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물질문명의 발달은 인공지능 기능을 갖춘 주택과 자동차, 각종 생활용품, 그리고 인간의 꿈인 우주여행까지 가능케 하였습니다. 하지만 자연과 환경 훼손으로 인한 코로나 19, 돼지 열병,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감염병은 그 대가입니다.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생명체는 자연에서 와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바로 우리의 삶, 숨, 쉼터는 그 자연입니다. 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는 바로 그 자연의 이야기입니다. 매주 한 번씩 올릴 나무 이야기에 독자 여러분의 호응과 격려 바랍니다.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177-9번지에 있는 느티나무 이름은 진제마을 당산나무이다. 수령 2백 살쯤으로 지난 세월 진제와 원제, 두 마을을 보살피고 지켜온 나무이다. 지금은 아파트 숲, 아스콘길에 쌓여 삶, 숨, 쉼터가 불편하지만, 정월 대보름이면 소박하나마 당산제를 받으니 외롭지 않은 나무이다.
진제나 원제는 마을 앞 연꽃방죽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지금부터 3백여 년 전 광산 노씨가 터를 잡고, 뒤이어 밀양 박씨, 청주 한씨가 들어와 방죽에 제를 쌓고 농사를 지었다. 그렇게 다복다복 사람이 들어와 사니 큰 마을이 되어 면소재지가 되었다. 그러다 마을 앞에 있던 광산군 효지면사무소가 6·25 때 인민군의 방화로 소실되었고, 그 뒤 금당산 아래로 옮겨갔다.
1862년에 한필오, 한필룡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를 받아 1864년에 세운 청주 한씨 쌍효비와 제실인 효우재는 도시화에 밀려 화순군 도곡면 천태로 옮겨갔다. 장성 비아와 나주 산포에서 흙을 가져와 가마굴 두 개에서 장독인 옹기를 구워 옹기촌, 점촌이라고도 했던 원제 마을은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구나’가 되었다.
원제마을의 옹기를 시장에 내다 팔려면 제석산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그 고개를 조시미 고개, 부처울길이라고 했다. 조시미 고개는 산도적을 조심하라는 말이고, 부처울길은 고개 넘어 부처님을 우러러 모신 절이 있어서이다.
이제 그 이름들 대신 아파트가 들어선 원제마을 앞은 남구다목적체육관이 있고, 연꽃방죽이 있던 곳에는 ‘김병내 구청장님 감사합니다’라는 현수막이 여럿 걸려있고, 남구복합운동장 공사가 한창이다.
또 진제마을 앞에는 국제테니스경기장이 있어 밤에도 불을 훤히 밝히고 테니스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로만 보면 진제마을 당산나무는 나무로서는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지만, 참으로 영험한 나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살이에 어찌 희로애락이 함께 하지 않을까?
1980년 5월 24일 12시 30분경이다. 광주민주항쟁을 무력진압하던 계엄군의 총에 진월제 연꽃방죽에서 물놀이 하던 전남중 1학년 방광범이 죽었다. 잠시 뒤 13시에는 형이 사준 고무신을 자랑하려고 고샅으로 나갔던 효덕초등학교 4학년 전재수가 역시 총에 맞아 죽었다.
이때는 누구라 할 것 없이 겪은 아픔이지만, 진제마을 당산나무는 6·25 때 활활 불꽃으로 사라지던 면사무소를 볼 때처럼 말대신 눈물을 펑펑 흘렸을 것이다.
예전에 이 진제마을 당산나무 앞에는 당산이란 돌비와 함께 경로탑이 있었다.
‘무등산 정기 받아/ 우리 조상 터를 닦고/ 오륜지도 본을 끼쳐/ 후손에게 전하더라./ 갸륵하시다 높은 그 얼/ 이어받아 3백년/ 아! 진제여/ 우리의 긍지여!’
하지만 경로탑의 글귀도 다 지나간 일이 되었다. 이따금 가까이 사는 노인들이 쉬어가지만, 이제 당산나무는 자기 앞가림을 해야 한다. 오가는 자동차의 매연, 빙 둘러 덮어버린 아스콘길 때문에 삶, 숨, 쉼이 쉽지가 않다.
한 아름 아카시나무는 꿀을 한 말 내주고, 플라타너스 한 그루는 15평형 에어컨 5대가 5시간 일하는 것이고, 느티나무 한 그루의 산소는 어른 7명이 1년간 숨 쉬는 양이라고 한다.
나무가 살아야 사람도 사는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네 삶, 숨, 쉼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지, 땅에서 쑥 솟는지, 나무를 보고 깨달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