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 여행기

이집트, 그리스, 터키 여행기 31

운당 2008. 6. 15. 07:52

27. 차나칼레에서 다다넬스를 건너다-1월 25일 오전

 

트로이의 에게해와도 작별을 하고 이제 다다넬스 바다의 차나칼레 해협(항구)을 건넌다고 했다. 차나칼레를 건너 점심을 먹고 해어름녘이면 마지막 여정인 이스탄불에 도착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유럽 지도를 떠올려보면 스페인과 아프리카 사이에 놓인 바다가 지중해다. 그 지중해가 그리스, 터키쪽으로 와서 에게해라 불리고, 그 에게해는 72Km에 이르는 길고 좁다란 다다넬스 바다(해협)를 지나 약간 벙벙해진 말마라바다에 이르고 다시 좁고 기다란 보스프로스 해협을 지나 흑해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다다넬스와 말마라, 보스프로스 해협은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기다란 바다로 양쪽이 가늘고 가운데가 약간 부풀어 오른 풍선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아무튼 차나칼레, 랍세키 해협(항구) 등, 역사적 전투를 치른 두 해협을 거느린 다다넬스 바다는 유럽의 패권을 둘러싸고 그렇게 수많은 민족 간 세력 확충의 각축장이 되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특히 역사의 도시,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을 끼고 있는 보스프로스 해협은 터키와 유럽을 나누는 중요한 길목이니, 유럽에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는 대륙의 관문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지루한 버스 이동이다. 버스는 말마라 바다(대리석의 바다)의 입구 다다넬스 바다와 숨바꼭질을 한다. 푸른 바다를 왼쪽으로 두고 달리니 풍광이 좋기만 하다.

이 다다넬스 바다(해협)에 있는 더 좁다란 길목 차나칼레, 랍세키 해협(항구)의 전투는 유명한데, 세계 제 1차대전 때 이곳 차나칼레에서만도 30만 명의 희생자가 났다고 한다. 차나칼레의 폭이 1.2킬로미터인데 전투가 끝났을 때 해협은 온통 병사들의 주검과 그들이 흘린 핏물로 뒤덮였다고 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용감하게 싸우다 정신을 잃은 한 병사가 눈을 떠보니 자신의 몸이 뱃조각 위에 있었는데, 핏빛 바다에 초승달이 유난히 빛났다고 한다. 그 병사가 그걸 시로 썼는데, 그 시를 읽어본 터키의 영웅이며 대통령이었던 무스타파 캐말 파사가 그 시의 내용으로 국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알 바이크’라고 불리는 핏빛 바탕에 초승달의 터키 국기는 그렇게 한 병사의 핏빛 애국심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민족과 나라는 그렇게 이름 없는 병사들, 숱한 민초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지켜지고 이어진다. 그런데 어느 날 �금없이 패권을 차지한 위정자들이 천박한 경제관, 역사관으로 망언과 망발을 일삼아 그러한 숭고한 애국과 애족은 한낱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일본의 패권주의를, 동아시아 인민과 한국에 끼친 악행, 만행을 누가 용서했단 말인가? 그들이 잘못을 빌지도 않았는데, 사과하지도 않았는데, 언제 우리가 그 역사를 용서했단 말인가? 그런데도 우리가 용서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위정자들은 과연 이 땅과 조국을 어떻게 지키고 이어왔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한심하다 못해 분노와 절망에 이르는 것이다. 하지만 쥐새끼 같은 그런 천박한 위정자를 보고도 우리는 어찌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 더러운 위정자에게 천박한 권력을 쥐어준 게 바로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성씨란 게 없었던 터키에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고 일평생 헌신적으로 자신의 열정과 몸을 바친 무스타파 캐말 파샤에게 ‘아타 트룩(아버지 터키)’이란 성씨를 증정했다고 한다. 그것도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말이다.

우리가 터키라 부르는 역사의 나라, 트룩의 아버지 캐말파샤와 터키인들에게 신의 가호와 영광 있으라. 국민의 감정은 아랑곳없이 최소한의 민족적 자존마저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쥐새끼 같은 정치인이 판을 치는 우리 한국도 그렇게 터키의 영광을 본받았으면 싶다.

그렇게 기원하며 차나칼레에 이르렀으나, 배편이 안 맞아서 좀 더 위쪽으로 더 올라가서 랍세키 (아시아)항구에서 다다넬스 바다를 건너 겔리보르(유럽) 항구에 도착했다.

커다란 배가 버스를 싣고 푸른 물결을 헤치며 다다넬스 바다를 건넌다. 지난날의 핏빛 전장터를 평화롭게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간다.

마침내 배가 겔리보르 항구에 들어선다. 갈매기들이 먼저 반긴다. 점심을 먹고 잠시 바닷가에 앉아 낯선 이국의 풍광을 즐긴다.

두 여학생이 빵과 음료를 들고 와 바닷가 의자에 앉아 깔깔댄다. 바로 수천 년 전 동쪽에서 헤어진 우리 조상들의 서쪽 후손들이다. 몇 마디 얘기라도 나누고 싶지만, ‘규나이든!’ 말고는 아는 말이 있어야지. 그냥 미소만 지어보고 만다.

트룩인들! 새 세계를 찾아 오랜 세월 이동하면서 숱한 고난과 난관에 부딪쳤으리라. 지중해의 패자들과 일전을 겨루어 승패를 거듭했으리라.

그렇게 대륙을 건너와 수많은 민족과 부대끼며 그들의 자존을 지킨 터키인들을 보며 그들이 부럽고 아득한 형제애가 느껴져 힘든 일정이지만 기운을 내기로 했다.

트룩 만세! 트룩과 함께, 그리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중국 북방의 패자였던 고구려도 만세!

 <동글동글한 소나무가 알렉산더 소나무다. 트로이를 출발 이스탄불을 향해 간다>

 <이제 에게해를 지나 다다넬스(해협)에 들어섰다.> 

 <복숭아 과수원과 다다넬스 해협의 푸른 물결>

 <다다넬스 해협에서도 가장 좁은 해협 차나칼레에 도착했다>

 <차나칼레를 지나 랍세키 항구로 왔다.>

 <버스를 싣고 유럽으로 건너갈 도선>

 <30만명의 병사가 조국을 위해 산화한 핏빛 바다를 상징한 터키 국기. 바로 이곳 차나칼레, 랍세키 해협에서 탄생한 깃발이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간다>

 <유럽 쪽 항구 겔리보르> 

 <겔리보르 항구의 갈매기>

 <겔리보르 항구의 선착장>

 <식당>

 <생선회는 아니고?>

 <겔리보르 항구의 풍경. 두 여학생이 사이좋게 빵을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