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그러니까 저 이상한 노인네와 험상궂은 12지신 잡것들이 첫째, 태극기를 달지 않고 둘째, 닭그년과 닭구녕 그 두 년 욕을 했다고 날 이렇게 묶어놓고 겁박을 주는 걸까?’
그리 생각을 하는데, 이번엔 십이지신장 중 첫 번째인 쥐머리 신장이 앞으로 나서며 째진 실눈을 부라린다.
“잘못을 저지른 것도 나쁘지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는 것은 더 나쁘다. 네 잘못을 네가 모르다니 괘씸하구나.”
나는 쥐머리를 보니 갑자기 또 화가 치밀었다.
“어라. 이 놈 봐라. 보자 하니 이명박이 쥐새끼 상이네. 야, 이 명박이 쥐새끼 닮은 놈아! 한마디로 말해 ‘너나 잘해라’다. 명박 그놈 사기와 분탕질에 나라가 멍든 것은 그렇다 치자. 그놈 사기꾼 시절에 구렁이 알 같은 내 돈, 내 홧병 술값 기백만원이 마포바지 방귀 새듯 나갔다. 콱! 그놈 껍질을 벗겨 술안주로 질근질근 씹어버리고 싶다. 허균 선생이 쓰신 장독을 덮을 정도의 하찮은 책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중 ‘도문대작(屠門大嚼)’은 그러니까 ‘푸줏간의 문이나 바라보고 질겅질겅 씹으면서 달랜다.’는 말인데, 난 쥐놈 육포에 쾅쾅 조신 달구 다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맘을 식히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니 쥐머리신장! 니놈 꼴도 보기 싫다. 깐죽대지 말고 썩 꺼지지 못할까?”
밧줄에 묶인 몸이 불편했지만 내가 벌떡 일어나 소리치며 두 눈에 핏발을 세우니, 좌우에 도열해있던 십이지신장이 깜짝 놀라 한 걸음씩 뒷걸음을 친다.
“어허! 기세가 등등하구나. 됐다. 됐어. 하하하하!”
그 순간 말없이 서있던 노인이 갑자기 너털웃음을 웃더니, 말을 이었다.
“이제 그만 밧줄을 풀어주고 이쪽으로 모셔라.”
그러자 점잖게 생긴 뱀 머리 신장이 흔들흔들 다가와 내 몸을 묶은 밧줄을 풀어준다.
“이보시오. 어르신! 더운 날, 아니 더러운 날이라 했소? 그래 더운 날이건, 더러운 날이건 낮잠 자는 게 무슨 죄요? 더욱이 기분 더러울 땐 낮잠이라도 한 숨 자고 나면 맘이 풀리는 거 아니요?”
나는 밧줄에 묶여 벌겋게 부은 살결을 문지르며 흰 머리 흰 수염의 노인께 물었다.
“어허허! 미안케 됐네. 여기 법도가 그렇다네. 이곳에 올 땐 이승의 신분이나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든 무조건 밧줄로 묶어 데려온다네.”
“이곳의 법도라니요? 그럼 이곳은?”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정신이 번쩍 들어 좌우를 살펴보았다.
아! 그러니까 그곳은 사람이 사는 지상세계인 이승이 아니었다.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하늘 세계인 천상이었다.
멋진 궁궐 건물이 청경명수에 들어차 있는데, 활짝 열린 대문 밖으로 펼쳐진 광경은 끝없는 별들의 바다다. 고갤 들어 살피니, 기인 한줄기 강물이 아득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럼 저 별들의 바다에 한 줄기 강물처럼 흐르는 건 은하수요?”
“그렇네. 여긴 천상의 도솔천이라네. 미륵님이 사시는 궁궐이지. 나는 이 도솔천에서 미륵님의 말씀을 받아 처리하는 천신이라네. 혹시 도솔천에 대해 들어봤나?”
“도솔천이요? 들어서 조금은 알고 있지요.”
하늘나라에서 가장 높이 우뚝 솟은 산은 수미산(須彌山, Sumeru mountain)이다. 도솔천은 그 수미산에서 12만 유순(由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유순은 인도의 거리 계산법으로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11~15km의 거리를 말한다. 그리 계산해보면 12만 유순(由旬)은 132만~180만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또 도솔천은 내원과 외원으로 나뉜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이라고도 하며, 석가모니가 남섬부주(南贍部洲)인 인간세계에 내려오기 전에 머물렀던 곳이고, 현재는 미륵보살이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리며 머무르고 있다. 외원궁(外院宮)인 외원은 여러 천인(天人)들이 모여 행복과 쾌락을 누리는 곳이다.
덕업을 쌓고 불심이 깊은 사람만이 죽어서 도솔천에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 이승의 훌륭한 분들이 죽은 뒤 모여 사는 곳이 바로 그 도솔천 궁궐이다.
“이곳 도솔천이 바로 그 도솔천이요?”
내가 위와 같이 도솔천에 대해 대답하자,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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