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 비결은 하늘이 점지한 사람만이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은 사람이 석불배꼽에 손을 대면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도 그 비결을 얻을 엄두를 못 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소문이 있었다.
이미 전라감사 이서구가 선운사 석불배꼽을 열어 그 비결을 보았다는 것이다.
“벼락살은 걱정할 것 없소. 전라 감사 이서구가 마애석불 배꼽 감실을 열어 비결을 볼 때 벼락이 쳤다고 하오. 그러니 이제 벼락살은 없소. 그러니 때는 지금이오.”
백성들의 민심이 흉흉하던 1892년, 그러니까 그 임진년을 72년 거슬러 올라 1820년에 마애석불의 배꼽을 전라 감사 이서구가 열어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 감실 안에 책이 한 권 있었다고 했다. 이서구가 첫 장을 펼치니 ‘이서구가 열어 본다.’라고 쓰여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또 웬걸, 뒷장을 넘기려는 데 갑자기 벼락이 쳤다고 한다. 깜짝 놀란 이서구는 다음 장은 읽지도 못하고 그 비결책자를 다시 감실에 넣고 봉해버렸다 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동학교도이자, 도인으로 숭앙 받는 오하영이었다.
마애석불 비결을 얻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전라북도 무장현 동학접주 손화중이 그 말에 흘깃했다.
“그렇담 됐소. 쇠뿔은 단김에 빼라했소. 당장 선운사로 갑시다. 석불 배꼽을 열어 비결을 얻고, 그걸 통해 민중을 끌어 모읍시다. 백성들의 민심으로 성난 파도를 일으켜 이 더러운 세상을 뒤엎고 새 세상을 엽시다. 동학의 인내천은 백성을 깨우치는 가르침이고, 마애석불의 비결은 제폭구민을 할 우리의 무기입니다. 동학으로 혁명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새로운 세상, 미륵세상을 열 그 비결이 필요하오.”
그렇게 비결은 무장현 동학접주 손화중의 손에 들어갔다.
“전라북도 무장현 동학 접주 손화중의 농민군이 대낮에 횃불을 들고 선운사로 갔다네. 선운사와 도솔암 중들을 꼼짝 못하게 묶어 놓고, 대나무를 엮어 비계를 세웠다네. 그리고 손화중 접주가 마애석불 배꼽에 칼을 대고 도끼로 내리쳤다네. 마침내 그 속에 있는 비결이 동학 손에 들어온 거지. 이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건 시간문제일세.”
그렇게 그 새 세상을 열 비결을 꺼냈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호남 일대에 퍼졌다. 그 소문을 듣고 고창, 고부, 무장, 부안, 영광, 장성, 흥덕, 정읍 등 전북 우도 일대의 농민들이 모여드니 수만 명이었다.
그리하여 동학의 횃불은 온 산하에 들불로 번졌고. 1894년 음력 정월 고부에서 마침내 봉기하기에 이르렀다. 허나 청군과 왜군이 들어오고 동학의 불길은 낙화처럼 핏빛만 남았다. 지도자 손화중은 잡혀 역도로 처형 되었다. 마애석불 비결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서구가 처음 전라 감사를 한 것은 그의 나이 40세인 1793년이다. 그리고 그의 나이 67세인 1820년에 다시 전라 감사가 되어 선운사 마애석불의 감실을 열어본 것이다.
그렇게 이서구는 전라 감사를 2번이나 역임하고 72세에 세상을 떴으니, 당시로는 장수를 한 것이다. 또한 수많은 전라감사가 있었지만, 이서구처럼 일화와 예언을 남기며 선정을 베풀고 백성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감사가 또 있을까?
이왕 얘기가 나온 김에 생각나는 얘길 두 가지만 더 하겠다.
이 얘기는 이서구의 방계후손(傍系後孫) 이윤응(李允應)이 구전(口傳)한 것이다.
1822년이다. 나이 69세의 이서구가 삼년여의 두 번째 전라감사를 지내고 한양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세도 김문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이서구를 암살하려고 으슥한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기다려도 개미 새끼 한 마리 볼 수가 없었다.
“분명 이 길로 갈 텐데….”
“이 길 말고는 갈 길이 없지요. 하늘로 날아가거나, 땅 속을 꿰어 가면 모를까.”
하지만 그날따라 아무 인적(人跡)도 없는 길에서 암살자들은 헛물만 켜고 말았다.
“이서구가 벌써 한양에 도착했다합니다. 분명 이 길을 지나갔다는 데,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해질 무렵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갔던 자가 헐레벌떡 돌아와 하는 말이었다.
“아, 그거였다.”
그러니까 한 낮 무렵 벌떼 한 무리가 하나 지나갔었다. 바로 이서구가 자신을 암살하려는 흉계를 미리 알고 벌떼로 변해서 지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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