Fairest)'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도도한 헤라, 현명한 아테네, 아름다운 아프로디테 등 세 여신이 서로 자기가 그 사과의 주인이라고 다툼을 벌린다. 제우스에게 판결을 구했으나, 슬쩍 한발을 뺐고, 헤르메스(Hermes)도 이다산의 잘 생긴 양치기 파리스에게 물어보라며 난색을 지었다.

어려운 문제였으나, 파리스의 선택은 쉬웠다. 헤라는 동방전체의 지배권과 함께 막대한 부를, 아테네는 모든 전쟁에서의 승리와 명예를, 아프로디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미끼로 내세웠는데, 파리스는 단호하게 아프로디테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여신의 명예를 차지한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에게 트로이의 왕자라는 사실을 덤으로 알려주었다. 그렇게 해서 트로이로 돌아간 파리스는 트로이의 사절로 스파르타를 방문하였고, 왕족 메넬라오스의 아내인 헬레네(Hellene)를 보고 한 눈에 반하고 만다.

헬레네 역시 파리스에게 반해 둘은 트로이로 사랑의 도피행을 감행한다.

이에 메넬라오스는 트로이에 선전포고를 하고 그의 형인 미케네의 아가멤논(Agamemnon)은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트로이의 정벌에 나선다.

다음으로 전쟁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트로이 전쟁의 최대 영웅은 아킬레우스다. 아킬레우스는 미르미돈족의 왕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페티스 사이에 태어났다. 페티스는 인간인 아킬레우스를 불사신으로 만들고자 그를 저승을 에워싸고 흐르는 스틱스 강에 넣었다. 그런데 발목을 잡고 넣은 탓에 발뒤꿈치는 치명적인 급소가 되고 말았다. 그 아킬레우스는 운명을 피하기 위해 전쟁 초기에는 숨어 지냈으나, 호메로스의 오딧세이(Odyssey)의 주인공이며 이오니아 해의 작은 섬 이티카의 왕인 오디세우스에게 설득을 당하여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고 최고의 검술과 창술, 마차를 모는 마술, 현명함과 정이 많은 성격으로 칭송을 받았다.

트로이 전쟁, 그 10여년의 전투를 치르면서 아킬레우스가 파리스의 형인 트로이의 헥토르를 죽이고, 또 아킬레우스는 파리스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렇게 그리스와 트로이의 영웅과 용사들이 숱하게 죽고, 마침내 트로이는 그리스군의 목마에 속아 최후를 맞이한다. 어디 영웅과 용사들뿐이랴?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죽고 마는 것이다. 긴 전쟁과 함께 하는 인류 역사에 결국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것이다.

더하여 이야기가 나온 김에 트로이의 목마가 전설이 아닌 사실이었음을 밝혀낸 것은 슐리히만이라는 독일 장사꾼 덕분이라고 한다.

슐리히만은 어버지 사업실패로 열네살에 학교를 그만 두고 점원생활을 시작했다. 어학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던 그는 17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많은 돈을 벌어1868년 마흔 여섯 살 때 평생의 소원이든 트로이 발굴에 뛰어들었다.

처음 찾은 곳은 부나르바시. 그 무렵 학자들은 만약 트로이가 실제로 있었던 도시라면 부나르바시 마을 근처에 있었으리라고 추측했다. ‘일리아드’의 스물 두 번 째 시에 더운물이 솟는 샘과 찬물이 솟는 샘 이야기가 나오는데, 부나르바시 마을에도 비슷한 샘 두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나르바시를 둘러본 슐리만은 그곳은 절대로 트로이가 아니라고 단정했다.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큰 성을 쌓을 만한 언덕이 없었다. ‘일리아드’에는 그리스군이 배와 트로이 성 사이를 하루에 몇 번이나 오갔으며, 트로이 성은 방이 62개나 되는 큰 성이라고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슐리만은 ‘일리아드’에 나오는 전투 장면을 떠올리면서 다시 또 에게해의 바닷가를 누볐다. 그리고 마침내 부나르바시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뉴일리엄 마을을 찾아냈다. 그곳은 바닷가에서 한 시간쯤 걸리는 거리에 있었으며, 언덕 위가 가로 세로 각각 235m쯤 되는 널찍한 네모꼴 터였다. ‘일리아드’에는 헥토르와 아킬레우스가 비탈에서 성을 세 바퀴 돌면서 싸웠다고 되어 있다. 부나르바시 언덕은 비탈이 너무 심해 달리면서 싸우기가 어렵지만 뉴 일리엄의 언덕은 밋밋해서 뛰어다니면서도 넉넉히 싸울 수 있는 곳이었다.뉴일리엄, 오늘날에는 히사를리크(궁전)라고 불리는 언덕을 자세히 살펴본 슐리만은 그곳이야말로 3,500년 전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용사들이 조국의 명예를 걸고 10년 동안 싸운 트로이 성터라고 확신하였다.

1869년 그는 어느 날 꿈에 보았던 헬레네처럼 아름다운 그리스 처녀 ‘소피 엥가스트로노메스’와 결혼했다. 그녀는 남편이 바라는 대로 아름답고 가난하고 헌신적이며, ‘일리아드’를 아주 잘 아는 여자였다. 1870년 4월, 슐리만과 그의 아내는 히사를리크 언덕에서 첫 삽을 떴다. 그 뒤로 1873년 6월15일까지 3년여 동안 그들은 일꾼 100여명을 데리고 37m 높이 언덕에서 1톤 트럭 25만 대분이나 되는 흙을 파냈다.

마침내 전설의 도시 트로이는 우리들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다.

 <아이발륵을 떠나 트로이를 향해 간다. 에게해의 일출>

 <한국인만큼 일출을 좋아하는 민족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얼리버드는 싫다. 얼리버리한 인간이 되니까. 지금 우리가 그걸 확인하고 있다.>

 <바닷가 마을이 평화롭다. 트로이도, 트룩도 만세다>

 <트로이 유적지 앞의 안내판>

 <트로이 성의 조감도>

 <발굴 유물>

 <당시 트로이 성의 모형도>

 <트로이 성에서 처음에 발굴된 보물들>

 <트로이 성은 수세기에 걸쳐 여러 차례의 증축이 있었다. 그 모습을 차례로 나타낸 조감도>

 <관련 서적들>

 <발굴 모습>

 <트로이 목마의 실물 크기 모형, 직접 올라가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