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산천재 조식 남명매
조식(曺植)의 본관은 창녕, 호는 남명이다. 연산군 7년(1501) 경남 합천 삼가현 외조부 이국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언형, 어머니는 인천 이씨이다. 조식이 태어나기 전 이국의 집터를 본 지관이 ‘어느 해에 성현이 태어날 명당’이라 했고 그 어느 해에 조식이 태어났다.
조식은 어린 시절부터 어떤 의문이 다 풀릴 때까지 캐물었다. 정신력과 담력을 기르기 위해 두 손에 물그릇을 들고 밤을 새웠다. 그렇게 유교 경서와 제자백가, 불교, 노장사상, 천문, 지리, 의학, 병법, 궁마 등 학문과 무예를 익히고 닦았다. 또 칼 ‘경의검(敬義劍)’과 한 쌍의 방울 ‘성성자(惺惺子)’를 차고 다녔다. 이 칼과 방울은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敬)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義)다’를 실천한 조식의 상징이자, 선비정신의 표상이다.
조식은 1555년 단성현감이 되자, 곧 사직상소를 썼다. ‘왕(명종)은 선왕의 외로운 상속자, 문정왕후는 깊숙한 궁궐의 과부’라는 내용의 이 ‘단성소’는 ‘내 말이 틀리면 날 죽여라’였다.
조식은 섬나라 왜의 노략질에 대처하고 대비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걸 촉구하는 상소에서 역관과 조정의 내시들이 왜의 뇌물을 받고 결탁하는 행위를 비판했다. 제자들에게도 왜구 방비 대책을 세우자고 가르쳤다. 임진왜란에 신속히 의병을 일으킨 정인홍, 곽재우, 김면 등 마흔여덟의 경상우도 ‘사십팔가’ 의병장 역사는 그 때문이다. 참으로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에서 미래를 보는 혜안으로 세상의 이치를 살피고 예측한 탁월한 능력의 선견자였다.
조식은 환갑 해에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덕천강가 덕산 사륜동에 산천재를 짓고 10여 년 제자를 가르쳤다. 명종 21년(1566) ‘상서원판관’에 잠시 올랐으나, 7일 만에 산천재로 돌아왔다. 여기 사륜동은 고려 무신정권 때 학자 한유한이 ‘대비원녹사’ 임명장인 ‘사륜’을 왕이 보내오자, 몰래 창문을 넘어 자취를 감춘 곳이다. 조식의 지리산 기행기 ‘유두류록’에 있는 그 한유한이 살던 곳은 사륜동이 되었고, 훗날 산천재가 지어진 연유이다. 그러니 사륜동 산천재에서 세상의 명성보다 명예를 지키는 선비가 어찌 줄줄이 나오지 않았겠는가?
또 여기 덕천강의 민물고기 ‘꺽지’ 아가미에는 이빨 자국 같은 하얀 흔적이 있다. 제자들과 천렵을 하고 마악 고기를 입에 넣었던 조식이 왕실에 초상이 난 것을 알고, 다시 뱉어냈다. 덕천강에 사는 꺽지의 아가미에 이빨 자국이 있게 된 연유이다.
선조 5년(1572) 음력 2월 8일이다. 조식은 산천재로 제자를 불러 자신을 초야에 묻혀 산 처사라 부를 것을 당부하고 눈을 감았다. 평생을 몸에 지닌 경의검은 성격이 올곧은 정인홍에게, 성성자는 온화한 큰 외손녀 사위 김우옹에게 주었다. 안타깝게도 성성자는 일찍 사라졌고, 경의검과 장검 1자루마저 6·25에 잃었다.
알 수 없고 셀 수도 없는 조상과 부모님이 몸과 마음, 더하여 이름까지 주셨다. 그러기에 몸과 마음, 이름은 서로 다르지 않고 함께함이다. 이 셋은 날아가는 새들의 울음소리와도 같다. 철새처럼 때맞춰 듣고, 텃새처럼 시도 때도 없이 듣는다. 꾀꼬리 노래, 갈까마귀 소리, 떼 지어 우는 악머구리 울음, 깊은 못 학의 연주일 수도 있다. 그렇게 몸과 마음, 이름 등, 이 셋은 형체나 소리가 있는 듯하지만, 지나가면 그저 아무것도 없음이다.
여기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산천재에 조식이 심은 매화가 있다. 남명매라 이름을 얻어 5백여 년 넘게 해마다 조식의 가르침인 ‘경의’ 두 글자의 꽃을 피우니 그 향기까지 세상 가득이다. 실로 매화 한 그루에서 몸과 맘, 이름의 함께함과 아무것도 없음을 깨우친다. 그 산천재 남명매 앞에서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참 스승의 높고 너른 혜안과 은덕을 우러른다.
'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흥 해동사 안중근 소나무 (0) | 2024.05.31 |
---|---|
구례 산동 계척 할머니 산수유 (0) | 2024.05.24 |
양산 통도사 자장매 (0) | 2024.05.11 |
장성 백양사 고불매 (0) | 2024.04.26 |
거제 옥포 조선소 용접공 소나무 (0) | 2024.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