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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천사 김대인 멀구슬나무

순천 송천사 김대인 멀구슬나무 순천과 여수, 고흥에 첨산(尖山)이 있다. 순천 별량과 여수시 화치동, 고흥 동강의 송곳처럼 뾰족한 3개의 산이 그것이다.김대인은 조선 왜란 7년전쟁의 용장이자, 맹장이다. 순천시 별량면 첨산 아래의 송천사는 김대인, 김일손, 김치모를 배향한 사우이고 뒷산에 묘가 있는데, 들머리에 두어 아름의 멀구슬나무가 수문장처럼 서 있다. 그리고 송천사가 있는 별량의 첨산이 이 삼각형의 꼭짓점이다.김대인은 이 별량 첨산 아래에서 통덕랑 김유손의 아들로 태어났다. 또 송천사에 함께 배향된 탁영공 김일손은 작은 아버지이다. 그렇게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김대인은 어린 시절 자신이 서출이란 걸 알고 지리산 칠불사로 들어가 해공대사에게 불도와 무예를 배웠다. 신분을 속이고 무과에 응시하여..

묘향산 보현사 통일 향나무

묘향산 보현사 통일 향나무 평양북도의 묘향산은 높이 1,909m로 동쪽 금강, 서쪽 구월, 남쪽 지리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명산이다. 신기신묘 아름다우며 우람하고 웅장하다. 또 태백산, 향산이란 이름도 있다.삼국유사의 태백산 기록이다. 이곳에서 환웅이 준 신령한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쪽을 먹고 곰이 여자가 되어 아들을 낳았으니 곧 단군이다. 여기 향로봉의 남쪽 기슭의 바위동굴이 그 단군굴이다. 단군대는 단군이 활쏘기 연습을 한 곳이고 천주대는 과녁이다.향산은 불교에서 공덕을 쌓아 공경심을 일으키는 계향(戒香), 향기를 맡듯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문향(聞香), 나눔의 향인 시향(施香)을 뜻한다. 이 세 향은 바람을 거슬러서도 풍기니 이 세상 으뜸 향인 묘향(妙香)이고, 그래서인지 묘향산에는 향나무와 동청..

울컥

울컥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2024년 12월 14일은 참으로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돌아보면 지난 2004년 3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5월 헌법재판소 기각으로 임기를 무사히 마친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가 있었다.또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국정농단은 국민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결국, 같은 해 12월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파면, 뒤이어 특별검사 수사를 거쳐 뇌물수수, 직권남용 등으로 징역 24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그 뒤 일부 형량이 감형되고, 2021년 12월 31일 문재인 대통령의 사면을 받았으나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파면이었다.그리고 2024년 12월 14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12월 ..

칼럼 2024.12.15

정읍 이평 말목장터 전봉준 감나무

정읍 이평 말목장터 전봉준 감나무 전라북도의 젖줄 동진강과 정읍천이 만나 서해로 들어가며 펼쳐놓은 배들평야(梨坪)는 말 그대로 지평선에 해가 뜨고 지는 곡창지대이다.1892년 4월, 그 배들이 있는 고부에 조병갑이 군수로 취임했다. 평양 기녀의 서자이나, 신정왕후 조대비 권력을 등에 업은 조병갑은 희대의 탐관오리였다. 부임하자마자 부모 불효죄, 형제간 불목죄, 잡귀를 즐긴죄, 노름죄 등의 세금으로 삽시간에 2만 냥의 돈을 착복하였다.그뿐인가?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정읍천의 물을 막은 만석보 아래 동진강에 또 하나의 만석보를 만들었다. 그리고 처음 약속과 달리 물세를 거두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진황지(陳荒地)에도 토지세를 부과했다. 더하여 1841년부터 1845년까지 태인 현감을 지낸 자기 아버지 조..

정읍 백정기 의사 기념관 백정기 무궁화

정읍 백정기 의사 기념관 백정기 무궁화 백정기는 1896년 1월 19일, 부안읍 운기마을에서 농부인 백남일과 어머니 윤문옥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2살 때인 1907년 이웃고을 정읍시 영원면 갈선마을로 이사하였다.1914년 19살 때 상경한 뒤, 일본경찰 폭행 및 유괴죄로 일본 경무총감부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1919년 3·1 운동에 기미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가지고 고향으로 와 독립만세시위를 이끌었다. 또 동지 4명과 함께 경성과 인천의 일본 군사시설 파괴공작을 계획하다, 일경에게 쫓기자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로 망명했다.이듬해인 1920년 겨울 다시 경성으로 와 군자금 조달 등의 활약을 하던 중, 1921년 봄 경성부 본정경찰서에 구금되었으나, 신분을 광부로 위장해 빠져나왔다.1922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