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서구 2
이서구가 남원 고을을 순시할 때다.
“감사 어르신! 남원 고을에 호환이 잦아 백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방안을 마련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리산의 호랑이가 남원 고을에 자주 내려와 숱한 인명피해가 있었다. 이에 남원부사가 감영에 장계를 올려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러잖아도 남원의 호환 소식을 듣고 있던 이서구가 서둘러 남원을 찾았다.
“감사님은 서경(書經)에 주해를 단 책자, 서전(書傳)을 구천독(九千讀)하신 분이래. 그래서 이름을 ‘서구(書九)’로 지었다 하데.”
“그뿐인가. 고려 말 서화담 선생, 조선 초 이토정 선생의 뒤를 잇는 분이시지. 살아있는 신선이시라네.”
“학문과 시문, 천문, 지리, 풍수에도 능통하시 다네. 이제 우린 살았네. 살았어.”
남원 고을 백성들은 큰 기대로 이서구 전라감사를 열렬히 맞이하였다. 남원에 도착, 광한루원에 이르자, 고을 백성이 모두 몰려나왔다. 양반 댁 아녀자들도 툇마루에서 발돋움을 하고 신선이라는 이서구의 얼굴을 보려하였다.
남원에 내려온 이서구는 두루 산천경개를 살핀 뒤, 처방을 내렸다.
“남쪽의 저 산이 무슨 산이오?”
“호두산이라 하옵니다.”
“맞소. 호랑이 머리를 닮아 호두산이라 한 거요. 그러니 저 산 이름부터 바꿔야겠소. 이제부터 저 산은 견두산이오.”
이서구는 호랑이 머리산이라는 호두산을 개머리산이라는 견두산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했다.
“그리고 호두산 자락 고을 이름인 호곡리도 좋을 호에 고을 곡자인 호곡리(好谷里)로 바꾸어 부르도록 하시오.”
이서구는 마지막 처방을 내놨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있소. 광한루 옆에 돌호랑이 상을 세우도록 하시오. 그렇게 땅의 기운을 누르면 호환도 없을 것이오.”
과연 이서구의 처방대로 한 뒤부터는 신기하게도 더 이상 호환이 없었다. 남원 고을 백성들이 이서구 감사 만세를 불렀음은 자명한 일이다.
전라북도 군산과 변산을 잇는 새만금에도 이서구의 예언이 있다.
‘수저(水低) 30장이요, 지고(地高) 30장이 될 것이다.’
이서구는 변산 앞 바다 쪽의 바닷물이 30장 밑으로 내려가고, 해저의 땅이 30장 위로 올라온다고 했다. 30장이면 대략 90미터이다. 바닷물이 90미터 내려가고 땅이 90미터 위로 올라오면 어떻게 되는가? 한마디로 지각 변동을 말하는 것이다. 서해안이 융기하여 너른 육지가 된다는 예언이라 할 것이다.
또 한 곳 역시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동성산 일대는 풍수지리상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의 갈마음수혈(渴馬飮水穴)이라고 한다.
이서구는 이곳 수만리 마을을 둘러보고 ‘물이 가득 찰’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예언대로 1922년에 그곳에 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음수(飮水)리와 수만(水滿)리 마을이 물에 잠기고 말았다. 지금은 운암산과 동성산, 위봉산 등의 아래 계곡을 더 막아 산과 호수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완주 8경 가운데 하나인 대아 저수지가 되었다.
동학혁명과도 이어지는 일화가 있다.
때는 1892년 임진년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꼭 300년이 되던 해였다.
“말세야. 백성을 지푸라기만도 못하게 여기는 탐관오리들뿐이니 어찌 살겠나?”
“이런 놈의 나라 있으면 뭐해. 그냥 콱 망해버렸으면 좋겠네.”
“그러잖아도 이 지긋지긋한 나라는 망하고, 새로운 세상이 온다네.”
그렇게 백성들은 자포자기, 민심이 흉흉했다.
“새로운 시대를 열 비결이 선운사 마애불 배꼽 속에 숨겨져 있다네.”
그때 한 소문이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바로 선운사 마애석불의 배꼽에 새로운 시대를 열 비결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 소문은 기름에 불붙듯 민중혁명의 깃발이 되었다.
1892년도 어느덧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이 되었다. 선운사 마애석불 배꼽에 들어있다는 신기한 비결의 내용도 확실해졌다. 그 비결이 나오는 날 한양이 망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씨들의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새 세상을 연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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