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

만연사 전나무

운당 2022. 9. 29. 08:37

만연사 전나무

해는 눈이 부셔서 바라보기 어렵고, 짙푸른 바다는 깊어서 다 들여다볼 수 없다. 한 그루의 나무를 다 볼 수 없으니 바로 화순읍 동구리 179번지에 사는 진각국사 전나무이다.

이 키다리 나무는 백두산에 가면 끝없이 펼쳐지는 숲에서 만날 수 있다, 17131, 5품인 홍문관의 부교리 홍치중이 백두산정계비를 답사하고 숙종 임금에게 보고했다.

무산에서 어활강(두만강의 지류)을 건너 산 밑에 이르니 인가 하나 없는 넓은 땅이 나타났습니다. 구불구불한 험한 길을 따라 산꼭대기에 올라 보니 산이 아니고 바로 들판이었습니다. 백두산과 어활강의 중간에는 삼나무(杉樹)가 하늘을 가리어 해를 분간할 수 없는 숲이 거의 3백리에 달했습니다. 거기서 5리를 더 가서야 비로소 비석을 세운 곳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이 보고에 나오는 삼나무는 일본 삼나무가 아니라 전나무의 옛 이름이다.

이렇듯 전나무는 백두산 부근의 고산지대를 비롯하여 동쪽으로는 시베리아를 거쳐 동유럽, 서쪽으로는 알래스카와 캐나다까지 추운 곳에서 더 잘 자라는 한대지방을 대표하는 나무이다.

또 전나무는 백두산의 가문비나무, 잎갈나무와 어깨를 겨루면서, 환경변화에 적응력이 높아 한반도 남쪽 끝까지 내려와 그 큰 키를 자랑한다.

전나무는 젓나무라고도 한다. 잣나무에 잣이 열리듯 전나무의 어린 열매에서 흰 젓이 나오므로 젓나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훈몽자회’, ‘왜어유해’, ‘방언유석등 옛 문헌에도 젓나무라 쓰여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전봇대처럼 보여 전봇대나무라고 부르기도 했으니, 이름이야 어떻든 오늘은 만연사 전나무를 보러 간다.

이곳 만연사는 1208(희종 4)에 선사 만연(萬淵)이 세운 집이다. 만연이 광주 무등산 원효사에서 수도를 마치고 조계산 송광사로 돌아가다가 지금의 만연사 나한전이 있는 골짜기에서 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고 한다.

십육나한이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역사의 꿈을 꾸고 주위를 둘러보니 눈이 내려 온 누리를 덮었는데, 그가 누웠던 곳만은 눈이 녹아 김이 났다고 한다. 만연은 조계산으로 가는 걸 멈추고, 김이 나는 자리에 토굴을 짓고 수도하면서 만연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만연사 전나무가 임진·정유의 왜란을 어떻게 견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절집은 6·25에 전소되는 아픔을 치렀다고 한다. 또 여기 만연사의 동림암은 정약용이 젊은 시절에 학문을 익히던 곳이다. 부친이 화순 현감으로 부임하던 해에 함께 왔었다고 한다. 그리고 명창 임방울도 이곳에서 피나는 연습으로 국창의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그렇게 한눈에 다 볼 수 없는 만연사 일주문 앞의 전나무는 당시 조계산 수선사 주지로 있던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이 창건 기념으로 심었다고 한다. 손가락 계산으로도 나이가 8백 살에 이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나무 꼭대기 부분이 잘려있고, 펼친 가지들도 생육이 수월하지 못해 보인다. 걱정스레 올려다보는 귓가에 새소리, 풀벌레 소리보다 더 큰 딱딱딱 소리가 들린다. 오색딱따구리다. 덩치가 큰 나무와 작은 딱따구리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 관계이리라. 전나무는 몸을 내주고 딱따구리는 해충을 잡아 앞으로도 많은 세월을 함께 쌓아갔으면 한다.

전나무는 한대성 나무지만, 온대에도 적응하고, 다른 키 큰 나무처럼 뿌리가 약하지도 않으니, 우리 민족의 기상에 맞는 강인하고 늠름한 나무이다. 한 번쯤 만연사에 들려 전나무를 바라보며 세월의 무게와 삶의 깊이를 훌훌 털어도 좋고, 더 단단히 차곡차곡 채워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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