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러한 이서구와 얽힌 이야기들이 진짜인지, 아니면 부풀려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혼란한 시대에 탐관오리의 수탈과 핍박, 횡포에 시달리던 백성들의 염원이 담긴 소망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이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건 아니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게 다 이서구의 은덕을 흠모하고 존경하는 마음의 발로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뱀에게 무슨 다리가 있느냐? 그래서 사족은 짧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만 ‘이서구를 아느냐?’는 노인장의 질문에 사족이 만리장성으로 길어졌다.
아무튼 나는 ‘이서구를 아느냐?’고 묻는 도솔천의 흰머리 흰수염의 도인이 보통 분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퉁명스런 표정을 씻고 한껏 부드러운 얼굴과 말로 노인께 예를 갖춰 공손히 여쭈었다.
“도인님! 궁금하오. 이서구 어르신은 제가 존경하는 분이시지요. 그런데 그 어르신하고, 이 더러운 날 낮잠 좀 잤다고 밧줄에 꽁꽁 묶여 제가 이곳 도솔천에 끌려 온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소이까?”
“있지. 있어. 내가 바로 그 이서구라네.”
“예! 어르신이 이서구시라고요?”
나는 뒤로 벌떡 넘어질 듯 놀라, 말투와 태도를 더 겸손하고 정중하게 바꾸었다. 꽁꽁 밧줄로 묶여 끌려온 서운함이 봄눈 녹듯, 물안개 걷히듯 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조차 잊어버렸다.
“어르신, 아니 도인님! 아니 천신님! 아니 이서구 선생님! 이서구 할아버지! 이렇게 뵐 수 있어서 참으로 영광입니다.”
나는 납죽 엎드려 절하였다.
“자네를 밧줄로 묶어 험하게 데려온 거는 미안하네. 하지만 목적이 있어 데려온 거라네. 그러니 이해하게나.”
노인은 나를 데려온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자네 재주는 딱 하나 글을 쓰는 것이네. 그리고 지금은 글을 쓰는 자들에게는 중요한 시기라네. 어린 학생들 수백 명이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은 일을 잊지 않았겠지?”
“어르신! 어찌 그 일을 잊겠습니까? 한국의 역사가 그 어린 학생들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그 원통하고 비통한 일을 어찌 잊겠습니까?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할 자들의 후안무치, 무책임, 더러운 음모와 사기 농간질, 뻔뻔함을 보면서 울분과 비참함에 떨어야했습니다. 당일 사고 발생 초기, 그 피를 말리는 긴박한 순간에 박근혜는 7시간이나 행방을 감췄다가 나타나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던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말 그대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헛소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몇 희생자들이 차디찬 바다 속에 있고,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밝혀지고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서울 광화문에는 희생자 유족들, 뜻있는 백성들이 비밀에 쌓인 진실과 진상을 밝히고자 풍찬노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제가 그 슬프고 참담한 일을 감히 잊겠습니까?”
“맞아. 힘이 없는 자들은 마음이라도 모아야하는 거라네. 자네처럼 한가하게 낮잠이나 자서는 안 되는 엄중한 시기라네. 그래서 자네를 불러 일을 시키려는 거니 그리 알게.”
“일이요? 힘없고 능력 없는 제가 무슨 일을 하나요?”
“누구든 다 자기가 잘 하는 일 한 가지는 있는 법이네. 자네에게는 자네가 잘 하는 글쓰기 일을 부탁할 생각이네.”
“글쓰기요? 무슨 글을 써야 하지요?”
“양도내기를 아는가? 나합이라면 더 잘 알겠는가? 그 양도네기, 나합의 일생을 글로 쓰는 일일세. 나주 영산포 택촌 마을 태생으로 후일 나합이란 별칭을 가졌던 그 조선 말엽의 미녀이야기일세. 어떤가? 군침이 도는가?”
“어르신! 양도내기를 어찌 모릅니까? 백호 선생이 황진이를 알 듯, 허균 선생이 매창을 알 듯, 저도 양도내기를 알지요.”
“그런가? 그래, 양도내기를 어찌 생각하는가? 세도가 김좌근의 비호로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힌 요부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한낱 기생으로 천시하는가?”
“제가 어찌 오늘의 기준으로 그때를 평가하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고, 그 원인과 결과는 유기적으로 이어져 생명체처럼 변화한다고 들었습니다. 매관매직, 탐욕과 수탈로 나라를 도탄에 빠트리던 소위 양반 사대부들을 공깃돌 가지고 놀 듯 희롱한 양도내기, 나합은 한 시대를 풍미한 영웅호걸과 같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왕이 되지 못한 게 한이지요.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요, 두 사람을 죽이면 살인마, 여럿을 죽이면 영웅호걸이라는 옛 말처럼 말이지요.”
“좋으이. 자네 하는 말이 진정한 말이 되든지, 안되든지 그건 따지진 않겠네. 부디 시대를 관통하는 좋은 글을 써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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