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삼경, 한밤중이 되었다. 갑자기 밖이 어수선해지는가 싶더니, 천둥 번개가 치고 빗소리가 들렸다. 동헌 주변 촛불은 모두 꺼지고 말았다.
바람소리는 차츰 요란해지고 문풍지가 울더니, 마침내 동헌의 큰 문짝까지 삐거덕 거렸다.
그때였다.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은 장군이 장창을 들고 나타났다.
“누구신지요?”
“난 여림청 장군이네.”
“이리 앉으시지요.”
자리에서 일어난 이서구가 여장군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대가 이 고을 군수인가?”
“예! 저는 이서구라 하옵니다.”
이서구는 큰절을 하였다.
“내가 무섭지 않은가? 지난 번 군수들은 날 보기만 해도 죽어버렸는데 말이네.”
“무섭긴 합니다만,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내가 오늘에야 담력도 크고 세상사를 능히 헤아릴 줄 아는 명관을 만났네 그려. 그동안 군수들은 나만 보면 놀라서 죽어버려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 이제야 내 소원을 말하게 되었네.”
여장군은 기뻐하며 이서구에게 한 맺힌 사연을 이야기 했다.
“내 소원은 다른 게 아니네. 이곳에서 10리 거리에 휴천골 목동 마을이 있네. 난 그곳 늙은 쥐가 풍요로운 곡식을 먹으러 밭으로 내려오는 형국의 노서하전의 밭에 묻혔네. 그런데 지금 무덤은 흔적도 없고 백골마저 진토 되었네. 그대가 내 무덤을 다시 손보고 제사를 지내 나를 편히 쉬게 해주겠나?”
“예, 그리하겠습니다.”
“고맙네. 그러면 그곳을 찾기 쉽게 내가 삽살개 한 마리를 보내 주겠네.”
“여장군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이서구가 다시 절하며 말하자, 여장군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군청 아전들이 거적 데기를 가지고 동헌으로 들어왔다. 틀림없이 신임 원님이 죽었으리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여봐라, 오늘부터 이 고을은 평안할 것이다. 그러니 육방 관속들은 정상적인 공무를 하도록 하라. 그리고 이방은 잔치를 할 술과 떡을 준비하고 이 고을 노인들을 모두 모셔라.”
죽은 줄 알고 거적 데기를 가져왔던 고을 아전들은 기절초풍을 할 뻔했다. 이서구가 멀쩡한 모습으로 삽살개 한 마리를 데리고 방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서구는 고을 노인들을 잘 대접하면서 여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노인들을 이끌고 휴천골 목동 마을의 노서하전의 밭으로 갔다.
노서하전의 밭 자리는 노인들이 찾았다.
“군수 어르신! 바로 여기가 노서하전, 늙은 쥐가 풍요로운 곡식을 먹을 수 있는 그 밭이오.”
“어찌 그걸 알 수 있나요?”
“바로 이 밭에서 바라보는 앞산이 고양이 산인 괭이봉이오. 그런데 저 고양이가 이 노서하전의 쥐를 덮치려 해도 괭이봉과 노서하전 사이에 냇물이 가로막고 있으니 덮칠 수가 없소이다.”
과연 고양이처럼 생긴 괭이봉과 노서하전 밭 사이에는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 이 노서하전 밭 뒤쪽 산은 까치봉이오. 까치는 길조라오. 까치가 고양이를 경계하여 또 짖으니, 바로 이곳은 쥐, 고양이, 까치가 서로 상생상극(相生相剋)하는 명당자리임에 틀림없소이다.”
그렇게 노서하전 밭은 노인들이 찾고, 여장군의 무덤 자리는 삽살개가 알려주었다.
“컹, 컹!”
삽살개가 밭 한가운데로 가더니 두어 번 컹컹 짖었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 쓰러져 죽어버렸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다.”
사람들은 너무도 신기한 일에 모두들 엎드려 하늘을 향해 절을 올렸다.
그렇게 여장군의 옛 무덤을 찾은 이서구는 무덤의 봉분을 다시하고 상석과 비석을 세웠다. 여진족을 호령하고 토벌했던 여림청 장군의 위엄을 갖추어 드렸다. 또한 위토답까지 마련하여 해마다 제사가 빠지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한쪽에 돌무덤을 만들었다. 여림청 장군의 심부름으로 저승에서 잠시 이승에 나왔던 삽살개의 무덤이었다.
이서구에 대한 일화는 이 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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