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통도사 자장매
봄은 계절이 여름과 갈겨울을 지나서 다시 보니 봄이다. 하지만 어찌 세상의 모든 봄을 다 볼 수 있으랴? 그럼에도 한겨울에 봄을 보는 동백꽃, 역시 두 해에 걸쳐 이름 봄을 맞는 납월매를 본다면 이 세상 봄맞이꽃을 모두 본 ‘봄’이자, 계절 ‘봄’이리라.
납월(臘月)은 섣달이다. 양산 통도사 납월매의 같은 이름은 자장매이다. 자장(慈臧 590~658)은 속성이 김 씨로 신라의 진골 귀족이었다. 선덕여왕 때인 636년 당나라에 가서 오대산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고 대장경과 가사, 부처의 진신사리를 얻어 643년 귀국했다. 이 자장이 불교의 계율을 정비하여 자장율사이며, 창건한 통도사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셔서 법보사찰이다. 또 여기 통도사는 대웅전의 석가불 대신, 금강계단을 지어 사리를 모시고 있다.
자장이 귀국하여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실 절터를 찾기 위해 나무오리를 만들어 날려 보냈다. 한겨울인데도 오리가 칡꽃 한 송이를 물어 왔고, 자장이 그곳을 찾으니, 석가모니가 왕자였던 인도 ‘마가다국’의 ‘그라드라산’과 같았다. 그라드라는 독수리이니, 산세가 마치 날개를 활짝 펴고 나는 독수리이다. 또 석가모니가 이 그라드라산에서 법화경을 처음 가르쳤다.
양산 칡꽃산에 지은 통도사의 통도는 ‘모든 법이 통한다’이며, 산 이름 영축은 신령스러운 독수리이니 곧 그라나다이다. 그렇게 여기 통도사에는 그 역사만큼이나 여러 이야기가 있다.
먼저 아홉 마리 용이다. 그러니까 이 통도사 절터는 큰 못이 있던 곳으로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 자장이 이들 용을 다스린 뒤 한 마리 용만 남겨 사찰을 수호하게 하였다. 여기 금강계단 옆의 자그마한 못이 그 옛 구룡신지(九龍神池)의 상징이다.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지으며 자장암에서 기도할 때이다. 샘물에 사는 개구리가 흙탕물을 일으켰다. 자장은 대웅전 뒤 바위벽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어 개구리를 살게 하고 ‘금와’라고 했다. 이 입이 금색인 한 쌍의 금개구리는 몸은 청색으로, 벌과 나비로도 변신하며 이들을 보면 행운이 따른다고 한다.
이런 통도사의 신비스러움과 함께하는 꽃과 나무도 많다. 여름에 피는 서운암 들머리의 왜개연꽃, 사명암의 보리수나무는 6월 중순에 꽃이 피고 7월 말경이면 염주가 되는 열매가 익기 시작한다.
거북바위인 큰 암반 위에 지은 지장암에서 바라보는 아름드리 소나무는 천년의 삶과 숨, 쉼터이구나 하는데 특히 마애불 암벽의 소나무는 한 폭의 그림이다. 7, 8월의 여기 담벼락을 타고 피어있는 능소화의 아름다움은 한마디로 고혹 그 자체이다.
극락암의 여름 수련도 마음을 앗아가는 건 마찬가지이다. 여름이면 모감주나무가 황금 꽃비를 준비하고 있고, 늙은 감나무의 붉은 감은 한겨울에 하얀 눈송이를 옷으로 입을 것이다. 또 이 극락암의 흩날리는 벚꽃은 이곳을 신선이 사는 곳으로 만든다.
하지만 통도사의 꽃은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맞는 홍매인 자장매이다. 혹독한 임진왜란 뒤 우운대사가 통도사의 대웅전과 금강계단 등을 중창하며 인조 23년(1643)에 역대 조사의 진영을 모실 영각을 건립했다. 이때 홀연히 싹이 나와서 자라더니 해마다 섣달인 납월에 연분홍 꽃을 피웠다. 추위가 매서울수록 향이 짙으니, ‘이는 수행자의 구도이며 자장의 가르침이다’라며 영각 앞 납월매의 이름은 자장매가 되었다.
4백여 년의 세월이 쌓인 이 자장매 앞에서 자장의 가르침에는 턱없이 미흡하겠지만 그저 덧없는 욕심과 아집은 버려야지 하는 깨우침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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