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여름 사랑의 서막 2
“자네 기록을 보니 농촌에 있던 똥장군, 그 합수를 담던 똥오줌통이 농촌에서 쓸모가 없어지니 군대를 갔고, 그 똥오줌통이 똥장군, 그러니까 똥별이 됐다고 했더군. 또 반신반인은 해구신의 절반과 지렁이의 절반이라는 거고 그 신 반, 인 반인 반신반인 ‘다까기마사오’에게 닭을 까지 말라했는데, 닭을 까고 쥐까지 깠다고? 힐난했더군. 하하하! 거참! 아무튼 말결은 좀 험하지만, 참으로 통쾌하고 의미 깊은 적절하고 멋진 비유였네. 하하하!”
“송구스럽고 부끄럽습니다. 이명박을 이쥐놈, 박근혜를 닭그년이라 지칭한 것도 그 자들이 혈세를 꿀꺽꿀꺽 지놈 일당끼리 나눠 먹으면서도 입만 열면 일자리 창출 수십만 명, 경제유발효과 수백조라고 사기협잡질 치는 바람에 한 욕입니다. 혹여 귀가 어지러웠어도 정상을 굽어 살피셨으면 합니다.”
“좋네. 좋아. 이 세상 첫 언어들이 다 욕이었네. 욕도 쓸데 쓰면 품격 높은 문화라네. 자, 그럼 시작하세. 지금부터 내 말을 귀담아 듣게. 그리고 중요한 일은 기록하게나.”
나는 벌떡 일어나 이서구에게 큰 절을 또 올렸다. 본격적으로 여름사랑 서막이 시작된 것이다.
때는 1754년 갑술년이다. 조선 영조가 보위에 오른 지 30년 되던 해다.
“나는 9월 14일 술시(戌時, 오후7시부터 오후9시)에 한양 서부 반석방에 있는 외가에서 태어났네.”
이서구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신의 얘기부터 꺼냈다.
“아버님이신 이자, 원자 어르신은 연이어 딸 셋을 두셨는데, 내가 태어나자 매우 좋아하셨네. 할아버님이신 이자, 언자, 소자 어르신이 나의 아명을 갑경(甲慶)이라 짓고 이에 대한 글까지 써서 기쁨을 기록으로 남기셨다네.”
그렇게 한 동안 이서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얘길 했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나합의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글을 계속 읽어 가면 알겠지만, 일화로 전해오는 것과는 많이 다른 내용이었다.
나합은 본래 성이 양씨고 이름은 도내기였다. 나합은 훗날 김좌근의 첩이 되었을 때 불린 별명 같은 이름이다. 당시 김좌근이 영의정이었고, 영의정은 합하라 불렸다.
전제군주 시절, 황제는 폐하라고 불렀다. 황제의 자녀나 작은 나라의 왕은 전하라고 불렀다. 전각에서 사는 분이라는 뜻도 된다.
또 왕의 자녀들은 저하라고 했다.
합하는 영의정 김좌근 같은 정일품 벼슬아치를 일컫는 호칭이었다. 다음으로 각하는 장관급 벼슬아치들을 부를 때 썼다.
그러니 한 때 대통령을 각하라고 불렀던 것은 격에 맞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다. 어쩌면 깜도 안 되는 자들이 대통령을 했으니, 각하건, 가카건, 주막강아지나 골목강아지건 호칭이 무슨 상관이랴?
아무튼 그렇게 김좌근을 합하라 부르면서 아첨꾼들이 양도내기에게도 나주 출신 합하라하여 나합이라 불렀던 것이다. 물론 합하의 합(閤)자를 대합조개 합(蛤)자를 써서 나주 조개라고 폄하하여 부른 호칭이었다고도 한다. 인구에 회자하는 상스러운 상징말로 조개를 흔히 여자의 거시기와 비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합은 이서구가 전라도 관찰사 시절에 태어났으니, 1821년에 태어났다. 이서구가 67세 때다.
김좌근은 1797년에 태어났으니, 그의 나이 25세에 나합이 태어난 것이다. 김좌근과 나합, 그 둘 사이의 나이 차가 25살이라는 말이다. 당시로는 부녀지간의 나이차이라 할 수 있다.
자, 그럼 다시 이서구가 말하는 양도내기, 나합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보게나. 그런데 자네가 알고 있는 양도내기의 출생에 얽힌 비화는 어떤 내용인가?”
이서구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와 양도내기가 나합이라 불린 연유를 먼저 간략하게 얘길 하더니 내게 물었다.
나는 책에서 읽고 풍문으로 들은 이서구와 나합의 출생에 얽힌 얘기를 정리하여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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