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맴논의 거상-1월 18일 아침
기원전 332년 이집트를 점령하고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여기 룩소에도 왔다고 한다.
그 시절에 알렉산더의 정복군을 따라온 한 그리스 시인이 있었다. 그는 나일강가 평지에 무지막지하게 큰 석상이 세워져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호기심에 한달음에 달려가 석상을 둘러보던 중에 슬피 우는 이상한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는 문득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한 에디오피아의 왕 아가맴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래서 이 커다란 석상에 맴논의 거상이란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커다란 석상이 사실은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아멘호프 3세 왕의 상이라고 한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태양이 뜨는 나일강 동쪽에 신전을 짓고, 태양이 지는 서쪽에 묘지와 제전(祭殿)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일강 서쪽은 죽은 자의 도시라 하고 그곳에는 이집트를 다스린 역대 왕들의 무덤이 있는 ‘왕들의 계곡’과 ‘장제전(葬祭殿)’이 있다. 그러니까 이 거상도 아멘호프 3세의 장제전인데, 후대의 왕들이 외관의 돌들을 뜯어 자신의 궁궐을 짓는데 써버려서 석상만 남아있는 것이라 했다.
그러니까 후손들이 선대 조상 할아버지의 무덤을 뜯어 자신이 살집을 만든 셈이니 그리스 시인의 귀에 슬픈 울음소리가 들린 게 당연한 일 아니었겠는가?
영생불멸을 꿈꾸었으나, 부활은커녕 자신의 무덤마저도 후손의 손에 의해 뜯기고, 도둑에게 도굴되고, 이민족의 발굽에 폐허가 되어 버렸으니 인생만사 한낱 물거품 아니겠는가?
그리 생각하며 거상의 몸에 새겨진 그림을 살펴보는데 어디선가 희미하게 서글픈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도 싶었다.
아무튼 이 커다란 돌들은 나일강 상류인 아스완에서 싣고 온 통돌이라고 했다. 당시 이 커다란 돌을 가져오느라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는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짐작 할만하다. 그리고 수천 년의 세월을 풍화에 견딘 것은 이곳의 기후가 낮과 밤의 온도차가 적었던 탓이라고 했는데, 현재는 기후의 변화로 균열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보수와 수리, 보관문제가 대두되었다고 한다.
수천 년의 세월도 찰나이다. 그렇게 한낱 흔적으로 남겨진 덧없는 세월이다.
하지만 투기, 위장, 탈세, 표절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 앞에 바리바리 돈과 명예를 긁어모으는 게 우리 인생이다. 모든 게 한낱 먼지이고 물거품이라는 것을, 촌음에 꾸는 허망한 꿈이라는 것을, 아침 햇살에 스러지는 안개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 생의 허망함을 깨닫는다면!
잠시 물에 빠진 사람처럼 두 손을 휘저어 허공을 훔쳐 햇살을 쥐어본다. 빈손을 보며, 그러나 고맙게도 손바닥에 앉아 있는 따사로운 햇살을 본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허망한 마음을 달래면서 다음 목적지인 ‘왕들의 계곡’을 향했다.
<후손에게, 도둑에게, 뜯겨나가고 정복자에게 슬픈 울음 소리를 들킨 아멘호프 3세 파라오의 석상. 하지만 파라오의 석상을 만든 노예들의 피울음인지도 모른다.>
<건조한 기후에 수천년을 버텼지만, 온난화라는 기후변화로 균열이 이루어지고 있어 보수 중이다. 한반도대운하는 한국의 문화유산에 또 어떤 재앙을 안길지?>
<예나 지금이나 큰 것에 대한 갈망, 열등감은 동질성을 지녔나 보다. 작기 때문에 그러겠지만>
<아멘호프 3세 파라오, 무슨 생각을 하고 앉아있을까?>
<몸체에 새겨진 벽화>
<하염없이 주차장 가에 앉아있는 이집트 인들>
<멤논의 거상이 있는 곳에서 왕들의 계곡으로 가는 길, 관광객들이 낙타를 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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